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올리는 책 리뷰는 옆지기도 보고 아들도 본다. 옆지기의 피드백은 특별한 게 없이 그냥 책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아들은 다르다. 엄마는 도대체 왜 책 리뷰를 쓰는 거냐고 한다. 내가 쓴 책 리뷰는 평도 아니고 독후감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잘 쓴 리포트라고 한다. 긴 글을 읽는 사람이면 그 책을 사서 볼 것이고, 읽고 난 후의 느낌을 알고싶은 사람이라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글이라는 것이다. 아들아,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길긴 길지, 인정! 그런데 작가 소개를 제대로 쓰지 않은 것이 늘 마음에 걸리는데, 그것까지 쓰면 더 길어지거든. 글을 조절하느라고 몇가지 개념을 빠뜨린 것이 자꾸만 걸리는데...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사람이 핵심을 콕 찝어내어 압축 요약할 줄 몰라서 글이 추~욱 추~욱 늘어지는 것이다. 내가 그렇다. 모두가 다 중요하게만 느껴져서 그저 떠벌여놓기만 한다.
리포트 같은 책 리뷰, 맞는 것 같다. 어느 날은 브런치 매거진 "책을 읽다"에 올린 나의 글이 갑자기 조회수가 많아진다. 검색어를 보면 같은 OOO라는 검색어가 여러 명이다. 10명 이상, 어떨 때는 20명 이상일 때도 있다. 검색보다 훨씬 많은 조회수는 갑자기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린다. 갑자기 왜 그 검색어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마 그 책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온 것이겠지. 궁금한 것은 방문 조회수는 갑자기 많아지는데 그날 구독자는 1명도 안 늘고, 좋아요도 댓글도 전혀 표시가 없다. 조회수만 엄청 많아지는 것이다. 그 책에 대한 내용이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자기네들 필요한 것만 취하고 가나보다. 나의 글이 그런 방식으로는 쓸모가 있는 것일까?
함께 나누고싶은 것은 사람의 본성이다. 여행을 가서 좋으면 함께 오지 않은, 그곳에 한 번도 못와본 가족들 누구누구가 생각나고, 다음번에 꼭 같이 와봐야지, 작은 다짐을 한다. 제 발로 잘 다니는 친구들에게는 여기가 정말 좋으니 너도 꼭 와보라고 권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머나 이것 누구누구가 좋아할 것같은데! 여기는 맛집이야, 친구들아 와서 먹어봐, 정말 맛있어. 다음 가족 외식 때는 그곳으로 간다. 보통 사람들은 다 그렇치 않은가. 좋은 것을 보면 가족이 생각나고, 지인이 생각나고, 알려주고싶고.
영화를 봐도 좋고 재미있으면 지인들에게 그 영화를 추천하고 권한다. 마찬가지로 책을 읽고 배운 점이 많거나 감동적이면 지인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고싶다. 책속에 숨어있는 것들을 드러내고 알리고싶다. 난 그저 보통사람의 일반적인 심성을 지녔을 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책리뷰를 쓴다.
인용구가 많아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이 문장을 읽고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 이런 감상도 있네, 감탄한 문장들을 나만 알고 있기로는 아까운 구절들이라서. 그런 마음으로 책리뷰를 쓴다. 학교의 리포트 자료가 필요해서 나의 브런치까지 찾아왔다면 필요한 대로 마음껏 참고하시라. '복붙'은 양심대로 하시고, '참고'는 공짜니 마음껏 참고하시라. 독서클럽에서 정한 책이라 리뷰를 찾아본 것이라면 본인의 시각과 리뷰를 쓴 나의 시각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글에 어떤 부분이 다른지, 리뷰의 오류는 어디에 있는지 댓글을 남겨준다면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것저것 신변잡것들을 정리하는 중이다.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을 책 목록도 꼽아보는 중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의 책들은 더 오래 붙들고 있을 것이다. 곰브리지의 <서양미술사>와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도 아직 떠나보낼 수는 없다. 문제는 이렇게 욕심을 부리다가 아무것도 손놓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다. 마음을 고쳐먹는다. 결국엔 사람 손도 놓을 텐데 물건들이야 뭐......
