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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Oct 19. 2023

토마스 만 <마의 산> 하권

책 리뷰

<마의 산> 상권 리뷰에 이어 씁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로 상권 리뷰를 먼저 읽으면 좋겠습니다.


6장

한국어 번역본 상권, 하권은 편집상의 편의일 뿐 작가가 나눈 단원은 1,2,3,4,5,6,7장이다. 


6장은 <마의 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눈”의 장이다. 1923년 초에 집필했다.

세템브리니는 마을로 이사한다. 마을을 산책하던 중 한스 카스토르프와 요아힘은 지역 고등학교 선생인 레오 나프타를 만난다. 나프타와 세템브리니는 모든 종류의 정치적, 철학적 질문에 대해 토론한다. 1년 반이 흐른 뒤에 요아힘은 떠난다 .

그가 떠난 후 한스 카스토르프는 세템브리니, 나프타, 몇몇 새로운 환자들과 함께 걸으며 정치, 교육학, 질병 및 종교에 대해 토론한다. 세템브리니는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즉, 이해심 있게) 행동하는 완벽한 세상을 꿈꾸고, 나프타는 폐허에서 솟아오르는 더 나은 세상을 희망한다. 요아힘은 중위가 되었으나 다시 병에 걸려 요양원으로 돌아오나 점점 악화되어 결국 사망한다.



6장에도 ‘시간’의 개념은 계속 이어진다.

“시간은 활동적이고, 동사적인 속성을 갖고 있어. 그것은 ‘낳는’ 힘을 지닌다. 그럼 시간은 무엇을 낳을까? 변화를 낳는 것이다! 지금이 당시가 아니고, 이곳이 저곳이 아닌 것은, 이 두 개 사이에 운동이 있기 때문이다.” 하권 9쪽

6장에서 한스 카스토르프는 그의 새로운 교육자 나프타를 만난다. 나프타는 첫번째 교육자인 세템브리니와 한집에 살고 있다. 소설에서 구사하는 나프타와 세템브리니의 개성은 이 리뷰 서두에 언급한 대위법을 적용했다. 세템브리니가 “스콜라학파의 우두머리”라고 소개한 나프나와 세템브리니는 서로 다른 생각을 주장한다. 독자는 두 사람의 다른 사상을 읽으며 토론주제에 대하여 균형잡힌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독자가 어느 편의 생각에 동의하고 공감하든지 그 반대 사상까지 알게된다는 것은 큰 이득아닌가.

만나서 대화가 시작되면 그것이 바로 논쟁이 되는 두 사람은 이슬람의 자유화, 범게르만주의, 러시아의 팽창욕, 행복한 세계공화국, 국제법 등을 주제로 삼는다. 다음 만남에서는 또 다른 주제가 등장한다. 

<마의 산>이 얼마나 많은 주제의 토론과 논쟁으로 구성되었는지 예를 들어본다. 책의 99쪽에서 한스 카스토르프는 나프타가 소유한 조각품 ‘피에타’를 보고 감탄한다. 14세기에 만들어진 이 작은 피에타는 교황 이노센트3세의 저서 <인간조건의 비참함에 관해>에 삽화로 등장했다는 설명으로 시작하여, 고딕 양식과 낭만주의 양식의 대조에 이어, 나프타와 세템브리니의 종교논쟁을 지나 종교와 과학 논쟁에 이르는데 10여페이지를 할애한다.

“이보시오, 순수 인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나는 인식하기 위해 믿는다’는 명제에 요약되어 있는 교회 철학의 정당성은 전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권 108쪽

“사람들이 다른 어떤 철학보다 플라톤 철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연 인식이 아니라 신의 인식을 문제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과학의 임무는 구원이 없는 인식을 좇는 것이 아니라 해로운 것이나 이념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원칙적으로 배척하는 것임을 인류가 통찰하고 있습니다.” 하권 109쪽.

이어서 프톨레마이오스와 스콜라철학을 논하다가 르네상스 논쟁에 이른다.

