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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Oct 19. 2023

토마스 만 <마의 산>상권

책 리뷰

책이 상,하권으로 나뉘어져 있고, 리뷰도 상권 하권 나누어서 씁니다. 상권부터 읽으면 좋겠어요.


독일의 대문호 토마스 만Thomas Mann(1875-1955)의 장편소설 <마의 산 魔의 山- Der Zauberberg>은 1924년에 출간되었다. 1912년 5월 아내 카티아Katia가 요양중인 스위스 다보스Davos의 산림 요양소를 방문한 개인적인 경험을 서술형으로 전달하려는 가벼운 의도로 시작했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글쓰기가 중단되었고, 1919년 봄에 다시 쓰기 시작하여 1924년 9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책을 완성했다.

12년동안(중단된 시간 포함) 쓴 글이라 그럴까, 방대한 분량에 선뜻 집어들기 어렵다. 


<마의 산>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을유문화사 2008년, 상권 661쪽, 하권 772쪽.

아래 리뷰 글에 기록한 쪽수는 모두 이 책에 따름.


<마의 산> 소설 속 시계는 째 깍 째 깍 느리게 움직인다. 째깍째깍 빠르게 멋대로 움직인다. 째애까악~ 더 느려지기도 한다. <마의 산>은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가 보낸 시간의 흐름을 집필한 소설이다. 역사적 의미에서 한 시대, 즉 전쟁 전 유럽의 내부와 한스 카스토르프의  시간을 그린다.

책 속에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살펴보자.

“시간의 체험은 생활 감정 자체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한쪽이 약화되면 다른 쪽도 이에 따라서 딱하게도 손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루하다는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잘못된 생각이 만연해 있다. 대체로 내용이 재미있고 신기한 경우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즉 시간이 짧아진다고 생각하는 반면 단조롭고 내용이 없는 경우는 시간이 잘 가지않고 더디다고 생각한다. ~~~ 매일 똑 같은 나날이 계속된다면 그 모든 나날도 하루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매일매일이 완전히 똑같다고 한다면 아무리 긴 일생이라 하더라도 아주 짧은 것으로 체험되고, 부지불식간에 흘러가 버린 것처럼 된다.” 상권202, 203쪽.

시간에 대한 개념은 책 곳곳에 숨어있다가 불쑥불쑥 나타난다. <마의 산>을 시간소설(독일 Zeitroman)이라고 한다. 여러 곳에서 시간을 주제로 한다. 시간을 음악과 결부시켜 이야기한다. 토마스 만의 작품은 음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마의 산>은 시간 소설이며 음악소설이다.

인생은 시간의 흐름을 따를 뿐 아니라 공간의 지배를 받기도 한다. 스위스 다보스에 있는 폐질환 전문 요양소 베르크호프(독일 Berghof)가 공간적 배경이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그곳에 머무르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은 ‘산 위(이 위)’와 ‘산 아래(이 아래)’를 오르내린다. 가로로 이어지는 시간과 세로로 이어지는 공간을 날줄과 씨줄삼아 직조한 소설이다.


중심 주제는 인생, 인간의 삶과 죽음이다. 자연(산)과 인간이 만든 세상(정치, 사회)이 무대가 된다. 이분법적인 중심 단어는 많은 잔가지들로 뻗어 소설의 뼈대를 이루고, 뭉게뭉게 피어나 뼈대위에 살을 입혔다. 사랑, 철학, 질병, 죽음 등의 주제를 다룬다. 18세기 말에 발전하여 독일 문학사의 한 장르가 된 교양소설이다.(앞에서 언급한 ‘시간소설’이기도 하다.) 철학적, 정치적 질문을 내세워 세계로 나가 성장하는 젊은이들을 다룬다.

독일의 역사적 시대는 독일제국(1871-1918), 바이마르공화국(1918-1933), 국가사회주의(1933-1945)로 나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권력 분리와 독일 시민의 기본권을 규정한 바이마르Weimar 헌법이 제정되어 민주주의가 통치의 한 형태로 도입되었다.

