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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Jan 28. 2022

쓰레기에 진심인 당신

남편은 쓰레기에 진심이다.


그러니까 재활용 분리수거에 많은 공을 들이는 사람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되짚어보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젊은 시절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도 저랬을까. 기억에 정확히 남아 있지 않은 걸로 봐서 지금 정도의 정성은 아니었을 거다. 남편이 이렇게까지 지극 정성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는 건 아마도 환경에 대한 책을 열심히 읽은 후인 것 같다. 환경에 관해서라면 티브이 다큐부터 해서 책을 열심히 사 모아 읽었다. 환경에 대한 경고의 글만 봐도 쉽게 마음이 피곤해지는 나는 그 책들 가까이 가지 않는다. 


어제는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는 날이었다. 나는 큰 아이에게 재활용 쓰레기를 갖다 버려 줄 것을 부탁했다. 아들은 흔쾌히 그러겠다 했다. 남편은 아들이 손대기 전에  쪼그리고 앉아 재활용 쓰레기들을 열심히 정리하고 있었다. (아들이 대충 버릴까 봐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플라스틱에 붙은 비닐을 제거하고 과일 선물이 들어있던 박스는 일일이 스카치테이프를 다 제거하고 예쁘게 종이접기 하듯이 접어 납작하게 만든다. 비닐 제거나 투명 테이프 제거 정도야 나도 하는 일이지만 그 두꺼운 종이를 납작하게 접어 정리하는 걸 보고 있으니 어깨도 아프다는 사람이 꼭 저래야 하나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참았어야 하는데 이 사람이 쓰레기 버리는 일에 이렇게 진심이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 나는 반사적으로 툭 한마디 던진다. 이렇게 꼬깃꼬깃 접기까지 해야 하냐고. 바로 3초도 안 돼서 그 후폭풍이 몰아친다. 그래. 그럴 줄 알면서 내가 잘못했지... 꾹 참고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재활용 쓰레기 수거하는 방법에 이렇게 하라고 명시되어 있다고. 다른 이들이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우리까지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이 줄줄줄 같은 레퍼토리로 반복된다. 그래. 건들질 말았어야 했다. 나는 슬그머니 안방으로 달아났지만 나 역시 기분이 나쁠 데로 나쁘다. 뭐 저렇게까지 또 발끈할 일인가. 어차피 종이 박스 실어 가는 트럭이 포대기째로 꾹 눌러 담아 가던데 저렇게 꼬깃꼬깃 접는다고 안 펴지는 것도 아닌데... 마음속 구시렁대는 소리가 이미 내 안에 가득 차 오르고 있다. 결국 아름답게 정리가 된 재활용 쓰레기를 아들이 운반해 버린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건넨다면 남편이 저렇게 분리수거를 잘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좋은 거 아니냐고 오히려 내 투덜거림을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 이의 저의를 의심하는 편이다. 내가 하는 일을 완벽하게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비난도 함께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법이니까. 남편이 직접 재활용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고 오는 날엔 기분이 항상 나쁘다. 집에 돌아와선 사람들이 쓰레기를 어떻게 저렇게 내다 버릴 수가 있냐고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물론 나도 동감이긴 하다. 너무하는 인간들도 많다. 온갖  쓰레기를 그냥 왕창 버린 사람도 있으니까. 하지만 남편은 그런 걸 보면서 더 자신의 쓰레기엔 더 완벽을 기하며 다른 이들에게 매서운 눈초리를 보내는 거다. 혼자 그 아파트 쓰레기를 다 정리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 마음을 포기하라고 말하면 더 기분이 나빠질까 말도 못 한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남편의 염려는 나도 이해가 된다. 지구는 우리의 쓰레기로 덮여 미래가 보이지 않을 거고 환경은 급속도로 나빠질 게 뻔하다. 나 역시 그런 염려로 녹색당의 활동을 지지하는 당원이기도 하지만 남편의 이 예민함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저렇게 정성 들여 내보낸 쓰레기가 재활용 쓰레기 트럭에 어떻게 실려나가는지를 남편이 본다면 아마 기함을 토할 것이다. 이 상황을 그도 알아야 할까. 정신건강상 알지 않는 게 좋을까. 


재활용 쓰레기 수거일에는 집을 잠시 떠나 있는 게 내 정신건강상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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