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gen Jul 09. 2020

너무너무 사랑해서

여자가 쓴 남자이야기 2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의 사랑은 변함없다!  

아니, 변화가 있기는 하다.

늙어가면서 그 사랑은 점점 더 커지는데

젊어서 깜찍하던 사랑이 늙어가며 끔찍해진다는 변화는 있다.....


거울을 들여다본 여자. 희끗희끗한 흰 머리가 점점 늘어간다.

염색을 해야 할 것 같다.

마침 빈둥빈둥 놀고있는 남자가 눈에 띤다. 옳다. 미장원 염색비용 아끼자.


나 염색해야겠네. 혼자 하려면 힘든데 좀 칠해줄래?

안 해봤는데 어떻게 칠하지? 미장원 가서 하지 그래.

냥 흰 머리 보이는데 바르면 돼. 자기 꼼꼼해서 잘 할거야.


어깨에 투명비닐 망토 두르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여자.

꺼먼 염색약 묻은 붓으로 머리결 따라 헤쳐가며 성질처럼 아주 꼼꼼히 칠하는 남자.

운전석 남자는 운전대만 잡았을 뿐 운전은 조수석에 앉은 여자가 입으로 다 하듯이, 염색 붓은 남자가 잡았을 뿐  염색은 여자가 입으로 다 한다.

이쪽, 저쪽, 빠진데 없이 잘 칠해야 돼.

알았어. 잘 하고 있다구. 이제 거의다 됐어.


샤워캪 뒤집어쓰고 염색머리 말린 후, 샴푸하고 린스하고 거울 앞에 선 여자.

으악, 으악, 이게 뭐야?????

왜, 왜? 뭐가 잘못됐어?

흰 머리가 다 그냥 그대로 있잖아, 하나도 안 칠했잖아, 도대체 염색약은 다 어디에 쳐바른거야?

어딘 어디야 머리카락에 다 발랐지. 얼마나 꼼꼼하게 바르느라고 애썼는데 도대체왜그래?

아이구~ 맙소사. 이걸 칠했다구 하냐?


남자는 머리카락 뿌리 부분은 1Cm가량 남겨두고 그 위에 정말 열심히 애써서 염색칠을 다 했다.

억울하다. 그렇게 공들여 했는데.......

머리카락 뿌리부분. 그 부분이야말로 흰 머리가 새로 자라나오기 시작하는 곳이니 철저히 꼼꼼하게 칠해야 할 부분인데, 남자는 그 두피 부분을 아주 조심조심 남겨가면서 염색을 끝냈다.

경악한 여자의 추궁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쩔쩔매며 하는 남자의 대답은

"염색약이해롭다는데... 두피에 묻으면 건강에 해로울까 봐..... 자기머리 길으니까 고까짓꺼 쪼금씩 안 칠했다고 표도 안날거야, 아주 쪼끔씩이라 표 잘 안난다니까...."

"그래, 두피에 안 묻게 한 것은 잘했다 잘했어, 그런데 머리카락 뿌리는 철저히 칠했어야지, 두번 세번 칠했어야지!"

두피에 묻을까봐 조심조심 두피에서 띄워서 약칠한 남자는 아직도 억울하기만 하다.

그렇게 하느라고 얼마나 애쓰고 조심했는데... 정말 억울하다.

염색약이 정말 해롭다는데,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세상에 이런 남자가!!! 세상에 이런 사랑이!!!


작가의 이전글 자기 커피 좋아하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