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아들을 위해, 새벽 3시에 데리러 나온 아빠
고등학교 졸업 후, 성인이 된고 얼마 안 됐던 시점이었습니다. 여타 학생들처럼, 인문계 고등학교 3년을 빡빡하게 공부를 하다가 성인이 된 이후 말로 표현 못할 '해방감'과 '자유'를 만끽하던 때였죠. 그날도 나름 나만의 자유와 해방을 맛보며, 저녁에 예정되어 있던 친구 생일 파티에 참석하였어요. 잘 못하는 음주였지만, 나름 분위기에 맞춰 마시고 또 마셨습니다. 친구들도 나와 같은 '해방감'을 만끽하며, 앞으로의 삶의 비전과 미래에 대한 얘기보다는 그저 들으면 가벼울 수 있는 재밌는 얘기만 주고받으며, 그렇게 분위기가 새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오후 6시부터 모여, 간단히 1차부터 시작하여 4차 맥주집까지 거하게 마시니, 새벽 2시쯤 되더군요. 가뜩이나 못 먹는 술인데, 친구 생일이라니 그놈의 의리가 뭐라고 주량을 넘어서 마구 마셔대니 탈이 제대로 났습니다. 혼자 화장실에서 가서 구토를 하고 왔는데도, 급체를 했는지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가빠오더군요. 친구들도 아직 미성숙했을 시기고, 다들 제 몸 하나 챙기기 어려울 정도로 마신 상태라 본능적으로 누구에게 의지하기는 힘들겠다 느꼈습니다. 집까지는 25분 거리. 택시를 잡아타서 가면 되겠지만 혹여나 구토를 하거나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 때문에 쉽사리 택시를 잡지 못했어요.
어떻게 귀가할까 고민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나는 큰 상점 앞에 주져 앉아 힘겨운 가쁜 숨만 몰아 쉬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다.'
나는 주위에 어떻게 전화기를 빌려, 새벽 3시에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빠, 주무시는데 죄송해요."
"왜, 아들? 무슨 일 있어?"
보통 새벽전화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기에, 아빠는 매우 놀란 목소리로 내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니, 술을 조금 마셨는데, 집 가기가 힘들어서요."
나는 끝끝내 아빠에게 지금 여기로 데리러 와달라고 말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행간의 의미를 빠르게 읽은 아빠는 곧바로,
"아들, 아빠가 지금 거기로 갈게, 다른 데 가지 말고 거기 그대로 있어."
이렇게 말씀 후, 전화를 끊었습니다.
새벽 3시에, 다 큰 아들이 술 취했다고 집에 못 가겠다고 전화가 온다면 달가워할 아빠가 어디 있을까요?
나도 내 이들을 키우고 있지만, 아들이 커서 같은 행동을 한다면 면박부터 주는 게 인지상정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아빠는 달랐습니다.
25분 거리였는데, 새벽이어서 그런지 아빠는 15분 만에 도착했어요. 나를 발견하고는,
"아들, 얼마나 먹은 거야? 괜찮아? 토하고 싶으면 지금 해"
나를 근처 옆 수풀 속으로 데려가더니 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아빠가 옆에 있다는 안도감에 컨디션이 갑자기 좋아졌음을 느꼈어요. 구토는 하지 않고, 아빠차에 올라탔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도 아빠는 수시로 내 상태를 점검했어요. 편의점에 들러 이온음료도 사와 목을 적셔 주었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멀미가 나고, 술이 취했는지 구토가 올라왔어요.
"아빠, 저 토하고 싶어요."
아빠는 갓길에 정차하고, 밖에서 토하고 있는 나의 등을 천천히 두드려 주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내 방에 들어가 그대로 뻗었습니다. 잠결에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희미한 기억 속에 아빠는 한동안 내 방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엄지와 검지사이 움푹 파인 곳을 꽤나 세게 지압을 해주었고, 등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나는 그다음 날 아빠에게 죄송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어요.
새벽 3시에 다 큰 아들이, 깊은 잠에 든 아빠를 깨워 데려오라고 했던 사실이 나를 참 부끄럽게 만들었어요.
한편으로는, 새벽 3시에 아들이 술 먹고 전화 와서 데리러 와달라고 했을 때, 지구상에 어떤 아빠가 흔쾌히 태우러 오겠는가 생각해보니, '나는 참 복 받은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철없고 부끄러운 행동이었지만, 나에 대한 아빠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이런 아빠가 세상에 과연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아빠가 다시금 대단히 보였던 사건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