<마의 산>은 사람들이 결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국가 체제의 전복을 받아들여야 했던 혼란한 시기에 출판되었다. <마의 산>은 신객관주의(독일 Neue Sachlichkeit), 1차세계대전을 기록한 바이마르 공화국의 문학운동 시기의 책이다. 신객관주의 문학의 목표는 사회적 정치적 불만에 대해 대중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사실적이고 진실한 언어가 전형이었다.(이런 식으로 쓰다가는 책 리뷰가 책 한 권이 될지도…)


이제 <마의 산>을 탐험한다.

산에 오르려면 등산화와 지팡이가 필요하다. <마의 산>을 오르는 데는 ‘대위법’과 ‘라이트모티프’를 준비하면좋겠다. 개념의 대립과 반복이 독자의 손을 잡아 안내한다. 두 가지의 개념이 나란히 있어 ‘병치’라고 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성격이라 ‘대립’이라고도 할 수 있다. 토마스 만은 자신의 소설이 하나의 교향곡이라고 했다. 그런 이유로 음악용어로 많이 사용하는 ‘대위법’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는 서로 다른 이유에서 검은 옷을 입고 다닌 두 할아버지, 반항적이고 충실한 두 할아버지의 모습을 나란히 세우고 서로 비교하며 이들의 위엄을 음미해 보았다. 더 나아가서 형식과 자유, 정신과 육체, 명예와 치욕, 시간과 영원이라는 광범위한 개념 쌍에 대해서도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하권 95쪽.


자세한 풀이는 생략하고 사전적 정의만 알고 가자.

대위법對位法 - 『예체능 일반』 건축, 문학, 영화 따위에서 두 개의 대위적 양식이나 주제 따위를 결합시켜 작품을 만드는 기법.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View.do 


라이트모티프Leitmotiv - 악극ㆍ표제 음악 따위에서, 주요 인물이나 사물 또는 특정한 감정 따위를 상징하는 동기. 곡 중에서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극의 진행을 암시하고 통일감을 줄 수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9D%BC%EC%9D%B4%ED%8A%B8%EB%AA%A8%ED%8B%B0%ED%94%84 (참고)


<마의 산>에는 여러 클라식 명곡들이 들어있다. 책 전체에 음악이 흐른다. 작가를 음악해설가로 착각할 정도로 깊이있는 해설을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음악들이다. 모짜르트의 <마술피리>, 비제의 <카르멘>,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 베르디의 <아이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 구노의 <파우스트>, 슈베르트의 <보리수>… 더 있으니  <마의 산>에서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자.


독일 중산층 출신의 청년 한스 카스토르프, 그는 전쟁 전 시대의 전형적인 평균 독일인이다. 알프스의 폐질환  삼림요양소 베르크호프에서 요양중이던 사촌 요아힘 침센을 방문하러 갔다가 그 역시 병에 걸린다. 작가 토마스 만이 아내를 문병갔다가 영감을 얻어 쓴 소설이라는 것과 결부되어 이 소설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리라는 생각이 달라붙는다. 책을 읽으며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가 토마스 만인 것같은 착각이 자주 일어났다.

애초에 예정했던 3주일이 길어져 7년동안 머물며 다른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지낸다. 지식인, 종교적 광신자, 계몽주의자, 쾌락주의자, 건강염려증 환자, “영혼 해부자”, 러시아 미인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작가가 들이댄 돋보기를 통하여 독자는 신음하는 사회, 썩은 사회를 바라볼 수 있다. 독자는 등장인물과 함께 사랑, 죽음, 질병, 모든 종류의 철학적 질문에 직면한다. 정치적, 철학적 질문에 대한 수많은 대화와 강의가 가득하다. 괴테와 성경, 동화, 니체, 쇼펜하우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 등에 대한 언급에는 때때로 묵직한 침묵, 풍자적인 말, 비극적인 얽힘이 숨어 있다. 대학교 한 학기, 또는 일년 강의와 맞먹는다. 


