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는 다른 곳에서 찾겠습니다

스타벅스 럭키백을 살까 말까

by 소록소록

아침 일찍 아이를 태워주고 돌아오는 길에 스타벅스를 들린다. 신선한 아침 공기에 신선한 원두 냄새라니 더 이상의 아름다운 조합은 없다. 새벽잠에서 일어나 아직 가동 준비가 되지 않은 관절을 뚝뚝 거리며 도시락 반찬을 몇 개 만들어 도시락을 싸고, 아침시간이 바쁜 이들을 깨워 각자의 아침을 돕고 나면 이런 호사가 찾아온다. 저렴 커피의 노란 광고판을 보고도 못 본 척 스타벅스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나의 포기할 수 없는 찐하고 쌉싸름한 별 커피 중독현상 때문이다.


따뜻한 그란데 아메리카노 샷 추가를 부르짖고 나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첫 잔의 그 찐한 크레마를 들이킬 장소를 탐색하며 설레는 그 향을 상상한다. 커피가 제조되는 동안 텅 빈 매장을 둘러보니 흰 박스들이 쌓여 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2021년 럭키백이라 적혀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스타벅스 럭키백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사람들이 스타벅스 럭키백을 판매 첫날 줄을 지어 샀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었고 판매 몇 시간 만에 동이 나기도 했다는, 그래서 중고시장에서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기에 아직은 가득 쌓여 있는 럭키백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큰 보냉백에 스테인레스 텀블러 1개, 머그컵, 플라스틱 텀블러, 그리고 키체인, 파우치 등이 구성되어 있고 그 외 무료 음료 쿠폰 4장이 들어 있다고 했다. 가격은 63,000원. 웬만한 텀블러 1개 가격이 삼사만 원 정도임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가격임에 틀림없다. 어제 아이가 독서실에서 쓸 개인 텀블러가 필요하단 말이 생각나서 한참을 머물러 고민했다. 가격 면에선 그렇지만 안에 어떤 상품이 들어 있는가는 알 수가 없으니 이건 럭키백임에도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문제였다. 누군가는 그 설렘으로 더 구입하게 된다고 하지만 내 머릿속엔 언럭키한 장면들이 자꾸 뭉게구름처럼 떠오른다.


내가 시킨 더블샷 핫 아메리카노는 이미 제조되어 날 부르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럭키백 앞을 서성였다. 고약하다. 텀블러가 어떤 색깔인지만 알아도 혹은 머그컵이 실용적인 모양을 하고 있는지만 알아도 구매에 좀 더 확신이 들 텐데 럭키백이란 이름만으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불투명의 박스를 사라고 종용하다니. 그 앞에서 가격의 합리성에 이끌려 이렇게 복잡한 머리로 고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라니. 럭키한 나를 만들어 주려는 게 아니라 럭키함을 저울질하며 언럭키한 생각을 하게 하는 스타벅스의 상술에 슬슬 짜증이 났다. 그 순간 누군가가 내 앞에서 고민 없이 럭키백 하나를 골라 계산대로 가져갔다. 부스스한 머리에 잠옷 같은 파자마 위에 패딩을 걸쳐 입고 나온 걸로 봐서 이미 럭키백을 마음속에 두고 급히 사러 온 사람인 것 같았다. 그녀는 마치 럭키는 이렇게 쟁취하는 거라는 걸 보여주듯 얼른 계산을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선다.


언럭키하게 고민을 하다 나는 찐한 아메리카노만 손에 든 채 매장 밖으로 나왔다. 럭키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에 머리가 복잡한 게 나의 문제다. 텀블러는 둘째치고 키체인에 파우치, 그리고 예쁘기는 하지만 쓰임새는 적을 것 같은 머그잔이 내 주방에, 내 집에 굴러 다닐 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래. 그 럭키는 내 것이 아니구나. 억지로 만들려던 나의 럭키가 이렇게 나를 불편하게 했구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신선한 공기와 함께 찐한 커피의 첫맛을 음미했다. 이미 크레마가 진한 커피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갈팡질팡 몽롱했던 내 정신이 카페인으로 선명해진다. 만약 내게 럭키한 일이 벌어진다면 이렇게 살까 말까로 복잡한 마음을 들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선물같이 내게 다가와 서프라이즈! 외쳐주지 않을까. 이렇게 저울질하며 럭키를 구걸한다면 이건 럭키가 아닐 것이라며 바로 마음을 접었다. 오늘의 럭키함은 쨍하고 차가운 날씨에 뜨겁고 쌉싸름한 커피 한 모금으로 내 몸이 릴랙스 되는 이 순간이다.


아이가 돌아오는 저녁엔 함께 아이에게 어울리는 예쁘고 실용적인 텀블러를 사러 가야겠다. 럭키하게도 아이에게 딱 어울리는 예쁜 텀블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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