“르네상스가 소위 자유주의, 개인주의 및 인문주의적 시민성이라 일컫는 이 모든 것을 세상에 가져다 주었다는 것은 나도 어지간히 알고있습니다만” 하권 112쪽

“교황의 통치권 요구는 통치권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었고, 교황이 신의 대리자로 행사한 독재권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수단과 방법이었으며 이교도적인 국가에서 하늘나라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형태였습니다.” 하권 117쪽.

고문관 베렌스의 만류에도 요하임은 베르크호프를 떠나 군대에 복귀했고, 한스 카스토르프는 그곳에 남았다. 어느 날 삼촌 야메스 티나펠이 그를 방문했고, 혼자 남은 한스 카스토르프는 완전한 자유를 느낀다. 나프타와 세템브리니의 논쟁은 주제를 바꿔가며 계속 이어진다. 레오 나프타가 카톨릭 신부 운터페르팅거와 논쟁을 벌인 내용이 소개된다. 마르크스 <자본론>에서 헤겔, 괴테에 이르기까지 열띤 논쟁을 벌인 나프타의 나이 16세 때의 일이다. 그만큼 그의 지식은 넓고 깊다.


크리스마스가 바로 코앞에 다가온 어느 날 세템브리니, 나프타, 한스 카스토르프, 페르게, 베잘은 토론에 깊이 빠져들었다. 중세에 광신적이고 열광적으로 환자를 간호하느라 상궤를 벗어난 경건한 사랑의 행위에 대한 경의와 그것이 추악하다는 비판, 세템브리니가 목격한 정신병동 -단테의 <신곡>에 묘사되어있는 장면과 같은 공포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로테스크한 광경 이야기, 인체를 신이 머무는 참된 신전이라고 찬미하는 세템브리니, 신체조직이란 우리와 영원 사이에 쳐져있는 커튼에 불과하다는 나프타, 화장, 태형, 고문, 사형제도를 거론한 프르디난트 베잘, 이러한 논쟁은 종교와 이성, 사회적 윤리로 이어져 질병에까지 이른다.

“병은 인간을 전적으로 육체적인 존재로 되돌리고 되던져버려,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무시하게 되는 것이 확실합니다.” 하권 235쪽.

오래 살다보니 질병이 얼마나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지 간접 경험을 많이 했다. 고령화 사회에서 치매환자는 점점 더 늘어가고, 의학의 발달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죽지도 못하고, 비위생적인 것들을 퇴치한 화학약품들은 위생적 환경에서 또다른 고통을 낳고... 얼마쯤 후에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며 사용한 소독약과 마스크의 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질병은 결코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모든 질병이 다 극복된다해도 큰일이다. 생명에는 죽는 시간이 설정되어 있지 않으니 말이다. 죽음은 무섭지 않지만 질병은 두렵다.


마을에 눈이 많이 내리자 한스 카스토르프는 스키를 배우고 산으로 갔다. 희끄무레한 안개속으로 사라지는 한스 카스토르프를 향애 세템브리니는 ‘조심하라’고 외친다. 어디부터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산인지 분간할 수 없는 하얀 눈속에서 한스 카스토르프는 활강과 활승을 교대하며 산의 계곡을 넘나든다. “눈”의 장은 마치 인생여정의 굴곡을 헤쳐나가는 장면같다. 우리가 인생길을 일엽편주에 의지한 인생항로라 하는 것과 같다. 스키를 타던 중 눈보라에 갇혀 오두막벽에 의지하고 쉬던 중에 꿈을 꾼다.

“시계를 보니 네 시 반이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눈보라가 치기 시작한 때가 거의 그쯤이었는데. 그렇다면 자신이 빙빙 도는데 걸린 시간이 채 15분도 되지 않았다는 말인가? ‘시간이 나에게 천천히 흘렀구나’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권 277쪽.

한스 카스토르프는 중간에 한 번 깨었다가 다시 혼미한 정신으로 잠속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영상으로는 아니지만 생각으로는 어느 정도 계속 꿈을 꾸고 있었는데, 영상으로 보는 것 못지않게 모험적이고 혼란스러웠다. ‘나도 꿈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어.’ 그는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하권 291쪽

한스 카스토르프는 꿈에서 깨어났다.

