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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나무 Jun 22. 2021

아빠, 저를 왜 가만히 못 놔두세요?

아빠의 스킨십

사랑과 친밀도를 드러내는데 스킨십만 한 게 없을 거예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좋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리기도 힘든 게 스킨십이죠. 아빠는 엄마와 우리 삼남매에게 어렸을 때부터 사랑 표현에 매우 적극적이었어요.


가족 모두가 아빠 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가면 아빠는 엄마와 손을 잡았어요. 저녁식사를 하다 말고 갑자기 엄마에게 윙크를 하기도 하고, 두 팔을 벌려 하트를 크게 만들고 춤을 추기도 했어요.


어렸을 때 나는 아빠만 엄마를 사랑하는 줄 알았어요. 상대적으로 엄마는 아빠에 비해 사랑 표현이 적극적이지 않았거든요. 어린아이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거예요.


적극적인 사랑 표현은 우리 삼남매에게도 전해졌어요.


"아빠는 너희들을 이 지구의 어떤 것보다도 사랑한단다"


"너희들을 내 눈에 다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단다. 사랑해"


"너희도 나중에 커서 자식 낳아봐, 얼마나 예쁜지"



아빠의 사랑 표현은 우리들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만 있던 게 아니었어요. 시시때때로 갑자기 사랑 표현을 마구마구 했어요.


아빠는 스킨십을 특히 좋아했어요. 두 아들을 양옆에 끼고 팔베개를 하며 TV를 보거나, 같이 얘기를 하는 날도 많았어요. 그럴 때면 아빠는 항상 이렇게 말했어요.


"아빠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 우리 두 아들 양옆에 이렇게 팔베개를 하고 있으면 세상에 부러운 게 하나도 없단다"


아빠, 나, 남동생 - 두 형제가 아빠의 큰 팔 안에 모두 들어왔다.


같이 포옹을 하거나 손을 잡거나 하는 등의 스킨십은 우리 부자관계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어요. 그런 스킨십이 나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어요.


아빠 팔베개는 중학교 때까지 했었던 것 같아요. 다 큰 남자애가 아빠 옆에 팔베개하고 누워있다고 생각하니 지금 회상하면 꽤나 징그럽지만, 그때 당시 우리 집에서는 꽤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어요. 중학교 때 친구에게 아빠 팔베개를 아직도 한다고 얘기했더니 매우 놀라던 그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사춘기 때는 이런 스킨십이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어요. 그렇게 자식이라는 존재가 사랑스럽나 정도만 생각했었던 것 같고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어요.





장이 약한 편이라, 종종 배탈이 났어요. 배탈이 나서 배에 통증이 있으면 아빠는 옆에 와서 내 손을 지압해 주었어요.


"아들, 여기를 누르면 배가 덜 아프고, 소화도 잘 된단다. 앞으로 배탈이 나면 이 부분을 아플 정도로 꾹 누르고 있으렴."


신기하게도 아빠가 손을 지압해주면, 통증이 일제히 사라지는 거예요. 아빠 손은 약손이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아빠와 같이 윷놀이나 스포츠 경기를 할 때면, 하이파이브를 자주 했어요. 아빠는 손가락 마디가 굵고 손이 커서 하이파이브를 하면 내 손이 얼얼했어요. 아빠는 하이파이브를 소리가 만족스러울 때까지 했어요.


두 손바닥이 제대로 합이 맞아, '짝'하고 소리가 나야 아빠는 직성이 풀렸어요. 하이파이브도 일종의 스킨십이었죠.







그때 당시 부모님의 훈육은 체벌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지기도 했어요.


부모님께 손바닥이나 종아리, 엉덩이를 맞는 것은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는 별게 아니었어요. 아빠도 가끔 우리 형제가 제어가 되지 않거나 큰 잘못을 했을 때는 매를 들었어요. 아빠에게 매를 맞으면 아주 많이 아팠고, 특히 맞은 엉덩이 부위가 빨갛게 부었어요.


아빠는 체벌이 끝나면 꼭 우리 형제를 불렀어요.


"아들들, 아빠가 아들이 미워서 엉덩이를 때린 게 아니야. 너희들을 아주 사랑하기에 매를 들었단다. 잠깐 이리 와보렴"


아빠는 두 형제를 엎드리게 하고는 냉장고에서 달걀 몇 개를 가져와서 빨갛게 부은 부위에 달걀을 굴려가며 마사지를 해주었어요. 달걀이 엉덩이 표면에 닿으면, 얼마나 쓰라린지 몰라요. 차갑기도 하고 쓰라리기도 하고 아주 복잡 미묘했어요.


달걀 마사지 덕분에 우리 두 형제는 아빠가 우리들을 미워서 체벌한 게 아니였구나를 깨달을 수 있었어요. 아빠의 사랑의 회초리 덕분에 고친 잘못된 행동도 꽤 많이 있었을 거예요.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아빠의 표정.




아빠의 스킨십은 슬픈 순간에도 이어졌어요.


군 입대를 하는데 아빠는 나를 말없이 안아주었습니다. 내가 울면 부모님이 더 슬퍼할까 끝끝내 울음을 참았어요. 아빠의 미세한 떨림이 포옹 가운데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미국으로 유학을 간 첫날도 어김없이 아빠의 포옹이 있었어요.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을 홀로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 홀로 떠나보내는 것이, 마치 군대 보내는 것만큼이나 걱정되고 염려될 거예요.


미국에서 학기를 마치고 방학 때 한국을 건너올 때면, 아빠는 만사 제쳐두고 인천공항에서 나를 맞이 해 주었어요. 나는 사실 모든 부모님이 똑같이 하는 줄 알았어요. 나중에 알보고니 이렇게까지 매번 자식을 위해 나오는 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어요.


특히, 군대에서 오랜만에 휴가를 나와서 아빠와 껴안는 포옹,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의 아빠와의 그 따뜻한 포옹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아빠와 자식 간의 스킨십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때로는 굉장히 어려운 영역이에요.


유대관계가 없는 상태에서의 스킨십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빠의 스킨십은 '사랑' 그 자체였어요. 인위적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우리들의 감정이 무시되지도 않았어요.


아빠와 나, 아빠의 강한 흡입력에 빨려 들어가는 중.



나도 이제는 아빠와 똑같은 아빠가 되어 두 자식을 키우고 있어요. 지금은 두 아들들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손도 잡고, 깨물기도 하고, 안고 뽀뽀하기도 하고 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 드는 거예요.


"이 녀석들이 나중에 중고등학생 되어도 아빠와 포옹을 해줄까?"


하고 괜한 걱정이 벌써부터 드는 거예요.



가장 가까운 관계이자, 사랑을 나누기 가장 좋은 관계인 부모, 자식 간의 스킨십은 하늘이 주신 선물 같아요. 이 선물을 잘 누리고 살아갈 때, 행복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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