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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Jan 13. 2022

아름다운 이야기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마음에 오랫동안 머무는 이야기가 있다.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읽은 후 줄곤 마음에 맴돌아서 나를 바라보게 하는 이야기가 그렇다. 

최근에 읽은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에 나오는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의 이야기이다.


세상에서 가장 놓은 어떤 산꼭대기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한 물은 모여 모여 흘러 흘러 마지막으로 바다로 흘러든다, 이 물은 숱한 여행 중에 한 번은 사막을 건너는 여행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물은 절망에 이른다. 달구어진 거대한 모래사막 앞에서 물은 사막을 건너기엔 깊은 모래 속으로 빠져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자신의 모습에 공포가 몰려온다. 사막은 묻는다 선택하라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 물은 물론 살고 싶다고 한다. 그러자 사막은 공기로 변해 하늘로 올라가라고 한다. 그러면 바람이 공기가 된 물을 실어 날라 다시 산으로 날라주겠다고 속삭인다. 거기서 다시 물이 되어 흐르기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물은 자신의 물이라는 형태를 잃는 일이 두렵다. 자신의 육체에 갇혀 공기가 되는 순간을 공포스러워한다. 생명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 물이라는 형태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한정시켜버린 물은 죽음 앞에서 선택하지 못하고 떨고 있다. 

결국 그 물 중 어떤 부분은 증발해 바람에 실려갔고, 또 어떤 부분은 사막의 모래 깊은 곳으로 흘러들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물에게는 오직 공기로 변하는 하나의 유일한 선택이 존재했음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사막에서 죽음을 맞이한 그 일부분의 물은 그저 죽어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음을 안다. 


나 역시 내 육체와 정신에 갇혀서 버둥거리고 있지만 결국은 내게 남은 건 하나의 선택밖에 없는 게 아닐까. 생명이라는 본질을 알지 못한 채 껍데기의 나만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거리는 내 모습이 바로 사막으로 사라진 물의 모습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한다. 나를 버리는 일이 나를 살리는 일이며, 내가 잡고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일이 나를 죽이는 일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긴장이 풀리는 것 같다. 

아름다운 물은 다시 산과 바다를 건너며 사막에 이르렀을 때 이젠 주저하지 않고 다시 공기가 되었을지 아니면 한 번 더 사막의 공포 앞에서 흔들렸을지 그것이 또 궁금해지는 우매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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