“다섯 시가 되려면 12분에서 13분은 더 있어야 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여기 눈 속에 누워 행복과 공포의 장면을 보고, 그토록 대담한 생각을 많이 했는데도 10분 남짓밖에 흐르지 않았다니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권 296쪽.

한스 카스토르프의 "꿈"은 이야기의 흐름을 바꿀 때 자주 등장한다. 중간중간 다양한 꿈 이야기가 나온다. 토론과 논쟁에 중독(?)된 나프타와 세템브리니의 "꿈"에 대한 논설이 없음이 아쉽다. 그들이 한판 논쟁을 벌인다면 독자들은 프로이트의 꿈에 대한 정신분석학 강의를 들을 수도 있을텐데.


요아힘 침센이 다시 베르크호프로 돌아왔다. 정신적인 맞수들 나프타와 세템브리니의 논쟁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된다. 프리메이슨, 연금술, 푸블리우스 베르길리우스 마로(시인 BC70-BC19), 볼프람 폰 에센바흐(시인 1170-1220), 이집트의 토트와 그리스의  헤르메스 신화, 알렉산드로스 대왕(BC356-BC323), 율리우스 카이사르(BC100-BC44),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 페르디난트 라살(사회주의 사상가 1825-1864), 헬무트 칼 베른하르트 폰 몰디케(군인, 작가 1800-1891)와 그밖의 영웅들에 관한 두 사람의 토론이 이어진다. 생각해보시라. 기원전 인물들로부터 19세기 인물까지, 신화, 문학, 사상, 종교, 정치… 세템브리니와 나프타는 백과사전을 통째로 삶아먹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소설 속 주인공일 뿐이니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소설을 쓴 작가의 머리 속에서 살고있는 인물들 아닌가!  그럼 백과사전을 삶아먹은 사람은 토마스 만인가? 놀랍고 놀라와서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사실 우리의 죽음은 우리 자신의 문제라기보다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문제이다. ~ 우리가 살아있는 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이 찾아오면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와 죽음 사이에는 어떠한 현실적인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은 우리와 하등 관련이 없으며 기껏해야 우주와 자연하고만 약간 관계가 있을 뿐이다.” 하권 361쪽.

요아힘 침센이 숨을 거두었고, 소설은 그 죽음의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죽어가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는 듯하다.


7장

책 전체에 시간에 대한 개념이 종종 나오는데 7장은 ‘시간’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시간을, 순전히 시간 그 자체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정말이지, 아니다. 그것은 말도 안되는 바보 같은 짓이다. ‘시간이 지나갔고, 시간이 경과했으며, 시간이 흘러갔다.’ 건전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결코 이야기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하권 379쪽.


클라브디아 쇼샤부인이 새로운 한 사람 민헤어 페퍼코른과 함께 베르크호프로 돌아왔다. 네덜란드인 페퍼코른은 부유한 커피 재배자이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쇼샤부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페퍼코른에게 질투심이 일었지만 나중에는 친해진다. 페퍼코른과 베르크호프 사람들은 한 테이블에서 카드 게임을 하고 샴페인을 마신다. 그 다음날부터 페퍼코른은 누워지내게 되었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베르크호프에 와서 바로 문을 쾅 닫고 다니는 쇼샤부인을 보게됐고, 쇼샤를 사랑하는 마음에 베르크호프에 남아있기를 원했고, 쇼샤가 그곳을 떠난 후에도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쇼샤가 다른 남자를 데리고 왔음에도 그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이제 다시 온 쇼샤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응, 좀 괴로운 일이었어. 클라브디아, 이 냉정한 열정가라도 말이야. 네가 그와 함께 돌아온 것은 나에게 괴로운 일이었어. 너는 참 무정한 사람이야. 내가 이곳을 떠나지 않고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베렌스를 통해 물론 알고 있었을텐데.” 하권 490쪽.