책의 내용은 본질적으로 시민사회의 제약과 예술적 삶의 자유 사이의 긴장이다. 인생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부지런히 사업을 수행하는 요양원 밖(산 아래)의 중산층 가족과 달리 한스 카스토르프는 마법의 산(마의 산)에서 시간을 아낌없이 보내고 오직 그곳에만 관심을 갖는다.

베르크호프에서 한스 카스토르프는 부패, 질병, 죽음으로 얼룩진 새로운 환경에서 지적(知的) 모험을 한다. 그곳에서 동화 같은 마법의 7년을 보내며 그는 영적 교육을 통하여 성숙되었다. 독자들은 책읽기가 끝난 후 지적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한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토마스 만은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의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최고의 영적 체험을 했다고 한다. <마의 산>에 담긴 삶과 죽음에 대한 토마스 만의 사상은 삶을 부정하고 죽음을 동경하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사상(내가 청소년기에 멋모르고 빠졌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1장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고향 함부르크를 떠나 스위스 다보스에 있는 요양소로 여행을 한다. 그곳 베르크호프에서 요양중인 사촌 요아힘 침센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직장 연수를 시작하기 전 3주일간 머물 예정이었다. 벌써 반년이나 이곳에 있던 요아힘이 앞으로 반년은 더 있어야할 거라고 말하자 한스 카스토르프는 분개한다.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이 없어!”. 

“이곳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너는 도저히 믿을 수 없겠지만 말이야. 이들에게는 3주가 하루와 같은 거야.” 상권 21쪽.

책에서 시간에 대한 개념은 이렇게 시작한다. 요양소와 세상의 시간이 다르다는 이야기로.

시간과 함께 이야기의 축이 되는 공간의 개념은 베르크호프에 도착하기 전, 여행의 시작에서부터 서술한다. ‘산 위’와 ‘산 아래’로 구분짓기 이전부터 공간의 개념은 시간과 더불어 서두에 등장한다.

“공간도 시시각각 시간과 마친가지로, 어쩌면 시간을 훨씬 능가하는 내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공간도 시간과 마찬가지로 망각을 낳는다. 공간은 인간을 여러 관계로부터 해방시키며, 인간을 원래 그대로의 자유로운 상태로 옮겨 놓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 공간은 고루한 사람이나 속물조차도 순식간에 방랑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시간은 망각의 강이라고 하지만, 여행중의 공기도 그러한 음료수인 셈이다. 그런데 그 효력은 시간만큼 철저하지는 못한 반면에 더 신속하게 나타난다.” 상권15쪽.

두 사람은 잠자리에 들기 전 보조의사인 박사 크로코프스키를 만난다.

1장에서부터 책읽기를 자주 멈추곤 했다. 읽기보다는 생각하기 시간이 더 길어진 까닭이다. 시간과 공간이라니, 그건 바로 우주아닌가. <마의 산> 읽기는 머리에 쥐가 나든지 아니면... 지적 욕구(지적 허영심)를 채워주겠는 걸! 


2장

한스 카스트로프의 과거를 되돌아본다. 부모는 그가 5세, 7세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한스 카스트로프는 처음에는 할아버지 한스 로렌조 카스토르프 상원의원과 함께 살았다. 1년 반쯤 뒤에 할아버지도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 후 그는 삼촌 야메스 티나펠과 함께 살았다. 삼촌은 영사 였고 부유해서 한스 카스트로프는 좋은 환경에서 살았고 엔지니어가 되었다.

한스 카스토르프의 가족 이야기는 소설 안의 단편소설 같다. 토마스 만에게 노벨상(1929)을 안겨준, 가족의 쇠퇴에 관한 소설 <부텐브로크가의 사람들> (1901)이 연상된다. 

