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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나무 Oct 20. 2021

아빠는 큰형님

"친구들은 아빠를 큰형님으로 불렀어요"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아빠와 나의 관계는 유독 남달랐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아빠는 항상 이런 말을 나에게 해 주었어요.


"아들아, 부모와 자식 지간은 정말 막역한 사이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같이 삶을 살아가는 시간이 꽤 길단다. 그런 부모 자식 사이가 나쁘면 얼마나 삶이 괴롭겠니?"


"부모 자식 지간은 같이 성장하면서 이 아름다운 세상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실로 너무나도 많단다."



이처럼, 아빠는 항상 부모와 자식이 인생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어요. 


사실 자식과의 유대관계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은 아니잖아요. 진정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성장하는 모든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기쁜 일이 있을 때면 같이 기뻐해 주고, 슬픈 일이 있을 때면 같이 슬퍼해 주는 '동고동락'의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예전 나의 성장과정의 사진을 보면, 학교 졸업식, 운동회, 군대 등 아빠의 사진이 없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아빠는 그만큼 내 모든 성장과정에 관심을 갖고 직접 참여를 해 주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도 아빠에게 나의 현재 고민이나, 그 나이 때쯤 할 수 있는 고민들을 털어놓을 수 있었죠. 



부모 자식 간에 유대관계 및 공감대 형성이 되어 있지 않은데, 


"자, 지금 이 시간부로 우리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자"


라는 것이 성립이 되지 않겠죠. 


따라서,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오면, 아빠는 항상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주었어요. 어떤 친구는 아빠 요리를 한번 더 먹으려고 항상 기대하면서 오는 친구도 있을 정도였어요. 요리를 해주는 것도 모자라, 아빠는 우리들 눈높이에 맞춰 같이 대화를 이끌어 나갔어요. 친구들은 처음에 문화충격을 받는 정도의 충격을 받았어요. 


"주년아, 정말 친아빠 맞아?" 


라고 묻는 친구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보통 아빠와는 저렇게 친하게 지내지 않고, 우리 시대 아빠의 모습은 자식들과 같이 놀거나 대화하기보다는 바깥에서 사회생활을 하거나, 혼자 취미생활을 하기 바쁜 아빠의 모습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아빠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일 수도 있었을 거예요. 


고등학생이 되어 가끔 친구들을 초대하면, 아빠는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술을 한잔 권하기도 했어요. 


"너희들도 앞으로 사회생활하면서 약주를 하게 되는 날이 올 거야. 술 먹는 법은 어른들에게 배우는 게 좋고, 특히 자신의 주량을 알고 적당히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단다."


항상 아빠는 주도(道)에 대해 강조를 하였어요. 


"술을 어른들께 따를 때는 너무 잔을 세게 누르지 말고, 두 손으로 따라 드리되 천천히 따라드리는 게 좋단다." 




이런 아빠의 개방적인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아빠의 매력에 흠뻑 빠지거나, 아니면 엄청난 충격을 받거나 둘 중에 하나였어요.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 매력에 매료되어, 자주 우리 집을 찾았어요. 


나중에 회상해보니, 아무래도 친구들이 아빠에게 '한 인격체로써의 존중'을 받아서 아빠를 잘 따르고 좋아했던 것 같아요. 어떤 친구는 집에 가서 부모님께 아빠가 술을 한잔 권했다는 얘기를 했더니 친구 부모님은


"무슨 학생이 술이야? 공부나 열심히 해라!" 


라고 핀잔을 들었다며, 저에게 부럽다까지 했어요. 


 


학창 시절, 친구들 대부분은 아파트에 살거나 주택이라 할지라도 독립적인 여유공간이 없는 곳이 많았어요. 우리 집은 3층 단독주택으로, 맨 꼭대기에 올라가면 옥상이 있었고 옥상 정중앙에는 3~4평 남짓의 정자를 기점으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바비큐 장소와 갖가지 야채와 채소로 가득한 가든이 있었어요. 


친구들이 모여서 고기를 구워 먹고 놀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고 이윽고 곧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었어요. 


여기서 만난 친구들이 '옥상패밀리', 줄여서 '옥상팸'이 되었고 현재도 다들 결혼해서도 계모임을 통해서 옥상팸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아이들이 놀러 온다고 하면, 아빠는 한껏 신이 나서 주위 마트와 정육점에 들러 삼겹살, 목살, 항정살, 버섯 등 우리들이 넉넉히 먹고도 남을만한 엄청난 양의 고기와, 옥상 가든에서 갓 뜯은 싱싱한 무공해 상추, 배추, 고추, 깻잎, 부추, 파를 미리 다 솎아서 준비를 해놔요. 


