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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부서장의 의견을 듣고

개인의 삶 vs 직장에 대한 충성

by 에릭리
라파엘 나달.png

얼마 전 퇴사한 선배로부터 한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지금의 제 부서장님이 다른 사람에게 저에 대해 얘기를 할 때 "예전만큼 열심히 하지 않더라"라는 의견을 전했다고 하더군요. 이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느꼈던 거는 약간의 부끄러움과 인정 욕구에 대한 갈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조금 곱씹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나 잘하고 있구나.'


직장생활의 처음에는 저는 마치 라파엘 나달과 같이 끊임없는 훈련과 질주를 했습니다. 직장생활을 잘하기 위한 스킬을 연구했고, 매일 이어지는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따라오는 회식자리도 절대 빠지지 않았죠. 그러다가 직장생활 8년 차가 됐을 때는 번아웃 현상이 왔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아지지 않는 내 현실과 진급 누락이라는 결과에 지쳐버린 거죠. 이렇게 열심히 해봐야 따라오는 게 뭔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연봉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또, 내 바로 위에 있는 선임은 원형탈모로 고생하고 있고 결국 직장의 노예로 전락하는 결과를 보고 있자니 내 미래에 대한 모습도 이미 그려지더군요.


그때 저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생활 약 9년~10년 차 정도 될 때였습니다. 회사에서는 내가 할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되 내 영혼까지 받치지는 말자. 회사는 절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내 개인의 삶과 자산 축적에 더 큰 에너지를 쏟자라고 다짐하게 되더군요.


예전에는 제가 해야 될 일뿐만 아니라 남이 하는 일도 가져오곤 했습니다. 그러면 남들이 인정해주고 부서장이 인정해주니까요. 그게 멋있는 거인 줄 알았고 그렇게 해야만 되는 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해야 되지 않을 일은 절대 건드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개인의 삶도 챙기기 바쁜데 남의 일까지 하느라 내 시간을 뺏길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의 제 부서장님이 한 말이 처음에는 부정적으로 들렸지만 조금 곱씹어 생각해보니 '나 지금 잘하고 있구나? 내 생활을 잘 챙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그냥 직장인입니다. 회사의 재무제표에는 인건비라는 항목 중에서도 보이지도 않죠. 아마 SAP이라는 내부 회계관리 시스템에서 저는 단지 하나의 숫자에 불과할 겁니다. 그리고 전 회사의 주식도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회사의 주인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회사와 저와의 계약에 따라 일을 하는 직장인일 뿐입니다. 따라서, 내가 맡은 바 역할만 충분히 수행한다면 그걸로 된 겁니다.


언젠간 저도 경력이 차면 회사를 나와야 하는 순간이 올 겁니다. 물론 안 올지도 모를 일입니다만 그때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의 경쟁력을 갖춰야 하고 월급의 노예를 벗어나 회사 없이도 살 수 있는 진짜 '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는 직장인이 되고자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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