재회에서 한스 카스토르프는 클라우디아 쇼샤에게 ‘너’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페퍼코른과 의형제를 맺을만큼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페퍼코른은 개념적인 사람이 아니고 감각적인 사람이다. 현실적인 삶을 중시하며 힘을 부르짖는 사람이다. 베르크호프 사람들이 함께 소풍을 다녀온 날, 페퍼코른은 독글물로 자살한다. 쇼샤 부인은 다시 떠난다.

<마의 산> 상권 리뷰 서두에 이 책은 라이트모티프로 구성됐다고 했는데, 쇼샤부인을 묘사하는 장면이 라이트모티프 기법이다. 쇼샤부인이 등장할 때는 언제나 문을 쾅 닫고, 그녀의 눈은 키르키스인의 눈이라는 것이 반복된다. 쇼샤부인이 떠난 후 한스 카스토르프는 똑 같은 일상에 점점 지루해한다. 그러던 중에 베르크호프 응접실에 축음기가 들어온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카드놀이를 그만두고 음악에 심취한다. 작가 토마스 만은 고향인 뤼백 시립오케스트라 단원인 바이올린 연주자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운 경험이 있다. 그의 음악적 감수성은 바그너를 통해 더욱 발전했다. 뮌헨시절에는 뮌헨시 음악감독이던 브루노 발터(Bruno Walter Schlesinger 1876-1962)와 친교를 맺었고, 말러(Gustav Mahler 1860-1911) 음악에 심취하기도 했다.

축음기가 생긴 이후 <마의 산>에는 아름다운 음의 향연이 펼쳐진다. 오펜바흐 서곡, 아이다, 카르멘, 파우스트, 보리수… 오페라의 대사, 가곡의 가사,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까지 1300여 페이지의 책을 읽어온 독자에게 그동안 읽느라고 수고했다고 주는 선물같다. 글에 있는 음악을 들으며 읽으면 음악감상과 독서가 주는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 읽는 데 리듬을 탄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좋아하는 리클라이닝 의자에 앉은 상태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마의 산>은 더이상 머리에 쥐가 나는 책이 아니다. 


베르크호프에 엘렌 브란트(엘리)라는 새로운 환자가 도착한다. 엘렌은 초자연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크로코프스키 박사의 강의는 여전히 진행되고, 거듭될수록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는 최면술이나 몽유병 같은 알 수 없는 이상한 현상, 텔레파시며 정몽(正夢)이며 천리안 같은 현상, 히스테리의 불가사의함에 관해 강연했다.” 하권 604쪽

“유기체의 병의 증상이란 억압되어 히스테리컬하게 된 흥분 상태를 정신적인 생활에서 의식하게 된 결과라고 보는 사람은 물질적인 것 속에서 정신적인 것의 창조력을 인정하는 셈이다. 우리는 이러한 힘을 마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제2의 원천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권 606쪽.

엘렌이 온 후로 크로코프스키 박사는 더욱 이러한 문제를 상세하게 논하기 시작했다. 엘렌은 동료 환자들과 영혼을 소환하는 교령회를 개최한다. 그러한 교령회에서 한스는 요아힘의 유령을 만났다. 세템브리니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자 그는 엘리를 상종못할 사기꾼이라고 매도했다. 꿈의 요소와 현실적인 요소가 뒤섞인 속임수라는 것이다.

“속임수라니까요! 삶의 비밀이라고요? 사랑하는 친구! 사기와 현실을 결정하고 구별하는 도덕적인 용기가 무너지는 곳에서는 삶 그 자체, 판단이며 가치, 혁신적인 행위가 끝장나고, 도덕적인 회의가 끔찍한 분해 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하권 631쪽.

한스 카스토르프는 요아힘 유령을 본 후로는 교령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토록 오랫동안 설전을 벌여왔던 논쟁은 책이 끝날 무렵에도 그칠 줄 모른다. 독자도 심오하게 빠져드는 우주론까지 나온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이다.

