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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Aug 16. 2020

초상(肖像) 박 춘자 7

7화 / 유화 3

유화 3


“엄마, 내가 잡채거리 다 채쳐놨어요. 그리고 오늘 아줌마 오는 날이라 총각김치 담았는데 좀 가지고 왔어요.”  

“시집간 딸이, 임신해서 배부른 딸이 친정 엄마에게 김치를 담아다 준다?  하하하.”  

유쾌하게 웃는 남편의 웃음 소리가 거실에서 주방까지 휘익 달려왔다.

“엄만 전시회 준비로 바쁘시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아줌마한테 시키니까 더 많이 해서 가지고 왔죠, 뭐.”  


지선은 유정이 채쳐놓은 야채들을볶으며 거실 쪽으로 목을 길게 뽑았다.

“네가 벌써 파출부를 쓰는 거니?  두 식구에 할 일이 뭐가 그렇게 많다고.”  

“내가 뒤뚱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안쓰럽다고 영식씨가 불렀어요.”  

영식은 식당으로 와서 상을차리고 있었다.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하겠지.”

준호가 지선의 말을 막았다.


두 남자와 유정이 크리스탈 포도주 잔까지 꺼내놓고 상을 다 차렸다.

“엄마, 전시회 준비는 잘 돼가죠?  그림은 결정하셨어요? 역시 데이지 꽃?”

“파격이다. 나도 꽃 정물화를 권했는데 글쎄 네 엄마가 고른 것은 좀 엉뚱하단다.”

“어떻게 엉뚱한데요?”  

“너 그 그림 본 적 있던가, 고양이가 나무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의자 오른 쪽 앞에 검은 가죽 장화가 있는 그림 말이야.”  

남편은 그 그림을 영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정은 쾌활하게 웃었다.

“아빠, 그건 가죽 장화가 아니라 비닐 장화라니까. 아니면 에나멜 장화.”  

“그리고 하나는 우리 베란다에서 그린 서울 야경이야.”  

“음, 그, 튜브 꼭지를 직접 종이에 대고 짜서 짓뭉갠 불빛?  엄마, 난 그 그림이 좋아요. 그건 불빛이 아니라 불덩어리 같이 보이는데 그게 참 멋있어요. 전시회 끝나면 내가 가져도 돼요?”  

“그럼 네가 그 작품을 사야지. 전시회 작품들을 판매한단다. 수선화 회원들이 그 판매 대금을 불우이웃돕기 기금으로 내놓기로 했대. 이서방한테 사 달라고 하거라.”  

준호가 영식을 넌지시 바라보며 답을 한다.

“아, 그러셨어요? 우리 엄마 좋은 일하시네. 그러면 작품을 많이들 내놓으시잖구 왜 한 사람에 두 작품씩으로 정하셨어요?”  

“망신은 작품 둘로도 충분하다. 더 냈다간 큰일 나라구? 난 정말 이번 전시회가 겁나 유정아. 엄마는 떨린다구. 이제라도 나는 슬쩍 빠질까?”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즐겁게 하시기로 했잖아요. 취미로 하시는 거지 전문으로 하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그래도 남에게 내걸고 보여줄 정도는 아직 아닌데, 이렇게 전시회랍시고 떠벌여도 되는지 모르겠어. 내가 어쩌다가 이런데 휩쓸리게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지선은 애초부터 전시회에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사람들을 초청해서 보일 만큼 좋은 작품이란 자신감이 없었다. 그림을 적어도 10여 년간은 그린 후에 그 중 내세울만한 그림 몇점 골라서 내 거는 게 바로 지선이 생각해오던 전시회의 개념이었다. 앞에 나서서 발언하는 성격도 아니고, 자신의 의사를 고집 세게 주장하는 성격도 아닌 지선이 수선화의 흐름을 딱부러지게 반대하지도 못하고 어영부영넘기다가 전시회에 출품하게 된 것이다.