어떤 대학생이 리포트에 참고하려고 나의 책리뷰 글을 훑어본다면, 그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를 위해서 책리뷰를 계속 쓸 것이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고 기쁜가! 그가 또는 그녀가 리뷰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원래 책을 통째로 다 읽게된다면 그또한 좋은 일이고. 거기서 인생 구절 몇 문장 건진다면 더 좋은 일이고. 아들이 '이건 책 리뷰가 아닌데요. 독후감도 아닌데요.'하고 저 잘난체를 하든말든, '나는 엄마가 왜 리뷰를 이런 식으로 썼는지 이해가 안가'라고 하든말든, 나의 책 리뷰는 계속 리포트식으로 쓸 것이다. 필요해서 찾는 한 사람, 두 사람,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가 되도록. 3남매를 공부시킬 때 늘 하는 말이 공부해서 남주라는 말이었다. 배울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진 너희들이 부지런히 배워서 너희만큼 못배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가르쳤다. 그러니 나는 부지런히 읽어서 읽지않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라도 해야겠다. 그러다가 기운이 딸리면 그저 느낀 점 몇 줄로 그치게 되겠지만.
브런치 북 "김홍도vs 반고흐 시대를 그리다"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전체를 고르게 읽는 것은 아니고, 어느 날에는 한 가지 글이 조회수가 폭주한다. 책리뷰처럼 역시 누군가 필요에 의해서 검색으로 들어온 독자일 것이다. 책리뷰는 원래 책을 읽으면 대부분 비슷비슷한 리뷰가 나올 것이다. 풍속화 설명은 같은 그림이라도 '인터넷에 떠도는 흔한 이야기'를 넘어 실록과 고전을 일일이 찾아가며 많은 공을 들여서 쓴 글이다. 인터넷에 널려있는 또 하나의 글, One of them으로 취급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바쁜 일이 마무리되었다. 이 가을엔 책 읽기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옆지기는 바른쪽 어깨 수술을 했는데 이제 고정장치를 풀고 재활운동을 시작했다. 아직 밥숫가락은 왼쪽으로 들지만 양손을 이용하여 컴퓨터 자판은 두드린다. 그가 수술하고 회복하는 동안 나는 그의 오른 팔, '우백호 右白虎'였다. 경인년 백호랑이 해 출생이니 확실한 '우백호'아닌가. 그동안 내가 먼저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보다 먼저 죽는다면 얼마나 큰 복인가. 남편 병치레하느라고 육신이 고달플 일도 없고, 혼자 남아 외로운 일 없이 가버리면 아내로서는 큰 복이지. 그런데 한쪽 팔을 못쓰는 그의 곁에서 보조하며 '내가 더 오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혼자 남은 그가 육신을 제대로 못쓰게 될 때를 생각하니 안되겠다. 늙은 나라도 곁에서 조금이나마 보조를 해줘야한다는 생각이 굳었다. 혼자 남아서 겪을 일들은 내가 겪을 것이다.
서울에 혼자 다녀온 그가 USB와 아이폰을 찾느라고 수선을 떨었다. '아마 오피스텔에 두고왔나봐' 이런 위로를 하며 기차를 타고 그걸 찾으러 갔다. "만약에 오피스텔에 없으면 어떡하지?" 내가 물었다. "그럼 패닉이지." 그의 대답에 가슴이 두근두근하기 시작했다. 오피스텔 비밀번호를 누르며 심장이 펄떡펄떡 뛰었는데 다행히 USB는 책상위에, 아이폰은 이불속에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아마도 앞으로는 이런 일이 또 생기고, 자주 생기게 될 것이다. 물건은 잃어버려도 정신은 꼭 붙들고 살면 좋겠다. 물건은 남이 함께 찾아줄 수 있지만 정신은 다른 사람이 찾아줄 수 없으니 말이다.
기차 시간 여유가 있어서 계획에 없던 영화를 보았다. "플라워 킬링 문"을 3시간 반 동안 관람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믿고, 관심있는 로버트 드니로가 나온다니 기대를 했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영화 내용은 생략한다. 다만 나의 한 줄 감상평은 이렇다.
서부 개척시대에 미국인들이 인디언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만행은 분명히 사회적인 대학살이다. 국가의 집단 범죄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회적 문제를 영화는 돈에 미친 개인의 범죄로 다뤘다. 허긴 그런 개인들이 모이면 집단이 되는 것이지만, 개인의 범죄로 조명한 영화에 허전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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