“말하자면 사실주의란 진정한 허무주의라는 인식에 도달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아무리 큰 것이라해도 무한한 것에 비하면 영(零)과 마찬가지라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한한 공간 속에는 크기란 없고, 영원한 시간에서는 지속도 변화도 없기 때문이다. 무한한 공간 속에서는 거리란 것도 수학적으로 영과 같기 때문에, 나란히 선 두 점도 존재할 수 없으며, 물체나 운동 같은 것은 더구나 말할 것도 없다.” 하권 679쪽.

낭만주의와 계몽주의, 자유의 개념, 개인주의, <기독교의 신비주의>를 저술한 괴레스, 루터의 종교개혁, 세템브리니와 나프타는 열띤 토론을 벌이고, 세템브리니는 나프타에게 그만 강론을 끝내라고 했다. 나프타는 그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결투에서 세템브리니는 나프타에게 총을 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대신 공중을 겨냥한다. 나프타는 그를 겁쟁이라고 부르고 총에 맞는 것보다 쏘는 데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며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쏜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요양원에서 보낸 지 총 7년이 지난 1914년,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여 환자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고 한스는 자발적으로 전쟁에 나선다. 마법의 저주에서 풀려나 구원되고 해방된 느낌의 한스 카스토르프는 산 위에서 산 아래로 내려온다. 치열한 전투속에 수많은 군인들이 죽고, 한스 카스토르프는 죽은 전우의 손을 군화발로 밟으며 앞으로앞으로 걸어간다. 입으로는 “보리수” 노래를 흥얼거리며.


2022년 6월 다보스 여행 중.

<마의 산> 상권, 하권 통합 정리.

책 전반에 걸쳐 토마스 만은 세템브리니와 나프타,  의료진 간의 논쟁을 통해 젊은 한스 카스토르프에게 계몽주의 시대에 대응하는 다양한 경쟁 이념을 소개한다. 질병과 죽음을 지식, 건강, 삶에 이르는 필수 통로로 그린다.


대위법

인물, 공간, 사상

상권 하권을 다 읽은 후 <마의 산>의 대위법 구성을 꼽아본다. 이미 부분적인 문맥을 짚어봤으나 책 전체의 구성이 어떻게 엮어졌는지 종합해본다. 

민간인 한스 카스토르프와 군인 요아힘 침센, 자유주의 세템부리니와 전체주의 나프타, 산 아래(이 아래) 평지의 일반성과 건강 그리고 산 위(이 위)의 특수성인 질병, 정신적인 문제를 다루는 크로코프스키와 신체적 질병을 다루는 베렌스, 핵심 스토리인 죽음의 낭만주의와 삶의 긍정, 이렇듯 모든 면에서 대립을 이루는 대위법으로 구성했다. 

명상

한스 카스토르프는 명상을 한다. 발코니에서 접이식 침대에 누워 안락한 호텔식 명상, 눈속에 파묻힌 깊은 산속에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한다. 명상을 통해 대위법적인 꿈을 꾼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꿈과 끔찍하게 무서운 꿈. 한스 카스토르프는 명상을 통해 마음 속에 대립되는 두 세계를 극복한다. 

"인간은 착한 마음씨와 사랑을 위해 자신의 생각에 대한 지배권을 죽음에 넘겨주어서는 안된다. 자, 이제 눈을 뜨기로 하자. 이것으로 나는 꿈을 끝까지 다 꾸고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하권 295쪽.

책의 결말

가곡 <보리수>로 대미를 장식한다. 전쟁의 참혹함과 낭만주의적 죽음이 동반된다. 독일의 국수주의적 광란과 아름다운 멜로디가 대립된다.


시간

산 위 요양원 베르크호프에서는 시간이 완전히 다르게 인식된다. 산 아래에서 알고있던 시간은 베르크호프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미 ‘시간’을 여러 의미로 구별했다. 