“그래, 여보, 당신이 완벽주의 성격이라 그렇게 걱정이 많은 게야. 마음 편히 먹고 즐겁게 해요. 배우는 과정에 이렇게 남에게 보여줘 가면서 발전하는 거라구.”  

“난 작품을 판매하는 것도 걱정이 많아요.누가 값 치르고 가져갈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냥 자꾸만 걱정이 돼.”  

“어머니, 왜 그러세요. 집사람이 갖고 싶어하는 그림은 제가 먼저 맡아 놓습니다. 남에게 뺏기면 큰일이니까요. 어머님 작품은 제일 먼저 팔릴 거에요. 제가 다 보는 눈이 있지 않습니까?  자, 어머니 포도주 한잔 하세요. 전시회 예비 축하 술잔입니다. 진짜 축하는 나중에 또 있지요, 아버님?”  

영식이 지선을 안심시키기 위해 너스레를 떤다.

“그럼, 진짜 축하연이 있구말구.”  

“아빠, 기대되네요.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할 멋진 축하연을 준비하세요. 아셨죠?”  

유정의 들뜬 목소리에 모두들유쾌하게 웃으며 와인잔을 부딪쳤다.


유정이 부부가 오는 날은 졸고있던 실내의 모든 것들이 깨어난다. 유정이는 초롱 꽃에 불을 밝히는 재주를 가졌다. 남편은 초롱불이 환하게 켜 있을 집을 향해 모든 것을 던져두고 걸음을 재촉한다.


그 무렵, 지선은 그림에서 꽃 향기가 풍기는 것을 역겨워하고 있었다.  한동안 맑은 수채화의 꽃 그림에 흠뻑 빠졌던 적도 있었다. 수채화 그룹 멤버들과 풍경화를 그리러 몰려다니며 산과 물, 들, 그런 자연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런 후 얼마 지나서 인간이 없는풍경화에 서서히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수선화 그룹의 멤버들은 모두들 부자다. 유명 메이커의 물감을 마음놓고 사다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아름다운 것들을 그려낸다. 모두들 그 그림의 곱고 아름다움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지선이 고등학교 때 사생대회에서 대상을 탄 자신의 그림이 자꾸만 눈 앞에 어른거리게 된 것은 아들 진식을 면회갔다 온 후부터였다. 군부대가 있는 동네의 구멍가게에서 진식은 초코파이 하나를 단 세 입에 후딱 먹어 치운다. 그렇게 거푸세 개를 해치운 것이다. 너 배 고팠느냐는 말에 진식은 “아니요, 지금은 자유급식을 하니까 아빠 군대 시절하고는 달라요.” 그러면서도 덥썩 사과를 집어들고 우적우적 먹기 시작한다. 지선의 눈에 옛날 남자친구의 모습이 슬쩍 스쳐간다. 그는 음식을 참 맛나게 먹었었다. 사과 한 입 크게 베어문 진식의 모습이 소담스럽게 뜬 밥술을 입에 넣고 큰 움직임으로 씹는 그의 모습과 흡사함을 느끼며 지선은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어머니, 왜 웃으십니까? 내가 먹는 모습이 너무 게걸스러워 보이지요?”

“어머나, 하하하 하하”   

“어? 이젠 아주 크게 웃으시네요.”  

“응? 응, 네가 어머니, 왜 웃으십니까,하고 물으니까 우습잖아, 웃으십니까? 우리 아들 아주 군인티가 더럭더럭 나네. 아니 아니야, 게걸스럽긴, 너무 복스러워 보여. 네가 하두 맛있게 먹으니까 엄마두 갑자기 뭐가 막 먹고 싶어지는 걸.”  

“아참, 엄마도 좀 드세요. 내가 먹느라고 정신이 없었네.”  

“이제야 군인 아저씨에서 우리 아들로 돌아온 것 같네. 그래, 나도 초코파이 하나 먹자. 우리 진식이 먹는 모습에 복이 담뿍 들어 있어서 나중에 아주 잘 살 거야.”  