"그러다가 할아버지의 입에서 '증(曾)'이라는 접두어가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었다. 소년은 머리를 기울이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한, 또는 멍하니 꿈을 꾸는 듯한 눈으로, 그리고 경건하고 졸린 듯한 입을 하고 '증-증-증-증'이라는 음에 귀를 기울였다. 이는 지하 납골당과 시간의 매몰을 의미하는 어두운 음이었지만, 이와 동시에 현재 그 자신의 삶과 깊이 파묻혀버린 과거 사이의 경건한 관계를 나타내주어, 그에게 아주 특이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상권49쪽.

할아버지가 가족의 세레반 뒤에 새겨진 조상들의 이름을 일일이 짚으며 한스 카스토르프에게 가문의 이야기를 할 때 나오는 대사이다. 

"증-증-증-증"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주는 음이라고 생각했다. 순환의 모티프, 토마스 만이 <마의 산>에서 표현하는 음악적 라이트모티프이다.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 음악을 좋아한 토마스 만이 바그너 음악의 특징인 라이트모티프를 소설에 적용한 것이다.

세레반은 세레받은 물을 받는 그릇이다. 대대로 가족들이 세레받을 때마다 그 세레반을 사용했고 세레반 뒤에 날짜와 이름을 새겨두었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세레반 위에 머리를 기울이고 들여다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이미 옛날에 이런 일을 해본 느낌이 들었다.


3장

첫 번째 장의 끝 부분에 이어지며 한스 카스토르프는 잠에서 깨어난다. 얼마 후 요아힘과 아침식사를 하러 간다. 식당을 떠나려고 하던 중 요양원의 원장 베렌스와 닥터 크로코프스키를 만난다. 베렌스는 한스 카스토르프가 건강진단을 받도록 한다. 한스 카스토르프와 요아힘은 산책중에 다른 환자인 로도비코 세템브리니를 만난다.  그는 이탈리아 작가로 인문주의자이자 프리메이슨 freemason이다 .

인문주의자(호모 후마노스 Homo humanus)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 교육이 중요한 목표이다. 세템브리니의 연설을 들어보자.

“우리 인문주의자들의 혈관에는 모두 교육자의 피가 흐릅니다. 여러분, 인문주의와 교육학의 역사적인 관계는 양자간에 심리학적인 관계가 있음을 입증해줍니다. 인문주의자한테서 교육자의 직분을 앗가가서는 안됩니다.” 상권 127쪽.

프리메이슨은 자기 지식과 인류애를 믿는 윤리적 동맹이다. 기본 이상은 자유 , 박애 , 평등 , 인류애 , 관용이다. 세템브리니는 산책에 합류하여 모든 종류의 철학적, 정치적 질문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돌아와 리클라이닝 reclining 치료를 받는다. 몇 시간 동안 신선한 공기 속에서 안락 의자에 누워 쉬는 것이다.

“점심 식사 후 차를 마실 때까지 하는 안정 요양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꼭 지켜야하는 시간이었다.” 상권 154쪽.

한스 카스토르프는 이 의자를 무척 좋아한다.

“접이식 의자가 정말 그만이더군. 대체 어떤 의자이기에 그런거지? 여기서 구입할 수 있다면 하나 사서 함부르크로 보내고싶어. 그 위에 누우면 마치 천국에 있는 기분이야. 아니면 베렌스가 특별히 주문하여 만든 걸까?” 상권134쪽.

“내가 보기엔 여기서 그게 최고 걸작이야. 벌써 그 접이식 침대에 눕고싶어 몸이 근질근질해지는 걸.” 상권 138쪽.

아, 한스! 나도 발코니의 그 의자에 누워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는 멍때리기에 빠져들고 싶어요! 지금(2023) 한국에서는 TV를 켜면 여기저기서 한스 카스토르프가 반했던 ‘리클라이닝 의자’ 광고가 한창이다. 베르크호프 요양원에 있던 의자보다 좀더 쾌적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발전한 의자이다. 휴식이 필요한 현대인들에게 매력있는 치료방법이다.