크로노스 Chronos, 카이로스 Kairos, 아이온 Aion이다. 크로노스는 사건과 사물의 시점, 시간을 나누어서 특별히 표현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과 내가 접촉하는 것이 카이로스이다. 흔히들 ‘시간이 흐른다’고 표현하니 흐르는 강물을 예로 들어보자. 흐르는 강물은 크로노스 시간이다. 내가 있든없든 시간은 흐른다. 내가 경험하는 것 -그 강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아이온은 영원의 시간이다. 종교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한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베르크호프에서 새로운 차원의 시간을 발견했다. 그의 시간은 크로느스에서 카이로스로 변했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인생의 진정한 면을 배운 곳, 베르크호프에서 그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의 카이로스 시간을 크로노스 시간으로 따지자면 7년이다. 하이데커(Martin Heidegger, 1886-1976)는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는 시간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자신의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존재의 사건에 참여하여 부름에 응답할 뿐이라고. 한스 카스토르프가 베르크호프에서 보낸 마법의 시간 7년이 그의 존재를 말해준다. 산 아래로 내려오기 전까지의 그 카이로스의 시간은 한스 카스토르프에게 어쩌면 아이온 시간이었을 지도 모른다. 짧지만 실제로 얼마나 길거나 짧은지는 감각할 수 없는 시간.  

여름에 눈보라가 치고 겨울에 상상할 수 없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봄이든 겨울이든 언제나 바뀔 수 있는 다보스 산간지역의 날씨는 크로노스로 구분할 수 없는 아이온의 시간 아닐까. 한스 카스토르프의 '멍때리기'는 점점 심해져서 마침내 그는 더 이상 회중시계를 들고 다니지 않고, 시간 감각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된다. 아이온의 시간 속으로 들어갔는지.


라이트모티프

프리비슬라프 히페와 클라우디아 쇼샤. 쇼샤부인이 등장하는 여러 장면은 한스 카스토르프가 학창시절에 좋아하던 히페를 끌어들인다. 히페에게 연필을 빌렸던 일은 쇼샤부인에게서 연필을 빌리는 일로 이어지며 반복된다. 쇼샤부인에게 연필을 빌린 날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으로 '연필'이 라이트모티프로 등장한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양성애자로 암시되었다.

체온계

책의 배경이 요양원이기 때문에 체온계는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체온을 속이기 위해 사용되는 눈금이 없는 수은주 '무한정 체온계'는 책의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라이트모티프다. 

인물 묘사

세템브리니-나사羅紗 자켓에 체크무늬 바지와 거리의 악사 손풍금장이, 쇼샤부인-키르키스인의 눈 그리고 문을 쾅닫는 습관, 페퍼코른-찢어진 눈, 한스 카스토르프-인생의 걱정거리 자식. 

숫자 7

<마의 산>은 7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책에서는 마법의 속성이 있다고 믿어지는 숫자 7을 자주 사용한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일곱 살 때  부모가 다 죽는다. 한스 카스토르프의 방 번호는 34(3+4)로 7을 암시한다. 세템브리니Settembrini 이름에도 7(이탈리아 sette)이 들어있다. 베르크호프에 7년을 머문다. 7개월 만에 사육제의 밤에 쇼샤부인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 검온(체온을 잼) 시간은 7분이다. 식당에는 7개의 식탁이 있다. 만치니(파이프용 잎담배)의 맛은 7일 만에 죽고(맛이 가고), 브레멘에서 가져온 만치니는 700개이다. 요아힘(Johachim)과 카스토르프(Castorp)의 알파벳 숫자도 7글자, 이렇게 '7'이라는 숫자가 반복된다. 서양 사람들은 숫자 7을 선호한다. 성경에서는 7을 완전수라고 한다.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와 땅의 동서남북을 더하여 하늘과 땅의 결합으로 완전한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음악

한스 카스토르프는 베르크호프를 떠나기 전에 음악에 푹 빠져든다. 작가 토마스 만은 자신의 음악적 소양을 아낌없이 펼쳐놓는다. 전문적인 해설이다. <마의 산>은 한스 카스토르프의 베르크호프 7년동안 삶을 음악의 한 옥타브 7음계처럼 책을 7장으로 구성했다. 책에 나오는 음악을 알고있다면, 작가가 왜 그 음악을 채택했는지 소설과 음악의 관계를 짝지어 보는 것도 책 읽기의 색다른 맛이다.

