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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dos Paul Jan 19. 2024

「닫힌 방」

장폴 사르트르

        사람은 결코 자신의 눈으로 직접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사물을 비춰 보이는 무언가, 예컨대 거울이 있다면 언제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내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할 수 있다. 작중 묘사되는 '지옥'이라는 공간은 거울이 없다. 자신을 비춰 보이는 그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 즉 타인을 통해서만이 유일하다. 즉 내 모습을 내가 확인할 수 없으므로 '나'라는 존재는 타인에 의해 확인받고 규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라는 주체는 철저히 타인들이 보내는 시선의 대상, 그저 관찰되기만 하는 하나의 객체로 전락하고 만다. 마치 작중의 '청동상'과 같이 육중하고 쓸모없는 차가운 돌덩이로 그저 바라만 보이고 규정되는 것이다.

    한편 나 또한 다른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타인으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작중 등장하는 세 인물은 철저하게 지상과 분리된 '닫힌 방'에서 서로가 서로를 통해서 자신을 확인해야만 하는, 타인을 통해서만 자신이 규정될 수 있는, 주체적으로 스스로의 삶을 규정할 수 없는, 결코 자신을 감출 수 없고 '벌레처럼 알몸'으로 철저하게 발가벗겨지는, 서로가 서로의 '사형집행인'이 되는, 타인의 존재성 그 자체만으로 고통받아야 하는 상태, 그야말로 '지옥'에 놓인다.

    닫힌 방이라는 공간은 철저하게 등장인물들의 주체성을 앗아가 버린다. 인물들은 이미 죽어서 지옥에 왔고, 결코 지상 세계에 개입할 수 없기에 자신의 과거가 사람들에 의해 규정되는 것을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상황을 괴로워하지만, 결코 자신의 본모습을 직시할 수 없고 '왜?'라는 물음에 결코 대답할 수 없기에 누군가가 자신을 결정해 주고 규정해 주기를 바란다. 자신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과거들, 그리고 그 과거들이 만든 수치스러운 결과가 바로 이들이 있는 지옥이다. 그렇기에 내 인생은 온전히 나의 선택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부적절한 상황들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면의 직시로부터의 도피를 은근히 즐기는 대표적 인물이 가르생이다.


가르생: ... 어쨌든 난 허구한 날 내가 좋아하지 않는 가구들 속에서 살았고, 부적절한 상황 속에서 살았지요. 그걸 진짜 즐겼어요....
(12p)


사람은 거울을 통해서 자신이 보고 싶은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자신을 추켜세워주기를 이미 정해놓고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묻는 백설공주의 왕비와 같이, 가르생은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선택으로부터 비롯된 책임을 회피하길 바란다. 그러나 지옥에서는 결코 그럴 수 없기에, 그의 알몸과 민낯은 철저하게 고발되어 전시되고 관찰된다. 그러기에 타인은 지옥이다. 정말로 그러하다.

    나라는 존재는 결코 그 자체로 완전할 수 없는가? 누군가에 대해서밖에 존재할 수 없는가? 그 관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인가? 사르트르가 묘사하는 인간존재는 필연적으로 무언가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는, 그러기에 타인과의 관계는 공존이 아닌 갈등이다. 이처럼 인간은 본질적으로 결함이 있으며,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러하기에 인생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 자신을 규정하려는 타인의 시선들, 그리고 그것에 은근히 편승해 자신의 의식을 내던져버리고 굳어버려 육중한 돌덩이가 되려 하는 무의식에 저항해 순간의 자신의 삶을 선택해 개척해 나가고 스스로를 규정해 나가는,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자신에 대한 회의와 고뇌, 자기 번민을 통해 완성되는, 그러한 선택들이 누적되야만 그제야 비로소 '나'라는 실존이 본질을 완성하는 것이다.

    타인은 지옥이다. 정말로 그러하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어쩔 수 없는 그 운명이, 참으래야 참을 수 없는 그 타인이라는 존재가 나를 파도처럼 삼켜버리기에, 결국에는 그것을 거슬러야만 나 자신을 완성할 수 있기에 삶은 살 가치가 있다.

    작중 가르생은 타인이라는 존재에 역겨움을 느끼고 방을 탈출하려 문을 두드린다. 방은 닫혀있기에 지옥이므로 이전까지 문은 절대 열리지 않았지만, 왜인지 문이 열리고 만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지옥이지만 막상 문이 열리자 가르생은 방에 남아 있는 것을 선택하며 자신을 바라봐 주기를 원한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타인과 환경 속에 둘러싸여 있더라도, 가끔 문은 열리기 마련이다.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결국 나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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