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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May 01. 2023

프레임 속 풍경

일상 한 컷

어제는 양평의 한 카페에 갔다. 가끔 가는 곳이다. 창밖으로는 서핑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건너편 동네도 보인다. 지금은 어제와 반대방향인 행주산성의 한 카페에 있다.


커피를 마시고, 케익도 먹고, 옆지기와 나는 서로 다른 글을 쓴다. 그는 몇 주 후에 있을 세미나 준비를 하고, 나는 5월10일이 마감인 글을 쓴다. '마감'이라는 것보다 더 강력한 추진력은 없을테지만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버겁다. 어쨋든 써야한다.

우리는 자주 카페에 가서 글을 쓴다. 늙은 몸에 누울 자리보다 더 강력한 유혹은 없다. 게다가 지병으로 장복하는 약이 있으니 식후 약을 먹으면 그 다음 순서는 졸음이 찾아오는 것이다. 어느 날은 몸의 요구에 충실히 응하고, 어느 날은 누울 자리의 유혹에 저항하여 밖으로 나간다. 늙은 우리가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다. 커피 한잔에 종일을 버티는 '카공족'들에 대한 원성이 자자한 것은 우리도 알고 있다. 우리는 카페에 들어간 지 두 세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케잌 한 조각씩 추가 주문하든지 커피를 더 마시든지 한다. 몇 군데 단골로 다니고 있는데 추가주문의 영향인지 푸대접은 안받는다. 그렇다. 이것이 중요하다. 추가 주문!

마감이 다가온 글을 쓰다가 잠시 딴 짓을 한다. 어제 카페에서 찍은 사진을 본다. 카페 안에서 창을 통하여 내다본 풍경에 구도를 잡을 형편도 아니지만 마음에 드는 그림 한 폭이다.


힐ㅇㅇㅇ 카페 창밖 풍경
저녁무렵 카페 창밖 풍경.

사잔촬영에서는 일출 직후와 일몰 직전을 ‘골든 아워’ ‘매직 아워’라고 한다. 보통 사람으로 모바일 촬영만 하는 나는 그 전문성을 모르지만, 한낮의 사진 색감과 해질녘 색감이 다름은 알겠다. 같은 장면을 찍은 사진이 시간에 따라 다름이 보인다.

저녁 시간이 되니 밖의 파라솔을 모두 닫고 의자들을 엎어놓았다. 갑자기 달라진 창밖 이미지가 내게 많은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뜨거운 한낮보다는 차분한 저녁나절이 생각하기에 더 좋은 시간이다.

접어둔 파라솔이 마치 화투의 12번째 그림 '비'에 등장한 이미지같다. 화투를 칠줄 모르는 내가 왜 갑자기 화투그림 "비"의 장면을 떠올렸을까? 생각이란 놈은 도대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접힌 파라솔이 서있는 모습이 베니스 석조건물들 사이, 좁고 음습한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같다. 밤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사람들. 반짝이는 물결 위를 멋지게 미끄러지는 곤도라의 매력은 밤이면 표정을 바꾼다. 석조건물이 주는 무거움과 차거움, 해상도시의 축축함, 좁은 섬위의 아주 좁은 골목들, 그 골목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사람들이 연상되는 이미지이다. 

묵묵히 접혀있는 창밖 파라솔의 모습은 모짜르트를 뒤쫒는 살리에르의 초조한 모습같다. 프라하의 어느 골목에서 만나는 살리에르의 모습. 살리에르의 이미지를 이렇게 그려내다니 그는 정말 억울할 것이다. 비엔나의  궁정악장으로 음악적 실력을 갖춘 안토니오 살리에르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천재 모짜르트를 질시하여 모짜르트를 망쳐버리는 악인으로 그려졌다. 사실무근의 이야기이고 영화의 스토리일 뿐이라고 한다. 검고 무겁게 접힌 파라솔의 이미지는 내게 영화속 살리에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실내의 조명이 창유리에 반사된 모습, 하얀 색으로 납작 엎드린 의자들 모음, 서있는 짙은 색 파라솔들, 이들이 빚어낸 모습은 마치 크리스마스 모습 같기도 하다. 서있는 축제의 나무들과 하얀 눈쌓인 지붕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완전한 일몰 후의 사진에서 하늘은 짙은 파랑색으로 더욱 매력을 뽐낸다. 깊고 푸른 색이다.

카페 정원의 소나무.

멈춰서 올려다 볼 수 밖에 없는, 정말 기이하게 꼬인 소나무 가지이다. 하늘은 심해처럼 짙푸르다. 깊다. 시야를 빨아들인다. 가지의 굽혀진 굴곡마다 무슨 사연이 얽혀있을 것만 같다. 아, 그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아 풀어낼 재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굽이에 이야기 한 말씩, 저 굽이를 다 돌면 이야기 한 섬이 나올텐데...


오후 3시 넘은 지금, 카페 안은 소음으로 가득하다. 익숙한 소리다. 사람살아가는 이야기들이다. 이제 아주 달콤한 케익 두 조각을 추가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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