우리집 한 구석에서 오랫동안 잠자고있는 구시대(?)의 유물 CD와 DVD가 먼지를 씻고 제 역할을 할 때이다.

아이다  

<마의 산>을 '산 위'와 '산 아래'의 이분법적 대위법으로 구성한 것은 마치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1813-1901)의 <아이다> 무대와 같다. 7장 "아름다운 음의 향연"에서 <아이다>가 소개된 부분을 읽는 동안 오페라 무대가 눈에 선했다. (첫 딸이 중학교 입학한 기념으로 예쁜 옷으로 치장시키고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오페라 <아이다> 공연을 보러 갔었다.) 마지막 4막의 2중 무대는 베르디가 창안했다고 한다. 상단은 신전이고 하단은 돌무덤인데 <마의 산>의 '산 위'와 '산 아래'가 연상된다. 또한 한스 카스토르프가 늘 지니고 다니는 흉부엑스레이 사진은 <아이다>의 신전 지하에서 발굴된 해골과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목신의 오후 전주곡 

드뷔쉬(Claude Debussy, 1862-1918)가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1842-1898)의 시 <목신의 오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다. 몽환적인 곡을 들으며 한스 카스토르프는 몽환적인 꿈을 꾼다.

"그는 형형색색의 별 모양의 꽃들이 만발하고 햇빛에 눈부시게 빛나는 풀밭에 등을 대고 반듯이 누워, 불룩 튀어오른 땅바닥을 베개삼아 ..." 하권 589쪽.

카르멘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오페라.

<카르멘> 2막 후반부에서  영창에 들어갔던 호세가 석방됐을 때 카르멘이 카스터넷을 치면서 춤추며 "당신을 위해 춤을 추려오"를 부르는데 멀리서 귀영나팔 소리가 들린다. <마의 산>에서는 이 부분부터 소개된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쇼샤부인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을 담아 이 음악을 들려준다. 잠시 책을 떠나 오페라 <카르멘>을 음미해보자. 

오페라 <카르멘>은 '라이트모티프' 기법으로 짜여졌다. 관현악으로 연주되는 경쾌한 행진곡(4막 투우사들의 입장, 2막 "투우사의 노래")과 '운명의 테마'인 음산한 분위기의 선율(1막3막 카르멘의 등장, 2막 "꽃의 노래" 도입부, 3막 트럼프로 점치는 장면, 4막 카르멘이 죽는 장면)로 구성됐다. 

2막에서 행진곡이 반복되면서 갑자기 '운명의 테마'가 흐르며 카르멘의 죽음을 암시하는데, 이는 <마의 산>에서 한스 카스토르프가 사랑하는 쇼샤부인과 헤어짐을 암시하는 것같다. 결과적으로 둘은 소설이 끝나기 전에 헤어진다.

파우스트 구노(Charles-François Gounod, 1818-1893)의 오페라.

한스 카스토르프는 <파우스트> 2막에 나오는 발렌틴의 카바티나를 들으며 사촌동생 요아힘 침센을 생각한다. 카바티나는 오페라에서 긴 아리아에 비해 짧은 노래이다. 극중 발렌틴이 출정을 앞두고 홀로 남는 동생 마르가레트를 위해 부르는 노래이다. <마의 산>은 한스 카스토르프가 베르크호프에서 요양중인 사촌 요아힘 침센을 방문하여 시작된 이야기이다. 요아힘은 군인으로, <파우스트>의 발렌틴에서 요아힘을 연상할 수 있다. <마의 산> 7장 "참으로 수상쩍은 이야기"에서 교령술로 죽은 요아힘을 불러낼 때 틀은 음악이 <파우스트>의 "발렌틴의 기도"이다. 

세템브리니는 베르크호프에서 벌어지는 사육제를 "발푸르기스 밤"으로 비유하는데 "발푸르기스 밤"은 오페라 <파우스트>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이다.

