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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나무 Jun 08. 2021

요리하는 시아버지

시아버지가 며느리와 손주들에게 요리를 해 주는 이유

아빠는 요리를 무척 좋아했어요.

아빠의 요리는 특히  맛이 일품이었어요.


처음에는 우리 삼남매 간식을 손수 만들다가 이게 발전하여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해요.


아빠표 고구마 맛탕

 사실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사회 통념상 남자가 요리하는 경우가 드물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면 아빠가 요리를 많이 해 주었어요. 친구들은 항상 묻곤 했습니다.


"너희 아빠가 어떻게 요리를 이렇게 잘하셔? 나는 우리 아빠가 요리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아빠의 요리는 이미 내가 초등학교 시절, 어느정도 경지에 올라갔던 것으로 기억해요.


아빠는 못하는 요리가 없었어요. 한식은 기본이고, 직접 싱싱한 바다 물고기를 수산시장에서 사 와서 가족들을 위해 회를 떠준 적도 많이 있었어요. 아빠의 요리는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였고, 특히 퓨전요리가 맛있었어요.


이전에 했던 레시피가 있다면, 새로운 식자재와 재료를 추가하거나 다른 조리법을 응용하여 퓨전요리를 선보이는데, 그 맛이 이질감이 없고 매우 맛있었어요. 아빠는 항상 말씀하셨어요.


"아들, 우리들이 먹는 것이 곧 우리가 되는 거야. 따라서, 몸에 좋지 않은 것을 먹기보다는 나에게 좋은 에너지와 기운을 줄 수 있는 음식을 먹는 게 가장 좋단다. 아빠는 너희들을 요리할 때, 아빠 요리가 너희들 키를 키우고, 좋은 영양분으로 몸에 들어가기 때문에 항상 그걸 상상하면 너무 기뻐"


아빠 요리의 원천은 바로 우리였어요. 아마 아빠 혼자 식사를 할 때, 그렇게 거창하게 요리를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다들 알고 있겠지만,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죠. 그런 힘든 요리를 아빠는 항상 즐겨왔어요.


아빠는 퇴근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손만 씻고는 바로 요리를 하러 주방으로 들어가는 날도 많았어요. 왜 어린 나이에도 다 눈치를 보잖아요. 아빠가 마지못해 우리를 위해 하는 일인가, 아니면 정말로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기뻐서 하는 일인가. 우리 가족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어요. 아빠는 항상 기쁜 마음에 요리를 했다는 것을요.  


건축을 전공하고, 평생을 건축가로 일하시며 퇴근 후에는 그 투박한 손으로 요밀조밀 요리를 하는 모습은 굉장히 역설적이면서도 그 누가봐도 매력적인 모습이였어요.


나는 아빠쉐프의 조수를 많이 했었어요. 가끔 식자재를 손질하거나, 양파나 마늘을 까는 등의 간단한 보조 업무는 옆에서 손을 보탰어요. 아빠는 요리를 하며 항상 설명을 해 주었어요.


"채소와 야채는 풍미를 돋우는데, 특히 이 양파와 파는 요리 맨 마지막에 불을 끄고 넣으면 된단다"


아빠는 나에게 요리 순서까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면서 직접 요리를 선 보였어요. 따라서 저에게 자연스레 요리 수업이 된 셈이죠. 이 덕분에 저도 미국 유학 시, 자취할 때 많은 요리를 할 수 있는 그 기초가 되었고, 요리를 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각종 해물과 버섯, 채소가 듬뿍 들어간 아빠표 해물탕

아빠의 요리는 꽤나 체계적이었어요. 그리고 최상의 맛을 위해 항상 좋은 식자재와 재료를 선택하였어요.


특히, 고기 요리가 아빠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 중 하나였는데, 아빠는 고기를 살 때도 마음에 드는 고기가 있을 때까지 근방 마트 및 정육점을 여러 군데 돌기도 했어요. 아무리 단골 정육점이어도, 그날 해당 부위의 고기가 아빠 마음에 썩 들지 않으면 구매를 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고기가 나타날 때까지 다른 정육점이나 마트를 찾아다녔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저는 제 자식들을 위해 요리를 해준다 할지라도 아빠가 했던것 같이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귀찮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보기에는 '그 고기가 그 고기' 같아 보였거든요. 그런데 아빠에게는 아빠만의 확고한 요리 철학과 나름의 철칙이 있었던 것이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의 모든 요리과정에 참여했어요. 요리 중간중간 손이 모자랄 때보조를 하기도 하고 요리의 모든 과정을 옆에서 관찰하며 자연스레 습득해 나갔어요.


아빠는 항상 요리가 완성되기 전에 나에게 간을 보게 했어요. 고기의 잡내를 없애고 고기를 한번 시식을 하고, 양념을 넣고 볶을 때 또 한 번 시식을 해요. 그리고 각종 양념과 채소를 넣고 요리가 완성이 되면 또 한 번 시식을 하고요.


저는 이때 요리의 참된 기쁨을 배웠던 것 같아요. 완성된 요리만 항상 보고 먹으면, 그 감사함을 알지 못할 수도 있을것 같아요. 한 요리가 하나의 접시에 오를 때까지 수많은 고민과 수고 그리고 관심과 사랑이 같이 곁들여진다는 것을 아빠를 통해 깨달았어요.