“엄마, 나 그전에 군대 오기전에도 밥을 복스럽게 먹었었나요?”

“그럼, 그랬지, 넌 언제나 음식을 아주 맛나게 먹었잖아.”  

“엄마, 이제 나 엄마라구 안하고 어머니라고 부를께요.”  

“그래라. 정말 다 컸구나.”  


버스 정거장 주변에 닥지닥지 모여있는 잡화상들이 지선의 눈에 들어왔다. 걸쭉한 욕이 어색하지 않게 녹아든 언어로 왁자하니 떠들석한 군 부대 앞 버스 정거장, 거기 몇 식구가 목 매달고 살아가는 군인 상대의 장사들, 클라식 기타를 치며 허밍으로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던 아들의 조각처럼 단아한 턱이 우적우적 먹을 것을 씹어댈 때의 그 생동감, 지선은 그 아무 것도 놓치지 않았다. 살아 있는 것들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지선을 휩쓸었다.  하얗게 분칠한 여자의 빨간 입술, 이집트여왕의 눈처럼 아이라인을 칠한 여자들이 서성거리는 그 곳에서 지선은 자신을 휘말아 공중으로 솟구치는 바람을 피할 길이 없었다.


지선은 사과 궤짝을 엎어 놓은 위에 왕방울 사탕 몇 개 벌려놓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행상 할아버지를 그려서 대상을 탔었다. 그 그림은 심사평과 함께 교지에 칼라로 게재되었다. 주최측인 사범대학의 미술과 교수님의 심사평이 바람처럼 풀썩 날린다.  “이 학생은 아름다운게 무언지 아는 학생이다. “


지선의 집 근처에 사탕 좌판을 벌여놓고 늘 졸고 있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어느 날 하교길에 지선은 먼 발치에서 그 할아버지의 움직임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화들짝 놀란 마음을 무엇이 그렇게 꽁꽁 붙잡아 매어 두었는지, 지선은 숨죽인 채 느리게 다가가며 그의 시간을 보장해주었다.  그는 사탕의 반짝종이를 벗겨서 몇 번 빨아먹고는 다시 싸 놓고, 또 다시 그렇게 몇 개의 사탕을 빨아먹고는 싸 두었다. 지선은 그것에 구역질이 나지 않았다. 사탕을 다 살 수 없는 자신이 슬펐다. 그날 이후로 그 앞을 지나갈 때면 지선은 그의 파수꾼이 되었다. 간첩을 숨겨둔 것보다 더 큰 비밀로 그 할아버지의 그런 시간을 지켜주었다. 행인이 지나가면 지선이 먼저 커다란 인기척으로 수선을 떨어 할아버지에게 알렸고, 행인이 없이 지선 혼자일 때는 도둑 고양이처럼 숨죽여 살금살금 그 자리를 피했다. 그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것이 대상을 탄 것이다. 그것은 아주옛날, 30년도 더 된 옛날의 일이었다. 그리고 지선은 향기로운 화사한 꽃들을그렸다. 군부대 앞에 자리잡은 생명들이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지선의 가슴을 쾅쾅 두드리기 전까지 지선의 그림에선 꿀냄새가 났다.  


유정의 입덧은 벌써 그쳤다. 배만 볼록한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선이 두리두리해진 유정은 무엇이든 달게 먹었다. 가끔 지선에게로 와서 제 신랑에게 전화를 걸어 퇴근 길에 들르라고 명을 하고, 아빠에게 빨리 들어오라고 전화를 해대고, 맛있는 것을 함께 만들어 먹고 그랬다. 그 반면, 지선은 자신에게서 시작한 이상 증세를 느꼈다. 자신이 그린 꽃 그림에서 향내가 피어나면 지선은 울컥울컥 입덧처럼 헛구역질이 났다. 그럴 때면, 여고시절, 사탕좌판을 벌여놨던 할아버지의 왕방울 사탕이 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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