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는 괜찮은데 엄마는 괜찮아?
오늘은 유난히도 미팅이 많은 날이었다. 오전 3시간 동안 30분씩 미팅이 총 5개 있었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 세상의 병폐다. 예전에는 미팅 전후로는 보통 이동하고 커피도 마시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빡빡하게 일정 잡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이제는 대부분이 온라인 미팅이다 보니, 화장실 갈 시간도 물 한 모금 마실 여유도 없이 Google meet 끄면 또 다른 미팅, 끝나면 또 다음 미팅이 시작이다. 크리스마스가 끝난 오늘이 무슨 날이었는지 무려 월요일 아침부터 5개의 미팅이 끝났지만 일본 동료와 점심 12시에 미팅이 또 하나, 끝나자마자 12시 반부터 1시 반까지 1시간 동안은 1:1 세일즈 코칭이 예정되어 있었다. 프로답게 웃으며 경청하며 열심히 듣고 질문하며 마무리했는데- 오호라, 내 점심은 언제 먹나? 나 당 떨어지면 화내는 인간인데.
코칭 후 잠시 숨 돌리기가 바쁘게 이후 또 다른 세일즈팀을 위해 있을 워크샵 준비를 위해 물품을 챙기고 명찰을 프린트하고 사무실에서 조금 떨어진 워크샵 장소로 또 이동한다. 세팅하기 바쁘게 차 한잔 마시고 다시 리셋된 사람처럼 직업용 미소를 던지며 갤럽 강점 진단 워크샵을 멋지게 선보인다. 오랜만에 서 있어서 그런지 조금 지나니 다리도 아프고 그래도 직업병이라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서로 이야기를 잘 나누는지 워크샵에 잘 참여하고 있는지 돌아다니며 듣고 관찰한다.
그동안 했던 워크샵 중 가장 즐겁고 의미 있었다는 한 직원의 알찬 피드백을 들으며, 그래도 오늘 하루를 잘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도 가져본다.
퇴근길, 동료들과 인사하며 돌아서자마자 부지런히 아이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다. 날이 좀 풀렸다는 오늘인데도 전화기를 든 손은 겨울바람을 맞고 몇 초 새 꽁꽁 언다. 그래도 전화를 안 할 수가 없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겨울이라 금세 깜깜해지니 둘이서만 잘 있나, 은근한 걱정에 계속 통화버튼을 누르지만 애타는 엄마 전화를 받는 녀석은 없다.
큰아이는 11살, 전화기를 잘 들고 다니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다. 이 녀석 걱정은 잘 안되는데도 전화를 받을 때까지 하는 이유는 8살 둘째 때문이다.
학교 돌봄에서 나오는 4시 반이 되면 보통은 어른 중 누군가가 데리러 가는데 오늘은 혼자 알아서 집에 오라고 한 날이기 때문이다. 별일 없이 혼자 집에 잘 도착했겠지, 하면서도 잘 있다는 그 목소리가 간절히 듣고 싶은데 전화를 안 받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애가 탄다. 심지어 둘째 녀석 전화기는 꺼져 있다.
일하다 보면 꼭 이런 날이 있다. 남편은 저녁 행사로 야근, 동료들과의 근사한 송년회에 초대받았으나 혼자만 거절하고 종종걸음으로 퇴근하는 나는 부지런히 가봐야 6시 반-7시, 그럴 때마다 구원투수처럼 등장하시곤 했던 시어머니는 집 밖에도 못 나오시는 코로나 확진 -
그러니 오늘은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도록 아이들 둘만 집에 있는 시간인 거다.
사실 집에 도착해보면 나 혼자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집에서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 넷플릭스로 포켓몬스터를 보며 과자를 실컷 먹고 있거나, 집에 온 택배를 뜯어 포켓몬 도감책을 신나게 보며 놀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기특하게 큐티를 하거나 수학 문제집을 알아서 풀고 있기도 할 정도다. 그저 애가 타는 건 엄마뿐이다. 집에 잘 갔는지, 배는 안 고픈지, 날도 어두운데 둘이 집에서 외롭진 않은지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내게 말해주는 거 같다.
“엄마, 우리는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조심히 와. 우리끼리 잘 있었어”
서둘러 손을 씻고 상을 차리며 내가 너무 먹고 싶어 포장해 사온 떡볶이를 아이들과 먹기 시작한다. “얘들아, 엄마 오늘 점심도 못 먹었어 “라고 말하자 두 아이가 내 눈을 보며 걱정스레 묻는다. ”왜 엄마 일하느라? “ 나도 모르게 투정 부리듯 “응 일이 많았어” 하자 아이들이 눈으로 토닥토닥 나에게 위로를 건네온다. 아이들의 따뜻한 질문 한 번에 오늘의 피로가 녹는 나는야 딸둘맘 금메달 인생이다.
잘 커주고 있는 아이들이 고맙고, 안전하게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어 주어 감사하다.
퇴근길은 여전히 맘이 급하고 어딘지 모르게 미안하고 멀게만 느껴지는데(강남에서 의정부까지니 실제로도 멀긴 하다만) 엄마는 너희들을 조금 더 믿어주고, 여유 있게 평안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믿음과 연습이 조금 더 필요한 거 같다.
곤한 월요일이었는지, 코를 골며 잠든 둘째 옆에서 나 역시 하루의 짐을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