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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Jan 20. 2022

나의 딴실한 아파트


내 기억은 이삿짐 트럭에서 시작된다. 회색빛 주택가에서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이었다. 동네 주민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손을 흔들었고 누군가가 내 손에 쥐여준 땅콩 맛 사탕 한 봉지는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떠나는 엄마, 아빠도 보내는 이들도 즐거운 표정이었기에 이별이 슬프지 않고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트럭 앞 좌석에 앉아 덜컹거리며 찾아간 아파트는 내가 생각하던 동네와 달랐다. 휑한 입구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네모반듯하게 마련된 우리 집. 거기가 여섯 살의 내가 본 새로운 주거공간 아파트였다.


그 후로 우린 조금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는데 그곳은 엘리베이터 없는 5층짜리 아파트였다. 근방에선 제일 딴딴하고 내실 있게 지은 아파트라 강풍, 지진에도 홀로 남을 아파트라 자부심이 대단했다. 누구의 입에서 나온 소식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시멘트의 배합 비율도 여길 따라올 데가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런 믿음 때문이었는지 그곳에서 사는 동안 층간 소음으로 이웃과 얼굴 붉힐 일도 없었고, 주민들이 오래 거주한 덕에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가 없을 땐 아래층, 위층에 올라가 벨을 눌러볼 수 있는 좋은 이웃이 있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주거공간, 아파트에 대한 기억이다.


좁은 땅에 이렇게 높은 아파트를 지어 올려서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게 만드는 형태의 주거는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낸 인간들의 놀라운 창조물이다. 건설을 알지 못하는 나는 이렇게 무거운 콘크리트가 높게 올라가도 거뜬하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지금은 50층도 높지 않은 건물이 되어 버린 세상이 되어 고층 건물에 놀라워하는 건 촌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딴딴하고 잘 지은 아파트가 그때의 자부심이었다면 지금은 높고 화려한 주상복합형 주거시설이 주택 매입자들에겐 욕망의 거주지가 되는 것 같다.


며칠 전 광주에서 있었던 현대산업개발의 아파트 공사현장의 사고는 이런 생각을 한 번에 다 쓸어버리게 된다. 안전하고 따뜻한 보금자리를 위해 전 생을 걸고 돈을 모아 장만하는 아파트가 이렇게 하루아침에 레고 블럭 무너지듯이 쏟아 내릴 수가 있다는 게 놀랍다. 그것도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기본에 충실하지 않고 빨리 짓기 위해서였다는 의도는 더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죄송합니다. 제가 기술이 이렇게 밖에 안돼서 부족했습니다."가 아니라

"죄송합니다. 다 아는 기술인데 제가 좀 빨리 그리고 수익을 많이 내려고 좀 속였습니다."

라는 말로 들린다. 건설사의 눈에 이 땅은 아파트를 얼른 많이 지어서 수익을 창출해 내는 공간으로, 그곳에서 거주할 사람들은 전 재산을 모아 그들에게 탈탈 털어 줄 대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나 보다. 또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어떤가. 그들은 단지 공장을 돌려 아파트를 찍어내는 하나의 부속품처럼 인식되었기에 추운 날에도 더 빠른 공사를 위해 서두르게 채찍질하는 대상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내가 사는 이 콘크리트 덩어리도 정나미가 다 떨어진다.


뉴스에서 보여주던 무너져 내린 공사현장은 처참하다. 무너지던 공사장에서 일하다 실종된 노동자들도, 그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도, 그리고 추운 날씨에 사고를 수습하느라 고생하고 있을 119 구급대원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답답해져 온다. 도대체 이 책임을 누가 어떻게 져야 할지 답이 나오질 않는다.


내가 살던 5층 아파트가 오래되어 재건축 인가가 떨어지고 허물게 되었을 때 오래 살던 주민들은 그 아파트를 허무는 것에 아쉬움을 표현했었다. 낡긴 했어도 이런 아파트가 없었다고. 그냥 헐어버리기엔 너무 딴실하고 좋았다고. 재건축으로 생겨날 수익보다도 좋은 아파트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던 어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런 믿음을 주던 우리의 5층 아파트는 이제 온데간데없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아파트는 어디에 존재하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에게도 그런 아파트가 있었음을 전설처럼 다음 세대에게 전해 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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