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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Aug 09. 2020

나의 아이디는 morgen입니다.

<나도 작가다> 3차 공모전

앞부분은 뚝 잘라놓고 이야기해야겠다. 

70년 살았는데 나를 다 얘기하자면 부드럽고 달콤한 커피라떼가 지겹고 쓴 꼰대 “나 때”가 될테니 말이다.


그때, 나이 쉰을 넘길 때는 많이 불안하고 초조했었다. 쉰(50세)세대가 쉰(상한)세대가 될까봐 안달을 했었다.

그 무렵 원격대학이 설립되기 시작했고, 2002년 나는 한국디지털대학의 문화예술학과 산소학번 신입생이 되었다(현재 고려사이버대학).

고등학교 때 그렇게 공부했으면 SKY로 날아갔겠다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여 140학점을 이수하고 졸업을 했다.

총기가 번쩍이던 20대 때보다 50대로 넘어간 그 시절에 더 깊고 넓은 지식을 습득했다.


학교 싸이트에 접속하기 위한 아이디가 필요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여기저기 가입하던 초기에는 내 거주지 이름을 아이디로 사용했었다. 그런데 학교에 사용할 아이디는 새롭게 하고싶었다. 쇼핑할 때, 시답잖은 잡문을 읽을 때, 영화를 장르불문 폭풍 시청할 때 사용하던 아이디를 그대로 쓰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새 아이디를 만들었다. morgen이다.

독일어 단어 morgen은 “아침” “내일” 이라는뜻이다. 아침도, 내일도 다 좋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끔찍한 시절도 있었고, 빨리 내일이 오기를 기다린 설레임의 시절도 있었다. 나의 상황이 어떻든 어김없이 아침은 돌아왔고 내일도 찾아왔다. 나는 그렇게 이어지는 아침과 내일 속에 있을 때만 존재한다. 아침은 출발을, 내일은 미래를 의미한다. 나이 50대, 인생의 후반기를 출발과 미래를 상징하는 아이디를 사용하며 걸어온 시간도 벌써 20년이 되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의 두 배나 되는 그 시간을 나는 아침과 내일로, 출발과 미래로 살아왔고, morgen이라는 나의 아이디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던 나는 50대 후반에 손으로 책 만들기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북아트”로 통칭되는 책만들기는 내 적성에 꼭 맞았다. 책은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관심있는자료를 모아서 엮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북아트의 매력에 푹 빠진 나는 H대 미술교육원에서 여러 기법들을 배우고 익혔다. 런던의 개인 북바인딩 작가에게서 그룹 지도도 받았고, 영국 West Dean College에서 여름학교 북바인딩 코스에도 참여했다.

영어도 잘 못하는 나, 50대 후반인 나,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를 얻었을까? 내가 누구인가? 나는 morgen이 아닌가! “내일”로 담대하게 나아가야지.

평생 몸담고 하던 일도 아닌데 나는 환갑 기념으로 북아트 개인전을 열었다. 물론 갤러리의 초대전은 아니었고 자비로 연 전시회였다. 환갑 선물로 하나쯤 얻어가질 수도 있는 명품 백 대신 인사동의 경인미술관을 대관했다. 전시회에 거의 필수적으로 만드는 카달로그, 브로셔, 팜플렛, 그런 것 대신에 작품 사진과 수필이 있는 책을 출간했다.

전시회 이후 작가로서의 입지가 굳어질 것이라는 계산은 전혀 없었다. 내 아이디처럼 그냥 내일로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이다.


아이디를 morgen이라고 짓기를 참 잘했다. 육십 갑자를 되돌아 온 후에도 나는 늘 아침의 기운으로 내일을 향해 나아갔으니 말이다.


서울의 사립 미술관 L에서 도슨트 활동을 하게 되었다. 쉰 살 넘어 전공한 문화예술에 대한 아주 쬐끄만 지식이 바탕이 되었다. 도슨트로서의 공부는 그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단 한 화면으로 표현된 그림을 공부하고 설명하자면 화면 뒤에 겹겹이 자리잡고 있는 모든 상황들을 이해해야 한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역사와 사회상을 다 이해해야 한다.  20내지 25작품을 설명하기 위해서 200여개의 상설전 모든 작품을 다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 유럽의 많은 미술관들을 찾아다니며 실제 원화를 감상했던 경험은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본 그림과 실제로 본 원화가 주는 감동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늙었지만 내일로 내일로 향해 나아가고 있는 나는 도슨트의 길도 열심히 걷고있다. 이제 13년째인데 항상 첫 날 같고, 항상 초보처럼 설레이는 그 매력에 깊숙이 빠져있다. 나의 여생과 건강이 허락한다면, 내가 절뚝거리며 앞장서서 걷는 것이 뒤따라 오는 관람객들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전시장에 설 것이다.


이제 나이 70이 되었다. 그대로 걷던 길만 걸으면 될까? 아니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morgen이다. 나의 아이디 morgen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침과 내일, 출발과 미래를 뜻한다. 그럼 또 미래로 출발을 해야지!


지난 5월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는 분명히 공적인 장이지만 나는 거기에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내 인생을 스스로 들여다보고 있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얻는 지식과 지혜가 많고 크다. 나의 글을 객관화 시키고 다른 작가의 글과 견주어 평가해보는 경험은 새로운 맛이다. 그러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 나의 글에 무엇이 부족한 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삶의 향기가 묻어는 있으되 그 냄새가 열정적으로 일한 후에 풍기는 땀냄새나 생활속에서 배어나오는 묵은 내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미사여구를 남발하지는 않았지만 멋진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하여 그 내용물의 진실에 접근하는 것에 훼방이 되었다. 생의 진솔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나는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는 감동과 내 글의 부끄러움을 많이 느꼈는지 모른다. 앞으로 나의 글도 조금 바뀔 것 같다. 아니, 바뀌어야 한다.

아하! 내가 나를 이렇게 잘 알게 되다니 나는 드디어 철학자가 된 것일까?


어쨌든, 지금까지 나를 이끈 것은 나의 아이디 morgen이고, 내가 그 아이디의 의미에 충실 했을 때가 가장 나다운 모습인 것은 분명하다. Morgen의 뜻 아침과 내일, 그 단어에 내가 부여한  상징 출발과 미래, 지난 20여년간 나를 가장 나답게 해 준 고마운 나의 아이디 morgen이다.


물론 나는 이 밤이 지나면 또 아침을 맞을 것이고, 내일로 향할 것이다. 나의 브런치에 그 발자국을 남기며 내일로 내일로 걸어갈 것이다. 나는 morgen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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