보리수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가곡 <겨울 나그네> 다섯 번 째 곡.

우리나라에서 국가행사를 할 때 많이 부르는 노래가 "아리랑"이다. 국민 정서에 잘 맞는 아리랑은 여러 버전으로 편곡되어 행사에 모인 관중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독일에서는 "보리수"가 독일인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곡이라고 한다. 독일 낭만주의 시와 음악의 만남이다. <겨울 나그네> 24곡중 조성의 변화가 가장 심한 곡으로 알려져있다. 토마스 만은 이 곡을 "민족의 자산이며 걸작"이라고 했다. 

책의 마지막 장 7장의 "청천벽력"에서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전쟁의 발발로 한스 카스토르프는 7년간 머물었던 베르크호프를 떠나 전장으로 간다. 전장! 우리에게도 전장을 묘사한 노래가 있다.

<전우야 잘 자라> - 유호 작사, 박시춘 곡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구를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자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한스 카스토르프가 부른 "보리수" 가사를 읊어보자. 

빌헬름 뮐러(Wilhelm Müller, 1794-1827)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것이다. 

<보리수(독일 Der Lindenbaum)>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 꿈을 보았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 
오늘 밤도 지났네 그 보리수 곁으로 깜깜한 어둠 속에 눈 감아 보았네 
가지는 산들 흔들려 내게 말해주는 것 같네 '이리 내 곁으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고 
찬 바람 세차게 불어와 얼굴을 매섭게 스치고 모자가 바람에 날려도 나는 꿈쩍도 않았네 
그곳을 떠나 오랫동안 이곳 저곳 헤매도 아직도 속삭이는 소리는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라

<마의 산>의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지옥의 개'가 으르렁거리는 전장에서 독일 민족의 노래 "보리수"를 부르며 사라져가며 소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솔직히 내가 어찌 "전우야 잘 자라"를 알겠는가. '전장'의 경험도 없고, '전우'에 대한 끈끈한 정도 모른다. 어려서 고무줄 놀이할 때 뜻 모르고 부르던 노래일 뿐이다. 그런데 한스 카스토르프가 "보리수" 노래를 부르며 사라져가는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전우야 잘 자라"가 떠올랐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참전한 전쟁에서 케르베로스(지옥문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개)가 연상되었고,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구를 무찌르고서"의 적구(赤狗-공산당의 개)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한스 카스토르프의 장렬한 또는 처참한 전사장면으로 끝맺지 않고 "사라져 간" 끝맺음은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가사가 곧 뒤따라 왔다. 어쩜 이런 연상작용은 나만큼 나이먹은 사람에게나 일어나는 감성인지도 모른다. 한창 젊은이들이 읽을 때는 어떤 감성일지 궁금하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전장에서 사라지는 장면에 왜 "보리수"를 불렀는지 나는 마치 토마스 만의 마음 속을 훔쳐본 듯 이해가 잘된다.


<마의 산>에 대한 리뷰를 다 쓰자면 또 한 편의 글을 발행해야 할 것이다. 못다 쓴 내용이 정말 많다. 지금도 충분히 긴 글이지만. 어려서 철없이 부르던 고무줄 노래 "전우야 잘 자라"와 "보리수"를 부르며 목이 메어온다. 리뷰는 이쯤에서 맺는 것이 좋겠다.


작가 소개를 줄인다.

토마스 만은 독일과 미국에서 명예박사, 교수직 등 수많은 상을 받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1929년에 노벨 문학상과 예술상을 받은 것이다. 미국으로 이주한 뒤, 다시 스위스로 이주하고 마침내 1955년 8월 12일 취리히에서 사망했다. 그러나 그는 독일인이고 그의 문학도 독일문학이다.




아래 글에는 '지금'이라는 시간에 대한 예술가의 설명이 있다.  앞에 설명한 시간 개념에 더해 읽으면 좋을 것같아 옮긴다.

https://brunch.co.kr/@erding89/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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