점심시간에 한스 카스토르프는 환자 쇼샤부인을 발견한다.  쇼샤 부인은 누군가를 강하게 상기시켜 주지만 그는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저녁 식사후 환자들은 홀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식당에는 일곱 개의 식탁이 있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세템브르니와 대화를 나누고 세템브리니는 가능한한 빨리 떠나라고 조언한다. 저년 식사후에 다시 치료가 있다. 카스코르프는 자신이 환자도 아니고 단지 평화롭게 시가를 피우고 싶어서 참여를 거부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몸을 떨기 시작하고 자기 방으로 간다. 그는 자고 싶을 때 먼저 불안에 시달리고, 잠들면 환자들에 대한 악몽 에 시달린다. 


4장

한스 카스토르프는 점차 요양원의 일상에 익숙해지고 세템브리니와 친구가 된다. 크로코프스키는 질병과 사랑에 대해 강의한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벤치에 누워 잠이 든다. 좋아했던 옛 학교 친구 히페를 꿈에 본다. 히페는 미술시간에 '연필'을 빌려준 적이 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정신분석 이론에 따르면 '연필'은 남성의 성적 상징이다. 히페에게서 연필을 빌린 것은 한스 카스토르프가 동성애를 느꼈음을 암시한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쇼샤 부인이 그에게 히페를 상기시켰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쇼샤 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 그녀가 점점 더 히페와 닮아가기 때문에 점점 더 관심을 갖게된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베르크호프에 온 지 2주가 조금 넘은 시점에 그는 감기기운을 느낀다. 열이37.6°C이다. 다음날 크로코프스키에게 검사를 받으러 갔다. 의사는 엑스레이 촬영을 권한다.

크로코프스키는 질병과 사랑에 대해 강의한다. 사랑의 순결과 열정 간의 투쟁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순결의 힘과 사랑의 힘이 충돌하면- 이것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이러한 충돌은 얼핏 보아 순결의 승리로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두려움, 점잖음, 정숙함, 혐오, 벌벌 떨면서 순결을 지키려는 마음이 사랑을 어둠 속으로 몰아넣고 사랑의 욕구를 기껏해야 부분적으로만 허용할 뿐, 그것이 극히 다양한 모습으로 힘차게 의식 속에 떠올라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순결의 이러한 승리는 외견상의 승리에 불과하고 피루스의 승리이다.” 상권 247쪽.

‘피루스의 승리’는 피루스 Pyrrhus왕이 로마군을 격파했을 때처럼 희생이 많은 유명무실한 승리라는 뜻이다. 좋으면 좋아하면 되고, 미우면 싫어하면 되는 것이지, 도대체 사랑에 대한 논리가 어쩜 이리도 길고 긴 것일까? 크로코프스키 박사의 사랑 강의는 끝이없이 책의 여러 페이지를 이어간다. 사랑에도 어떤 논증이 필요하다면 우리 모두는 어떻게 사랑을 하고 살지? 논리도 뭣도 모르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사랑아닌가?

독일에 있을 때 TV를 켜면 무슨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잘 알아듣지 못하여 채널을 돌렸다. 다시 돌아와보면 아까 하던 토론을 아직도 하고 있다. 여러 번 채널을 돌리는데 토론은 끝이 안난다. 그들은 정말 토론에 진심이다! 독일 책을 읽을 때 고역은 마침표 찾기이다. 문장의 끝도, 문단의 끝도 찾을 수 없이 수십 페이지가 활자로 빽빽하다. 평소에 독일 책에서 느낀 것이 <마의 산>에서도 이어진다. 심지어 사랑 이야기에서도. 아, 사랑 이야기는 좀 달콤하게 써서 쓱쓱 읽히게 하면 안되나?