생각해 보세요. 아들 친구들이 4~5명 정도 오는데 그 많은 고기며, 그 많은 음식 준비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일까요? 한두 번이면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자주 오면 사실 많이 귀찮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아빠는 전혀 귀찮은 기색이 없었어요. 오히려, 더 하나라도 친구들에게 좋은 음식과 환경을 대접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아이들이 옥상에서 모이는 날도 많아짐에 따라, 아빠와 친구들의 관계도 깊어져 갔어요. 




옥상팸이 옥상에 오면 항상 대접을 받았어요


친구들은 그런 아빠를 잘 따라주었어요. 같이 술도 마시고, 사는 얘기도 하고 그리고 아빠의 삶의 철학 얘기도 들려주었죠. 유대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아빠가 본인의 영웅담이나 살아온 얘기만 일방적으로 들려준다면, 그건 요새 말하는 '꼰대'가 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거니와, 더 이상 친구들이 찾아오지 않았을 거예요. 


옥상에서 아빠와 친구들이 술판이 벌어지면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주말에는 새벽 3-4시까지 줄곧 마시면서 즐기는 날도 많았거든요. 그런 아빠가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보다 친구들과 더 잘 지내는 것 같기도 해서 아빠를 질투하기도 했어요. 



그런 아빠를 친구들은 '큰 형님'으로 모셨어요. 친구들이 아빠를 보면


"큰형님, 오셨습니까?" 


하면서 90도 배꼽인사를 했어요. 장난이지만, 그 인사에는 많은 것이 함축이 되어 있었어요. 아빠는 4-5명 되는 옥상패밀리 친구들의 이름, 전공, 현재 고민, 성향, 성격 모든 것들을 꿰뚫고 있었어요. 


보통 아빠가 아들 친구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아는 것 자체가 우리 시대에는 어려운 일이었어요. 


옥상에서 친구들이 모이면 항상 아빠가 음식 준비를 했어요. 무조건 숯불로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항상 아빠가 고기를 구워주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힘든 일을 아빠가 항상 했던 거죠. 


옥상에서 식사와 술을 다 하고 나면, 아빠와 친구들은 노래방이나 볼링장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아빠는 노래방에서 분위기를 항상 주도했어요. 10대 후반, 20대 초반 친구들이 있는데 40대 중후반 아저씨가 계속 트로트만 부르면 과연 친구들이 좋아했을까요? 


아빠는 트로트를 부르지 않았어요. 아빠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최신가요나, 팝송을 주로 불렀어요. 댄스곡이 나오면 일어나 춤을 추었고 아이들도 큰형님의 율동에 맞춰 같이 즐겼어요. 


옥상팸과 아빠, 노래방을 주름잡다.


이때 친구들은 아마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나를 단순히 지나가는 한 인연으로 보는 게 아니고, 이 아저씨가 나와 함께 이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를 느꼈을 거예요. 



친구들과 아빠의 인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내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는, 친구들이 술을 사서 아빠와 옥상에서 술을 마시고 식사를 한적도 꽤 있었어요. 정작 해당 친구는 없는데, 친구 없이 친구 아버지와 식사와 술을 하며 그 시간을 즐기는 게... 글쎄요, 평범한 일은 아닐 거예요. 


옥상팸의 인연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어요. 다들 자식을 키우는 애아빠가 되었어요.


큰형님은 우리들의 정신적 지주였어요. 아주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성공한 사업가이자 삼남매를 키우는 가장이자 그리고 남자로서 아이들은 아빠를 진심으로 존경했어요. 아빠도 친구들을 편애하지 않고, 친자식처럼 대해 주었어요. 


옥상팸


지금은 내가 아들들을 키우고 있어요. 아들이 어느 날 친구를 데려 왔을 때, 과연 나는 아빠처럼 똑같이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어요. 사실, 많이 자신이 없네요. 


나와 내 자식 간의 관계를 마치 잘 빚은 도자기처럼 반죽부터 마지막 구어 내기까지 정성스럽게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참여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아빠가 나와 나의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던 무조건적인 사랑, 나는 아마 못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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