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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릭리 Apr 02. 2023

나는 왜 그 소장님과의 협상에서 졌는가

'21년 하반기 부동산 상승의 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주식을 매도한 차액으로 꽤 많은 현금이 생겨 마음이 급했다. 돈을 운용할 줄 모르는 풋내기였기에 하루빨리 거품과 같은 내 돈을 안전한 자산으로 옮기고 싶었다. 그래서 부동산 공부를 하고 난 뒤 나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아파트를 산 것이다. 지방에 한 아파트를 샀고 2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소위 말해 갭투자를 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깎고 싶었지만 부동산 소장님은 완강했다. 아이폰을 쓰고 있어 통화 녹음은 못 했는데 복기하면 대화는 이렇다. 


"소장님, 그 제가 말씀드린 물건 가격 절충은 좀 안될까요?"

"아 양반.. 이게 정말 싼 물건인데, 더 이상 깎을 수가 없어.. "

"그래요? 음..."

"알겠어 그러면 내가 매도자한테 물어보고 500이라도 한 번 깎아볼게" 

"알겠어요 소장님 감사합니다."


이런 대화를 한 뒤, 소장님은 500도 힘들게 깎았다며 나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다. 정말 나는 500이라도 너무 감사해서 거래가 잘 끝나면 파리바게트에서 빵이라도 하나 사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어찌해서 내 생에 첫 아파트 계약을 하는 날이 왔다. 매도자는 전라도 광주의 한 투자자인데, 이 집을 4억 중반에 사서 나에게 7억에 파는 것이었다. 세금은 고려하지 않고 무려 2억이 넘게 이익을 보고 나에게 판 것이다. 그런데, 거래를 하며 잡담을 나누는 도중에 믿지 못할 말을 매도자로부터 들었다. 


"소장님, 저 이거 1000만 원까지는 깎아주셔도 된다고 했는데 500밖에 안 깎아주셔서 감사하네요. 전 마음이 급해서 빨리 팔고 싶었거든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맞다. 속은 것이다. 부동산 소장님은 천만 원 네고할 수 있는 카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한테는 500만 원 밖에 네고가 안된다고 뻥카를 날린 거였다. 그런데 난, 그게 고맙다고 빵을 사갈 생각까지 한 게다. 이게 만약 부동산 상승장의 초반부였다면 나는 이렇게 후회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래 매매-전세 차트를 한 번 보자. 맞다. 내가 산 시점은 22년 초. 부동산 상승장의 끝물이었다. 오를 대로 오른 아파트를 꼭지에 잡은 것이다. 물론 서울, 경기에 투자하지 않아 하락폭이 크지는 않지만 매매가는 1억 전세가도 1억 가까이 떨어졌다. 내 자산 지키려 투자했는데 거꾸로 돈을 잃은 꼴이 됐다. 아직 팔지는 알았지만 그래도 마치 잃은 느낌이 든다. 


나는 뭘 잘 못 했을까? 최근 허브코헨의 <협상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으며 과거 내가 했던 부동산 매수를 많이 복기해 봤다. 그런데, 나에게 엄청난 허점이 있었다. 그걸 이번 글에서 여러분들께 소개하고자 한다. 


허브코헨은 얘기한다. 협상의 3요소는 정보, 시간 그리고 힘이라고. 나는 이 협상의 3요소에서 부동산 소장에게 이긴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한 번 하나하나 뜯어보자. 