“크로코프스 박사는 강연의 끝에 가서 정신 분석에 대해 대대적으로 선전을 하면서 두 팔을 벌리고 모두를 자기에게로 오라고 촉구했다. ‘너희들 수고하고 짐진 자들이여, 다 내게로 오라!’는 성경 구절을 그는 다른 말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모두들 예외없이 수고하고 짐 진 자들이라는 자신의 확신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는 은폐된 고통, 수치심과 번민, 구원을 안겨주는 정신 분석의 영향에 대해 말했다.” 상권 251쪽.


베르크호프에는 한스 카스토르프를 인간적으로 성장시킨 교육자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세템브리니이다. 세템브리니는 마치 교수들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하듯 철저히 이론을 대고 장황한 설명을 한다. 그의 강의를 들어보자.

“두 가지 원칙이 세계를 둘러싸고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말하자면 권력과 정의, 폭정과 자유, 미신과 지식, 고수의 원칙과 끓어오르는 운동의 원칙, 즉 진보의 원칙이 그것이었다. 그 중 하나는 아시아적 원칙이라고, 다른 하나는 유럽적 원칙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유럽은 반항, 이성 빛 개혁 활동의 땅인 반면 아시아 대륙은 부동성不動性, 하는 일 없는 정체를 구현하기 때문이다.” 상권 302쪽.

지구상에 정의와 행복이 지배하는 날을 꿈꾸며 세템브리니는 항상 열성적인 대화를 이끈다. 독자는 그의 대화가 시작되면 50분 강의를 듣는 셈이다. 이 문단도 대위법으로 짜여졌다. 세템브리니 인물의 대위법적인 대상으로는 쇼샤부인을 꼽을 수 있다. 세템브리니는 "서쪽 기슭의 유리같이 밝은 낮의 빛"으로 쇼샤는 "지극히 불가사의하면서, 촉촉한 안개로 감싸인 동쪽 하늘의 달밤"으로 대립한다.


"마법의 산"은 베르크호프이고, 베르크호프는 유럽사회를 상징한다. 

'산 위'는 4계절이 분명치 않다. 계절의 질서가 무너져 시간이 해체되고, 요양원의 환자들은 계절의 혼란에 모호한 시간개념이 개입되어 신체적 정신적으로 병이 더욱 깊어진다. 감정 억제가 어려워지고 대수롭지않은 자기 주장을 고집하며 난폭한 행동을 드러내게 된다. 유럽사회가 병들어 우울하고, 여러 사상의 대립으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운이 감도는 당시의 암담한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아, 지금 우리의 상황은 그보다 나아진 것도 없는 듯하다. 베르크호프같은 피난처가 있다면 그곳으로 달려가 세상을 잊은 채 파묻혀 있고싶다. 

내 책장의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그외 외국소설.


5장

한스 카스토르는 엑스레이를 찍었고 가슴에 반점이 보여 몇 주간의 휴식을 처방받았다.

몇 달이 지나고 한스 카스토르프는 요양원의 시간을 즐기고, 요아힘은 요양원을 떠나 군인으로 복무하기를 원한다.

'발푸르기스의 밤'에는 환자들이 함께 축하하고 그림 그리기 게임을 한다. 중세 시대에 발전한 발푸르기스의 밤은 4월 30일에 열리는 유럽의 전통 축제이다. 이날 밤 마녀들은 축제를 위해 블록스버그Blocksberg (독일 하르츠Harz 산맥의 낮은 산)에 모인다고 한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파우스트Faust> 배경이 된 지역이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게임에 참여하고 싶지만 펜이 없어서 쇼샤 부인에게 '연필'을 빌린다.  쇼샤 부인은 다음날 떠날 것이라고 말하고 , 이제 그녀와 사랑에 빠진 한스 는 당황한다.

세템브리니와의 대화는 시시때때로 이루어진다. 이번엔 삶과 죽음에 대한 주제이다.

