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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릭리 May 11. 2022

1기 신도시 신드롬

아파트값 5차파동 / 최명철 

최근 1기 신도시 재건축 이슈가 뜨겁다. 그럼 이 시점에서 '아파트값 5차파동'에서 나온 1기 신도시 얘기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어떤 Insight가 있을까? 같이 한 번 살펴보자. 


<신도시 신드롬> 

 과연 아파트값을 진정시킬 묘책은 없는 것일까.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짜내 보지만 아파트 투기를 막는 방법은 단하나, 한꺼번에 대량으로 공급해 넘치는 수요를 충족시켜 주는 길 밖에 없었다. 맞불을 놓아 분양아파트로 수요가 몰리면 분양가격을 올리지 않고도 아파트값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투기 억제를 위해 필요하다면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긴급명령권을 발동해서라도 반드시 부리 뽑을 것이라고 천명한 가운데 대대적인 물량 공세를 취했다. 주택난을 해결하고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분당, 일산 등 아껴두었던 땅에 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서울에서 1시간 거리이내에 생활, 교육, 문하 등 도시 기반시설과 편익시설을 갖추고 녹지와 휴식공간을 대폭 늘려 쾌적한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것이었다. 강남지역을 개발한 지 20년 만에 포화상태에 이르자 또 다른 신도시가 필요했던 것이다. 특히 서울 강남지역과 맞닿아 있는 분당신도시에 중/대형아파트를 많이 건설해 중산층을 흡수, '제 2의 강남'으로 개발하고자 했다. 

 5개 신도시에 공급될 주택물량은 자그마치 29만여 가구. 서울지역 전체 아파트 42만 가구의 69%이고 강남지역의 23만 가구 보다 많은 엄청난 규모였다. 

 신도시 건설계획 발표로 주택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연일 최고 시세를 경신하던 서울지역 아파트값 오름세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신도시 아파트가 대량 공급될 것이라는 기대로 수요자들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갖게 되었다. 수요자들이 아파트값이 떨어지길 기대하며 관망세를 보이자 매물도 조금씩 늘어나고 부르는 값도 낮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투기성 가수요마저 움찔거리자 매매시장은 차츰 매도자 중심에서 매수자 중심으로 바뀌어 갔다. 값을 흥정할 수도 있고 골라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오른 강남지역 아파트값은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서울지역 아파트값 오름세가 진정되자 수도권과 지방도시 아파트분양 열기도 점차 가라앉았다. 일부 지방도시에서는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 아파트가 미분양 되기도 했다. 

 신도시에 대한 관심은 주택청약관련예금 가입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내 집을 마련하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일 뿐만 아니라 적잖은 시세차익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신도시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매입을 미루고 일시적으로 거주할 전세를 찾는 경우가 많아 전세값이 크게 올랐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게 될 원주민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첫 삽을 뜬 신도시 건설은 많은 문제점을 안은 채 빠르게 추진되었다. 터닦기 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신도시를 연결하는 지하철 건설계획고 아파트 분양일정이 발표되며 신도시 모양새가 점차 드러 났다. 더불어 신도시에 관심과 기대를 갖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자녀 교육과 출퇴근에 큰 불편이 없다면 신도시로 이주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무렵 뭉칫돈 흐름에도 변화가 있었다. '빨리 달구어지는 냄비가 쉬이 식는다' 는 속담처럼 국제 경제환경이 나빠지며 3저 시대가 막을 내리자 주식시장은 파장분위기였다. 주(住)테크냐, 주(株)테크냐 이것이 문제였다. 무역수지 흑자가 크게 줄어들자 증권회사 객장을 찾는 사람들이 부동산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일부 증시자금도 뛰는 말로 바꿔 타기위해 실물경기에 후행하는 부동산시장으로 흘러 들어왔다. 

 정부도 흐트러진 전열을 정비했다. 집을 사서 전세 놓고 전세금으로 다시 집을 사는 소위 '새끼치기'로 여러 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집값을 부채질 한다고 판단, 1가구 2주택 소유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주택가수요 억제대책을 마련하였다. 거주목적으로 주택을 분양받고자 하는 구입능력이 있는 무주택자, 즉 실수요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내용을 간추려보면,

▶ 아파트를 한 번 분양받은 사람은 재당첨금지 기간이 지나도 영원한 2순위가 된다. 

▶ 민간아파트 분양권도 전매가 금지됐다. 중도금만 내면 명의이전이 가능했던 것을 입주 때까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즉 당첨자와 계약자 그리고 최초 입주자가 동일인이 아니면 분양계약을 취소한다는 것이었다. 

 이참에 분양가격 규제방식도 바꾸었다. 민간아파트 공급을 늘리기 위해 81년부터 시행해온 분양가격 상한선제도를 폐지하고 원가연동제를 도입하였다. 원가연동제란 적정 이윤이 포함된 건축비에 지역별로 차이 나는 땅값을 더해 분양가격을 정하는 제도이다. 땅값과 건축비를 한데 묶어 통제하던 것을 건축비를 부분적으로 현실화 하면서 정부가 어느 정도 통제하던 것을 건축비를 부분적으로 현실화 하면서 정부가 어느정도 통제기능을 갖겠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분양가격 자율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상 좋은 집을 짓지 말라는 제2의 분양가 상한선 제도이므로 건축자재, 인건비 등이 올라 표준 건축비 인상요인이 발생하면 매년 연례행사처럼 상향 조정해야만 했다. 

