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헤어졌던 그 날...
서랍장을 정리하다 예전에 남편이 쓰던 구형 핸드폰이 나왔다.
삼성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낸 갤럭시 노트 1이었다. 폰의 넉넉한 크기며 펜으로 폰에 무언가를 메모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당시에 획기적인 변화였었다. 작은 아이가 아홉 살쯤 때였다.
"아빠, 다음에 아빠가 죽고 나면 이 폰 내가 해도 돼?"
우린 크게 웃으며 다음에 유산으로 이 폰을 남겨주겠노라 약속했던 폰이었다. 아직 남편은 건재하니 물려주기엔 시간이 좀 더 걸릴 듯하다.
그 폰에는 우리의 소중한 기억들이 차곡차곡 기록되어 있었다. 우리가 젊은 날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이들과 함께 한 여행이다. 낯선 도시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하기 전이었지만 우린 가능한 긴 시간을 낯선 도시에서 생활해보는 여행을 했었다. 그 폰을 사용하던 그 시절의 여름, 우리는 런던에 있었다.
분명 여름인데 아침저녁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얇은 가디건이 필요한 날씨였다. 우리는 런던 노팅힐 근처에 부엌이 딸린 작은 집을 빌려서 지내고 있었다. 남편이 여름휴가로 쓸 수 있는 시간은 토, 일요일을 두 번 꽉 채운 열흘 정도였고 그 후로 열흘을 남편 없이 아이들과 나 셋이서 지내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 정도의 기간이라면 좀 여유 있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각자의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함께 하다 보니 시간은 정말 금방 지나가고 있었다.
해리포터에 빠져 있던 아이들은 해리포터 스튜디오 방문을 가장 일 순위로 계획했고, 축구를 사랑하는 큰 아이는 첼시 축구장 투어를 원했다. 나는 주말이면 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작은 벼룩시장을 구경하고 싶어 했고 남편은 미술관에 가고 싶어 했다. 아이들이 어렸기에 동네 근처 공원에 잠시 들려서 공차기를 하거나 놀이터에서 놀며 군것질을 하는 것만으로도 반나절이 휘리릭 지나버리곤 했던 시간이었다.
폰에 저장된 문제의 그 영상은 바로 패딩턴 역에서의 사건이었다. 그 날 우리의 이별의 순간이 동영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남편이 한국으로 들어가던 날이었다. 패딩턴 역에서 히드로 공항까지 가는 고속 전철을 타기 위해 우리는 모두 패딩턴역으로 가서 아빠를 배웅하기로 했다. 패딩턴 역은 최첨단의 고속전철과는 어울리지 않게 역 자체는 오래된 듯 고풍스러운 분위기였다. 이별을 잊은 채 역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시간 여유 없이 급박하게 이별 인사를 하고 남편은 기차를 타야 했다.
남편은 큰 짐을 끌고 기차에 탑승했고 안내방송에서는 기차가 곧 떠날 테니 얼른 탑승하라는 방송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나와 아이들은 아빠가 자리 잡은 기차 칸이 보이는 플랫폼에 서서 아빠에게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 생각보다 기차는 쉬이 떠나지 않았고 우린 서로 얼굴만 바라본 채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작은 아이는 그제야 이별을 실감했는지 손을 쉴 새 없이 흔들며 '아빠... 잘 가....'를 계속 외치고 있었다. 연속되는 만화의 연속그림처럼 얼굴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다.
이쯤에서 기차가 얼른 떠나 줘야 할 텐데 기차의 출발은 더뎠다. 아이들은 이별의 고통을 오래 겪어야 했다. 작은 아이의 표정은 점점 더 안 좋아지다가 급기야 통곡을 하며 울기 시작했다. 타지에서의 이런 극적인 이산가족 이별은 상상하지 못한 시츄에이션이다. 남편의 얼굴과 아이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나 역시 코끝이 찡해 오긴 했는데 둘째 아이의 통곡이 터지니 웃음이 나왔다. 그 장면을 놓칠세라 나는 열심히 영상을 찍었다. 큰 아이도 함께 울먹거리고 있었다.
기차는 매정하게 떠났고 그렇게 머뭇거리던 기차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기차 철로 위를 우리는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계획은 아빠와 헤어진 후 패딩턴 역에 있는 패딩턴 곰 이야기로 꾸며진 서점을 구경하기로 했었는데 이미 우리의 감정은 모두 탈진된 상태였다. 아빠는 무사히 혼자 한국에 들어가실지, 아빠가 없는 남은 여행을 우리가 잘 보낼 수 있을지 등등을 각자 생각하며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서늘한 런던의 거리가 길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폰에 저장된 우리의 이별 영상은 우리에게 그때의 애틋한 마음을 소환시켰다. 아이들은 그때의 일을 나보다 더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서로가 참 소중했었다.
학교 등교가 미루어진 요즘,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이 시점에, 가족애보다는 좀 떨어지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현재의 타이밍에 살짝 웃음과 위로를 주는 영상이었다. 그렇게 그때를 우리는 같지만 각자의 다른 마음으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