“죽음을 바라보는 유일하게 건강하고 고귀한 방식은 -분명히 덧붙여 말하겠습니다 – 게다가 유일하게 종교적인 방식은, 말하자면 그것을 삶의 일부분이자 부속물, 성스러운 조건으로 파악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 고대인들은 죽은자들의 석관石棺을 삶과 생식의 상징으로뿐만 아니라 심지어 외설적인 상징으로 장식했습니다. ~~~ 이들은 죽음을 존중할 줄 알았습니다. 죽음은 삶의 요람이자 갱신의 모태로서 존경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상권 386쪽.

아시아인인 나로서는 서양인 우월주의자인 세템브리니의 사상에 몹시 불쾌감을 느낀다. 세템브리니가 한스 카스토르프를 지칭하는 말은 이렇다.

“서구의 아들, 성스러운 서구의 아들 – 본선과 출신으로 볼 때 문명의 아들인 당신” 상권 466쪽.

서구를 높이는 것은 그렇다치자. 그러나 아시아를 비하하는 것은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설마 작가 토마스 만의 생각은 아니겠지! 소설 속 등장인물 이태리 사람 세템브리니의 생각일 뿐이겠지.

“시간을 야만적으로 아무렇게나 허비하는 것은 아시아적인 방식입니다. 아시아의 자식들이 이곳을 마음 편하게 여기는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러시아인이 ‘네 시’라고 하는 말은 우리 서구인이 ‘한 시간’이라고 하는 말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셨나요?” 상권 467쪽.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 알고, 글은 끝까지 읽어봐야 안다. 사실 세템브리니의 대화는 중심주제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시아인 비하도 표현했지만 그것이 대화의 목적은 아니다.

“공간이 넓은 곳에서는 시간도 많은 법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시간을 갖고 기다릴 수 있는 민족입니다. 우리 유럽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아기자기하게 나누어진 우리의 고상한 대륙에 공간이 부족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시간도 부족합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공히 엄밀히 관리하고, 이용하고 또 이용하도록 지시받고 있습니다. ~~~땅값이 오르고, 공간을 낭비하는 것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그곳의 시간도 점점 더 소중해진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을 즐겨라! 어떤 도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간이란 이용하도록 인간에게 빌려준 신들의 선물입니다. 인류의 진보를 위해 이용하도록 말입니다.” 상권 467쪽.

‘오늘을 즐겨라’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 BC65-BC8)의 말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베렌스와의 대화중에 인문주의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장면이 있다. 그는 인문주의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본다.

“물론 나는 의학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릅니다만, 의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률을 제정하고 판결을 하는 법학도 인간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교육자적인 직업과 관련이 있는 언어학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신학, 목회 활동, 종교적인 사제직은? 이 모든 것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고있으며, 이 모든 것은 단지 똑같이 중요한…… 주된 관심의 변형, 인간에 대한 관심의 변형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것들은 인문주의적인 직업들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직업을 공부하려면 기초 작업으로 무엇보다도 고대어를 배웁니다.” 상권 498쪽.

한스 카스토르프의 열변은 한참동안 이어진다. 이 책의 스타일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것이 따옴표 속에 들어있는 대화라할지라도 길게 이어진다. 따옴표 속 글을 떼어내면 별도의 논문 한편이 될 정도이다.

베렌스는 베르크호프의 원장이며 외과의사이다. 이 책에서는 “고문관”이라고 해석했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의사인 베렌스에게 생리학적인 질문을 한다. ‘피부’에 관한 질문이 길게 이어진다. 베렌스는 피부의 보호작업과 방어작업이 육체적인 것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어서 피부가 빨개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 현상은 아직 완전히 규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혈관 운동 신경을 통해 움직여질 수 있다는 확장근이 아직까지 맥관에서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탉의 볏이 왜 부풀어오르는지 -또는 이 외에도 이렇다할만한 예가 많겠지만- 이는 소위 신비로운 현상입니다.” 상권 505쪽.

