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얼마나 오랜동안 함께 살아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 동안의 시간이 우리 앞에 남아 있을지, 생각이 멈춘 채 살아 왔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결혼이란 새로운 선택을 시작했고 어?, 어...어! 하며 결혼을 이해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어느새 만 19년이라고 했다.
생뚱맞게 우리의 19년전 설레던 결혼을 떠올리게 된 건 며칠전 아들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밥을 먹다가 주구장창 아이유 음악을 리플레이해 놓는 아들에게 남편이 한 마디 했다.
"아들아, 너 대학 가면 아이유랑 한 번 잘 해봐!"
엥? 이건 무슨 소리인가. 나와 아들은 눈이 둥그레져서 어이없는 웃음으로 남편을 쳐다봤다.
"왜... 팬클럽을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을 하며 아이유와 만나 보는 거지... 아이유 좋쟎아? 예쁘지, 노래 잘하지 성격도 착하지..돈도 많구...ㅎㅎㅎ"
남편의 실없는 농담에 우린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아들은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은가 보았다.
음... 이쁘고 좋지...
우리도 그랬다. 돌아보니 우리가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것 같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주말 데이트를 하던 우리는 서로가 충분히 그리웠다. 떨어져서 각자의 일을 하던 주중에도 마음으로는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는 그가 존재한다는 게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주말을 함께 보내고 헤어지는 시간이 오면 늘 애틋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함께 할 시간을 함께 기다리게 되었다.
19년이란 시간은 그 때의 사랑을 생소하게 만든다. 아들의 사랑에, 혹은 티브이 드라마에 나오는 아름다운 주인공들의 사랑에 감정 이입하며 그 때의 우리의 마음을 떠올릴 뿐이다. 설레고, 애틋하고, 소중했던 그 순간의 기억들이 우리가 함께 공유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19년이 지난 부부에게도 사랑은 존재한다. 마음으로는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는 그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러니 그 사랑의 정의가 맞다면 우리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사랑이라는 건 우리가 서로에게 인정해주어야 하는 범위가 점차 넓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가 사랑하는 삶, 내가 지키고자 하는 삶을 우린 이제야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는 중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의 결과이다.
결혼 초에 남편은 가끔씩 꽃을 사가지고 왔다. 꽃을 좋아하는 와이프에게 꽃을 선물하면 당연히 기뻐하리라 그는 생각했다. 여러가지 다양한 꽃이 한 다발로 묶여져 화려한 포장으로 감싼 꽃다발이었다. 아름다웠다. 지나치게 아름답다 생각했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꽃다발의 가격이 궁금했다. 물정 모르는 남편이 바가지를 쓰고 과한 포장에 괜한 돈을 쓰고 온 것은 아닌지 한쪽 마음이 걸렸다.
백 퍼센트 기뻐하지 않는 내 모습에 남편이 꽃다발을 사서 들어오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요구하면 또 과해질까 나 역시 잘되었다 생각할 때도 있었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내가 직접 소박한 꽃 한 다발을 사서 꽂았다. 신문지에 싸인 꽃 그 자체가 빛나는 꽃이 얼마나 예쁜지 나는 흐뭇해 했다.
열아홉 번째 결혼 기념일인 오늘,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왔다. 함께 간단 저녁을 나가서 먹자 약속했었다. 외출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데 남편이 뭔가 뽀시락 거리며 들어온다. 우리에게 더이상 서프라이즈 선물이란 존재하지 않았기에 대문 앞에 놓인 택배를 들고 들어오나 했다. 신문지에 둘둘 싸인 기다란게 눈에 띄인다.
"그게 뭐야?... 설마 신문지 몽둥이는 아니지? ㅎㅎ"
남편도 배시시 웃는다.
남편이 수줍게 내민 신문지 몽둥이 안에는 노란 장미 열송이가 숨겨져 있었다.
볼품 없는 신문지에 싸인 굵고 싱싱한 장미 열송이...
이것이 19년차 결혼 기념일의 꽃다발이다. 비싼 꽃다발에 활짝 웃지 못하는 와이프의 마음을 아는 소박한 장미 열 송이이다. 남편에게 신혼 때보다 더 진하고 뜨거운 포옹을 해주었다. 19년의 세월에 어느새 와이프 마음을 다 읽고 있는 남편이 기특하기도 서글프기도 하다. 우린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오늘의 신문지에 싸인 노란 장미는 우리의 19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