1. 정보 

그렇다. 나는 그저 여러 부동산을 들러 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여러 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살펴볼 생각을 안 했다. 딱 그 아파트만 목표물로 잡았으며 소장님도 추천을 받아 연락했다. 마침 추천을 받은 소장님이 나를 등쳐먹을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거다. 나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부동산 소장에게 연락을 했기 때문에 정보가 제한적이었고 이 부동산 소장이 주는 정보가 내가 믿을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더랬다. 더군다나 추천까지 받지 않았는가. 만약 다른 부동산도 이리저리 알아보고 가격을 비교했더라면 분명 이 부동산 소장이 제시한 가격을 조금 더 꼼꼼하게 따져 봤을 테고, 다른 아파트는 이 평형에 층수도 더 좋은데 여기보다 싼데 더 절충 안 되나요? 식으로 협상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이 아파트 가격이 적정한지 판단할 수 있었을 테다. 또한, 나는 이 소장에게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파트를 투자한다는 내 약점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이 소장은 겉으로는 아유... 그러냐며 도와주려고 했겠지만 속으로는 내 약점을 잡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물건 거래 성사가 쉬어질 것이라는 걸 아마 예상했을 것이다. 허브코헨은 얘기했다. "무언가를 꼭 가져야겠다고 느낄 때, 당신은 항상 최고 가격을 지불하게 된다. 상대방은 당신을 쉽게 조종할 수 있는 위치에 선다"라고. 내가 사실 그 소장에게 알려준 거다. 나는 꼭 아파트를 사고 싶다고. 그러니, 높은 가격에 아파트를 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 소장도 협상에서 좋은 포지션에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이 물건을 살 때만 해도 금리 인상이 시작되려던 때였다. 그러니, 물건이 팔릴 리가. 부동산에 방문하는 발길은 점점 끊기고 거래는 얼어가고 있었다. 이 시그널을 들었을 때 나는 조급하지 말아야 했다. 다음 협상의 요소인 시간으로 가보자. 


https://www.mk.co.kr/news/economy/10116444


2. 시간

정보도 정보지만 나는 시간에 있어 이 소장님에게 완패했다. 사실 소장에게 완패했다는 표현 자체가 잘 못 됐다. 나 스스로에게 진 거다. 나는 현금이 생겼고 이 현금을 소진할 곳을 빨리 찾고 싶었다. 그리고 30년 평생 무주택자로 살다가 첫 아파트를 구매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하루빨리 아파트를 사고 싶었고, 나의 매수 기한은 지금 당장이었다. 지금 당장 사지 않으면 아파트 가격이 더 오를 것 같았고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파트 시장의 상승 사이클과 하락사이클을 한 번 도 겪어보지 못 한 풋내기였기 때문이다. 협상에 임할 때 조급한 사람은 항상 지기 마련이다. 허브코헨은 협상의 기술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절대로 자존심이나 조급함, 빨리 해치우고 싶은 욕구 때문에 위협을 무릅쓰지 마라." 내가 그랬다. 조급했고 빨리 사고 싶은 욕구가 컸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장의 경우에는 어떤가? 사실 팔아서 수수료를 챙기면 좋겠지만 내가 아니더라도 팔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있었을 것이다. 꼭 내가 아니어도 그리고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더 낮은 가격에 팔아도 이 소장은 아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시간에 있어서도 내가 소장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나 스스로도. 내가 시간이 있었다면, 아마도 이 아파트를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동산 거래가 꽁꽁 얼어붙고 있었고 금리 인상으로 인해 경기침체가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조금 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기다렸다면 조금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보, 시간에서 나는 완전히 패배했다. 그러면 힘은 어떨까? 역시 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다음에서 알아보자. 


3. 힘 

내가 가진 돈은 2억이었다. 사실 이 돈 자체가 나한테는 힘이었는데, 나는 힘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큰 패착이었다. 이 돈을 가지고 여러 부동산을 돌아다녔다면 이 부동산 저 부동산에서 나와 거래를 하려고 줄을 섰을 것이다. 왜냐면 21년 하반기 당시 부동산 시장은 매도자 우위 시장에서 매수자 우위 시장으로 돌아서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알턱이 있나. 부동산 사이클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고 태어나 처음으로 아파트를 사보는 풋내기였으니까. 사실은 여러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긴 호흡을 가지고 협상에 들어갔어야 했다. 만약 부동산 상승이 막 시작된 때였더라면 빠르게 매수하는 게 정답이었을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지 않은가. 허브코헨은 얘기한다. "당신에게는 충분한 힘이 있다. 이 힘을 사용하여 자신에게 중요한 목표를 신중하게 구현하라. 다른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살라고 하는 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뜻에 따라 살아라."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인지하지 못했고 난생처음 보는 소장에게 힘이 있다 착각하고 의지했다. 


나는 첫 번째 아파트 매수를 할 때 협상에 있어서는 엉망진창이었다.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랐고 순진했다. 수업료를 꽤나 지불한 것 같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나는 이 아파트 매수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차후에는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투자에 실패만 하고 후회만 하면 거기서 끝이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교훈을 찾고 다시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면 분명  좋은 기회를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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