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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Apr 27. 2022

죽음 앞에서 생각하는 삶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죽어가는 이들이 쓴 글을 마주할 때면 나는 늘 심정이 복잡해진다.  죽음을 앞두고 하는 말은 진실일 수도 그리고 스스로 믿고 싶어 하는 미화된 삶의 이야기일 수도 그리고 아쉬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경험하지도 가까이 가보지 않은 내가 그들의 심정을 알 도리는 없지만 감히 상상해 보면 삶을 통찰할 능력이 생길 수도 있거나 아니면 미련이나 아쉬움이 담긴 삶의 애틋함이 넘쳐 읽는 이의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생기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보는 이의 틀에 따라 네모로도 혹은 세모로도 보일 수 있는 게 세상이라면 그들의 눈을 통해 보는 삶은 뭔가 특수 처리된 프리즘을 통과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을 읽게 된 것은 이어령 선생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인터뷰어인 김지수 기자의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이 책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처럼 김지수 기자가 매주 화요일 이어령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인터뷰집이 인터뷰를 준비하고 행하는 사람의 자질에 따라 얼마나 양질의 인터뷰 글이 되는지 잘 알고 있다. 예상대로 김지수 기자가 쓴 프롤로그의 글은 아름답다.


"그와 대화를 나눌 때면 그의 시한부 삶이 그의 입술 끝에 매달려 전력 질주하는 것 같았다. 그의 이야기가 소크라테스와 필록테테스와 니체와 보들레르, 장자와 양자 컴퓨터를 넘나들며 커브를 돌 때마다 그 엄청난 속력에 지성과 영성이 부딪혀 스파크를 일으켰다. 우수수 떨어지는 부스러기만 수습해도 남은 인생이 허기지지 않을 것 같았다."


고 이어령 선생에 대한 소개는 다채롭다. 전직 문화부 장관을 했던 굵직한 이력에서부터 문학박사, 교수 그리고 글 쓰는 이 등등의 스토리가 줄줄 연결되는 이력으로 문화 예술계에서는 큰 자리를 차지하고 계셨던 분이다. 그의 화려한 이력이 말해주듯이 한 분야에서 깊은 우물을 파는 분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에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일을 만들어 내는 자칭 제너럴리스트라는 단어에 적합한 분이다. 다양한 분야로 관심이 옮겨가되 매 번 그 관심 주제에 대해 몰입해서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현대에는 여러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통합한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인재상을 추구하는데  이어령 선생이야말로 1934년에 태어난 미래형 인간인 셈이다. 


김지수 기자의 말대로 그와의 대담은 죽음, 삶, 용서, 과학 그리고 철학과 종교까지 종횡무진 흘러간다. 팔십 인생을 살아온 학자에게 어떤 대화도 두렵지 않은 주제였을 것이다. 그는 자기 머리로 생각하면 겁날 게 없다고 말한다. 한평생 누굴 보고 겁을 먹은 적이 없는데 그 비결은  자신은 스스로 생각한 것을 말할 태세가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하나하나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이는 흔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모든 정보를 다시 내면화하여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이야기할 때 옆구리를 쿡 찔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많은 책을 읽어도 그 책을 나의 머리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내겐 있었나. 그저 주워 읽은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내가 안다고 착각하는 오류 속에 있지 않았나 싶다. 


 문학박사인만큼 문학에 대한 사랑의 마음도 표현하는데 과학 하는 사람, 정치하는 사람, 경제 하는 사람이 문학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법은 내일이라도 바뀔 수 있고 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우리가 읽은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전쟁이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도 마치 내 비극의 가정사처럼 느껴지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인문학은 그저 액세서리가 아닌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말한다. 


많은 책과 글을 썼던 작가로서의 그는 글을 쓸 때 '관심, 관찰, 관계' 이 세 가지 순서를 반복하여 스토리를 만들어 왔다고 말한다.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게 되면 나와의 관계가 생기게 되면서 글을 쓸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역시 깊게 생각하는 이어령 선생다운 말씀이다. 결국 글도 나의 생각으로 나답게 쓴다는 신념이다. 강화도의 화문석처럼 돌에 즐거움을 가득히 넣어 나만의 무늬를 그려나가는 게 인생이라는 그의 말을 들으면 어렴풋이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재능을 가지고 각양각색의 일을 신명 나게 했던 이어령 선생은 결국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자신이 받은 선물이었다고 고백한다.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다고. 결국 인간은 죽음 앞에서 나의 존재를 내려놓게 되는 것일까. 주어진 능력으로 신명 나게 놀고 즐기다가 다시 모든 걸 내어두고 떠나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죽음을 앞두고 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본 개인적인 후회와 아쉬움, 왜곡된 미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건 죽음은 언제나 우리 삶 속에 버티고 있고 누구도 피해 갈 수는 없으며 모두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각자의 죽음을 떠올릴 때 스스로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방향이 보일 것이다. 그 길은 제각각 다르겠지만 나름대로의 이유와 의미가 존재할 것이다. 결국 죽음 앞에서 쓴 누군가의 글이 그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어리석었던 것이다. 아직은 답을 알 수 없지만 그의 죽음 앞에서 들은 이야기가 다가올 내 죽음에, 아니 남은 내 삶에 작은 불씨 하나를 던져준 것만은 인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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