 주택시장에 적지않은 변화가 예상되었다. 강남지역 아파트가 평당 2백만 원대에 분양될 것으로 보여 기존 아파트값 상승이 점쳐졌다. 한달후 진통 끝에 평당 71만 5천원이었던 표준건축비가 평형과 층수에 따라 평당 98만~1백 13만 원으로 결정되어 50%가량 인상조정 되었으나 아파트시장의 움직임은 의외로 담담했다. 잠시동안 부산스러웠을 뿐이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표준건축비가 상향 조정되어 분양가격이 오르면 기존 아파트값을 부추길 것으로 보았으나 지방 도시에서 미분양됐던 아파트가 삽시간에 팔려나갔을 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신도시아파트 분양을 앞두고 있어서 사려는 사람이나 팔려는 사람 모두 눈치를 보는 분위기였다. 신도시에 거는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신도시아파트가 분양될 때까지 큰 변화가 없을듯 했다. 


<묻지마 청약> 

 89년 11월, 드디어 기다리던 신도시 아파트가 분양되었다. 최고급 수입자재로 내부를 장식한 1백 평짜리 호화판 빌라가 평당 8백 50만 원에 분양되어 이목을 끌었을 때였다. 첫 테이프를 끊은 곳은 분당신도시 시범단지였다. 분양신청 5일 전에 모델하우스를 공개하자 잔뜩 기대에 부풀어 분당신도시로 향했다. 집을 넓혀가거나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 분당으로 가는 길은 처음부터 멀고도 고생스러웠다. 첫날 10만 인파가 몰려 소동이 벌어졌는데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차량과 인파가 뒤엉켜 큰 혼잡을 빚었다. 모델하우스는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연일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미어 터졌다. 

 인파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여기저기를 기웃그렸는데 방문객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던 것은 첫 선을 보인 선택사양제(옵션제)였다. 기본형과 거실장, 싱크대, 실내등, 벽지 등을 고급 마감재로 꾸민 선택형을 비교 전시했는데, 건축비의 7% 범위 내에서 실시해 선택의 폭은 넓어졌으나 아무래도 분양가를 슬쩍 올린거나 다름없다는 인상이 짙었다. 홈 오토메이션 설치가 보편화되었고 30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서 상계동에서 세운 25층 기록을 갈아치웠다. 

 분양가격은 평형에 따라 평당 1백 52만 ~ 1백81만원에 결정되었다. 표준건축비가 높게 책정돼 분양가격이 비싸졌지만 서울이나 수도권지역 아파트보다 훨씬 싸기 때문에 왠만한 지역의 전세값이면 신도시 아파트를 사고도 남았다. 다시 국토개발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서울 강남지역의 평균 아파트값은 평당 4백 83만원, 전세값은 평당 2백 3만원 이었다. 

 분당 신도시는 살고 있는 집이 왜지 좁다고 느꼈던 서울 강남지역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당시 1억5천만원을 호가하는 강남지역 31평형 아파트를 팔면 9천3백만 원에 분양된 분당의 53평형으로 넓혀가고도 5천 7백만원을 남길 수 있었다. 견물생심이라. 집을 넓혀가려는 교체수요가 일면서 주택 과소비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분양시장이 술렁겨렸다. 내 집 마련을 위한 실수요와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성 가수요가 뒤엉켜 신도시 아파트 분양열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1차로 4천366가구를 분양했는데 신도시행 티켓을 구입하려는 청약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어 예상을 훨씬 뛰어 넘었다. 수도권 청약예금 1순위자 36만 명 중 절반 가까이 신청했다. 시세보다 싸게 분양되는 아파트에는 프리미엄이 붙기 때문에 이른바 '묻지마 청약'이 이뤄졌는데 사회 저변에 폭 넓게 퍼져있는 '떼돈 신드롬'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서울에서만 실시되었던 채권입찰제를 신도시 아파트에도 적용하였다. 그러나 채권입찰제를 확대 실시하면 서울지역 아파트값을 자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적용대상을 대폭 축소해야만 했다. 전용면적 40.8평 이상(분양면적기준 55평 이상) 대형아파트에 한해서만 실시하되 채권입찰상환액을 평당 70만 원으로 정했다. 

 따라서 가장 인기 있었던 평형은 채권입찰제를 실시하지 않는 47평형, 49평형, 50평형, 53평형이었고 여기에 가수요가 집중되었다. 당첨되는 순간 손쉽게 수천만 원의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아파트를 분양받는다는 것은 마치 복권에 당첨되는 것과 같았다. 주택복권 당첨확률은 수백만 분의 1이지만 아파트는 '청약갱쟁률 = 당첨확률'이기 때문에 고작 수십 대 1로 매우 확률이 높은 복권인 셈이었다. 주택청약예금 통장 뒷거래가 되살아 났는데 어쩌면 당연했다. 


최근 1기 신도시이가 화제이다. 과거에 1기 신도시가 생겨났을때의 상황 설명은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 하지만, 아래 분당 시범단지 우성아파트의 매매/전세 차트는 위의 글을 요약해서 보여준다. 우리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파트를 사랑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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