그렇다고 아빠는 내가 이 모든 요리과정을 강제로 참여하도록 한건 아니에요. 제가 좋아서 참여하게 되었고, 아빠의 요리에 대한 철학과 그리고 요리를 하는 모든 과정에 대한 진심이 저를 참여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아빠는 못하는 요리가 없었어요. 떡갈비, 짬뽕, 육개장, 주꾸미 볶음, 매운 쫄면, 돼지김치찌개, 갈비, 불고기 등 메인 요리는 기본이고, 통닭, 감자튀김, 멸치 볶음 등의 각종 반찬과 간식거리도 뚝딱 해 냈어요.



아빠의 고급요리: 한우 야채말이


아빠가 그렇게 요리를 시작한 지 어언 25년이 넘은 것 같네요. 엄마도 요리를 굉장히 잘하는 편이고, 엄마의 요리 역시 일품이지만, 아빠의 요리는 항상 모든 식재료의 질감이, 그 본연의 맛을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이 되어서 특히 좋았어요. 한마디로 각각의 식자재의 매력이 통통 튀는 맛이라고나 할까요.


TV나 인터넷에서 아빠가 알지 못했던 요리가 있거나 조리법이 있으면 메모를 해 놓거나 기억을 해 놓고, 항상 주말마다 가족에게 그 요리를 하곤 했어요. 굉장히 모험적인 요리도 많이 있었는데, 한 번도 맛이 없어서 남기거나 버린 기억이 없을 정도로, 모든 요리는 항상 훌륭했습니다.


주위에서 들으면 가장 놀라는 것 중에 하나가,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요리를 해주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더라고요. 물론, 아빠가 며느리만을 위한 특식 요리를 만들어주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아빠는 단 한 번도 우리 내외에게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던가, 식사를 준비해 달라고 요청을 한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어요.


아빠가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은 우리 삼남매야 항상 어렸을 때부터 줄곧 봐 왔던 광경이라 친숙하지만, 그 광경을 처음 보는 이들에게는 때로는 그 광경이 낯설기도 하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거예요.


아내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에 시댁에서 식사를 하면서부터 시어머니도 물론 어렵지만, 특히 시아버지가 손수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계시니 얼마나 안절부절 못하겠어요. 지금은 아내도 시아버지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것에 대해 익숙해져서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고, 자연스러운 모습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아빠와 주방

아빠는 우리 내외 그리고 손자들이 방문하는 날이면 항상 미리 전화를 하셔서 이렇게 묻곤 합니다.


"아들, 며느리한테 뭐 먹고 싶은지 물어봐서 결정해서 알려줘"


"아들, 아빠가 오리 백숙하고 꽃게탕 재료 사다 놓았는데, 며느리한테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고 알려줘"


아빠는 메뉴 선택에 있어서 항상 우리 삼남매나 며느리의 의사를 물어보고 요리를 시작합니다. 항상 저와 아내는 이런 아빠를 보고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우리는 나중에 커서 아빠처럼 못할 것 같아, 아무리 자식이어도 그렇지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요리를 직접 해 주는 것도 모자라, 그전에 메뉴 선정부터 요리시간까지 미리 민주적 협의(?) 내지는 제안을 통해 항상 맛 좋은 요리를 대접해주시는 아빠를 보며 나는 가끔 고개를 절로 젓습니다. 아빠는 엄마와 며느리가 특히 많이 매운 음식을 잘 못 먹기 때문에, 식구들의 입맛까지 고려해서 요리를 합니다.


아빠는 그렇게 자식들을 향한 사랑을 '요리'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에게 표출하고 있었던 거예요.


자식들도 이렇게 손수 요리를 하는데, 손자들은 어떻겠어요?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메뉴를 물어보고, 좋아하는 요리를 해주는 것도 듣고 보기 힘든 광경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들을 위해 요리를 해주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저는 주위에서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제 두 아들들이 먹는 양과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특히 막내는 아직 어려 큰 것을 삼키지 못해 잘게 찢어줘야 하는데, 아빠는 이 모든 것을 꿰뚫고 있어요.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큰손자, 작은 손자만을 위한 메뉴를 따로 만들어요. 그리고 아빠는 한마디를 합니다.


"아들, 아빠는 삼남매를 직접 키운 배테랑인데, 이것 하나 모를까? 아빠가 더 잘 아는 게 당연한 거지"


맞는 말씀이긴 한데요, 사실 그렇다고 모든 할아버지들이 이처럼 손자들에게 직접 요리도 해주고, 놀아주고, 섬세하게 소통을 하지는 않거든요.


아빠의 자식사랑이 유독 유별난 것 같아요. 가끔 너무 사랑하면 집착한다는데, 아빠는 단 한 번도 자식과 손자들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 내외는 항상 고맙기도 하면서 아빠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보통, '기브 앤 테이크'라고 하여, 준 게 있으면 사람인지라 내심 받는 것도 기대할 수 있는데, 아빠는 '기브 앤 테이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어요.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을 unconditional love (무조건적 사랑)이라고 하는데, 아빠는 이 단어를 몸소 실천하였고, 우리들에게 보여주었어요.



아빠에게 요리는 어떤 의미일까요?


과거에도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고, 그리고 앞으로 남은 여생도 함께 할, 어찌 보면 요리는 아빠가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고급스러운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요.


 

달고 짜고 살짝 매운 소스가 일품인 아빠의 등갈비 요리


미국 유학을 오랫동안 하는 동안, 아빠의 요리가 많이 그리웠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단순히 요리가 그리웠던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요리하면서 나누는 대화들, 아빠와의 교감, 온 집안에 가득 퍼지는 요리의 흔적들.


이 모든 것들이 아빠와 나를 이어주는 하나의 끈이었던 거예요.


아빠는 그렇게 그 '끈'을 항상 놓지 않고 있던 거예요.

이전 09화 아플 땐 항상 아빠의 약손이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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