책의 맥락상 이 부분이 그리 중요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등장인물들이 가벼운 대화를 떠나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면 보통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는 예로 대화를 좀더 인용한다. 현실적인 재미도 있고.

“특히 이때 심리적 작용이 개입하면 말입니다. 우리는 대뇌 피막과 뇌수 속의 맥관 중추 사이에 연락망이 있을 것으로 가정합니다. 그래서 어떤 자극이 있는 경우에, 예를 들어 당신이 매우 부끄러운 경우에 이 연락망이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얼굴에 있는 맥관 신경이 활동을 시작하여 그곳의 혈관이 늘어나고 팽창하여 당신의 얼굴이 칠면조처럼 부풀게 됩니다.” 상권 506쪽.

베렌스의 설명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것과 반대로 하얗게 창백해지는 현상까지도 설명한다. 참 철저하다. 그럼 리뷰를 쓰는 나도 철저하고 친절하게. '맥관脈管'은 혈관과 림프관처럼 동물의 몸속에서 액체가 흐르는 관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것이 독일사람 스타일일까, 토마스 만 스타일일까, 극중 인물 캐릭터일까. 

의학적인 긴 설명을 읽으며 까마득히 잊고있었던 이광수 소설 <사랑>의 주인공 의사 안빈이 떠올랐다. ‘사랑’을 분석해보려고 순옥의 피를 채혈하고 혈액의 변화를 지켜보는 안빈과 순옥, 그들의 애정이 남녀간의 애정이 아닌 청순한 종교적 애정임을 확인하는 안빈의 아내 옥남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오른다. 아마도 ‘의학적 설명’이 끌어낸 기억이리라. 어려운 <마의 산>을 읽는 중에 머리를 식혀주는 산들바람이다. 1981년생인 우리 막내아들은 이 책을 읽었지만, 그 이후 출생자들은 아마 안 읽었을 게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 때문에 그의 문학은 친일 문학이 되었으니.

<마의 산>을 마스터하면 의학, 생리학, 철학, 심리학의 교양과정을 충실히 이행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게다가 음악 평론가, 미술 평론가가 되는 것은 덤이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클라브디아(쇼샤 부인의 이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으로 <마의 산> 상권은 끝난다. 책의 핵심부라고 할 수 있는 6장과 마지막 7장은 <마의 산> 하권으로 발행되었다.

상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엔지니어 한스 카스토르프의 사랑고백을 옮긴다. 뼈속까지 이과理科 완전체에, 강의받은 의학상식을 더해, 인문학적인 소양을 돋보이게 하는 심오한 표현들과, 문학책깨나 읽은 화려한 수사로 이루어진 사랑고백이다. 안타깝게도 전체를 다 옮길 수 없어 중간부터 인용하지만 그 이전의 글도 대단하다. 정신차리고 음미해보시라!

“아, 정교한 관절 주머니가 지방을 분비하고있는 네 무릎의 피부 냄새를 맡게 해 줘! 너의 온 허벅지에서 고동치고, 훨씬 아래에서 두 개의 경부 동맥으로 갈라지는 대퇴부 동맥에 경건하게 내 입술을 닿게 해 줘! 너의 털구멍에서 나는 분비물 냄새 맡고, 너의 부드러운 털을 애무하게 해 줘! 물과 단백질로 이루어져 무덤에서 분해될 운명을 지닌 인간의 형상이여. 너의 입술에 내 입술을 대고 영원히 죽게 해 줘!” 상권 653쪽.

잠깐 퀴즈! 고백을 받은 쇼샤 부인의 반응은 어떠했게요?


“너는 정말 독일식으로, 심오한 방법으로 애원하며 여자의 환심을 사는구나. ~~~ 오늘 밤 너의 체온 곡선은 사정없이 올라갈 거야.” 상권 653쪽.

 


리뷰는 <마의 산> 하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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