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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나무 Oct 07. 2021

아플 땐 항상 아빠의 약손이 그리워요.

크고 투박한 아빠의 손이 세상의 그 어떤 약보다 좋게 느껴질 때

아빠는 우리 삼남매를 키울 때, 특히 우리가 아프면 굉장히 세심하게 반응했어요. 


겉으로는 크게 당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리들이 아프면 얼마나 속상하고 심적으로 힘든지, 아빠의 행동을 보면 잘 알 수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장이 별로 안 좋았던 나는, 찬물이나 유우를 마시거나 조금만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바로 탈이 났어요. 아빠는 그런 나를 위해 여러 가지 비법을 전수해 주었어요. 


"아들, 돼지고기나 기름진 고기를 먹고, 찬물을 먹으면 안 된단다. 기름은 물과 섞이지 않는 성향이 있어. 주방에서 참기름과 물을 한번 섞어보렴. 어떻니?" 


"식사를 할 때는, 각 식자재들이 주는 에너지를 생각하면서 먹으면 더욱 건강에 좋단다. 생각해 보렴. 이 싱싱한 호박과 상추, 깻잎 등이 내 몸속에 영양분을 주기 위해, 그 뜨거운 여름에도 버티고, 모진 풍파를 모두 겪고 나서 우리 식탁으로 왔잖니. 이 친구들은 대단한 친구들이야. 이 친구들을 먹고 좋은 영양소를 받아 건강해지렴"


소화기능과 장에 탈이 많았던 나에게 아빠는 최대한 탈이 나지 않도록 많은 것을 배려해 주었어요. 그래서 우리 집에 생긴 철칙이 있는데, 고기 종류를 섭취할 때는 시원한 물이나 차가운 탄산음료를 먹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런 나를 위해 아빠, 엄마는 고기를 먹고 나서 항상 따뜻한 보리차를 끓여서 건네주었어요. 그 이후로 신기하게 탈이 나지 않더라고요. 


나는 아빠 약손으로 컸다. 



어렸을 때 비교적 허약 체질이었던 나는 감기를 달고 살았어요. 환절기가 오면 어김없이 감기에 걸려 몸져 누었어요. 한번 아프면 고열이 39도에 육박하고, 한번 아프고 나면 살이 쏙 빠질 정도로 크게 아팠어요. 감기에 걸리면 아빠는 평소보다 더 특별한 요리를 해 주었어요. 


"아들, 일어나서 한술 뜨렴. 감기는 별다른 것 없어. 감기약보다 좋은 게 밥이야. 아빠가 전복죽 끓여 왔으니 밥맛 없어도 억지로 좀 먹으렴"


전복죽을 보면 식당에서 파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갖은 야채며 싱싱한 전복이며 건강에 좋은 것은 몽땅 다 들어가 있었어요. 밥맛도 없거니와 힘들어서 더 자고 싶어도 아빠의 성의와 정성을 무시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 몇 술 뜨기 시작하면, 눈 깜짝할 새 죽 한 공기를 뚝딱 비우게 되었어요. 감기 몸살 걸린 환자가 입맛이 없을 텐데 한 공기를 뚝딱 떼울정도면, 그만큼 맛이 상당했다는 것이겠지요. 


가끔 배탈이 나서 누워 있거나 소화 불량으로 얼굴이 하얗게 뜨면, 아빠는 꼭 혈자리를 짚어 주었어요.


"주년아, 혼자 있을 때 배탈이 나면 여기를 꾹꾹 손으로 누르렴. 자, 아빠처럼 똑같이 따라서 해봐"


엄지와 검지 사이 움푹 파인 손등 부분을 투박한 아빠 손이 꾹꾹 누르면,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어요. 순간 아팠지만, 배탈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신기하게도 아빠의 지압은 웬만한 의사전문의의 그 어떤 약보다 효과가 빠르고 좋았어요. 사실, 가끔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 배탈이 나면 이런 식으로 혼자 손을 꾹꾹 누르는데, 그때마다 아빠와 나의 어린 시절이 떠 올라요. 



아빠는 내가 배탈이나 장염, 감기 몸살이 모두 다 치유될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해 주었어요. 어린 나이지만, 부모님이 내가 아플 때 어떤 정성과 관심을 기울이는지 모두 다 알잖아요. 고열이 나면 아빠는 새벽에도 주기적으로 깨서 이마에 손을 짚어보고 온도를 체크하였어요. 아마 그런 정성과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에 아파도 금방 회복될 수 있었고, 어린 마음에 


'가끔씩 아파서 환자로 누워 있는 것도 나쁘지 않군' 


이라고 까지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이제는 아빠 약손이 아들들에게 갔어요. 할아버지 약손이 됐어요.



고등학교 때 일이었어요.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일명 '야자')을 하는데 배가 너무 아픈 거예요. 원인 모를 고통이었어요. 혹시 몰라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몇 번 드나들었는데도 쉽사리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결국,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조퇴를 하였어요. 의료진이었던 엄마는 내 증상을 보자마자 심상치 않다면서 병원을 가자고 하였고, 시간이 늦어 응급실로 가게 되었어요. 큰 탈은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전반적으로 소화계통이 많이 약해졌던 모양이에요. 적절한 치료와 조치를 받을 때쯤 아빠가 응급실에 도착했어요. 


엄마의 전화를 받고, 퇴근길에 서둘러서 부랴부랴 온 것 같아요. 아빠는 바로 나의 상태를 묻고는 안도했어요. 그런데 그때, 멀리서 피를 흘리고 쓰러져가는 환자가 이송이 됐어요. 응급실에는 다양한 환자들이 많이 모이잖아요. 너무 큰 비명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있는 환자가 있었던 거예요. 이때 아빠는 내 눈을 가려주었어요. 다 큰 고등학생 성인인데도 아빠는 내가 그런 무서운 장면을 보지를 않길 원했던 거예요. 나는 아직도 아빠가 내 눈을 가린 것에 대해 그 명확한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어요.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느낄 수 있었어요.


'내가 아무리 커도 아빠에게는 한낱 아기에 불과하구나'


김가네 삼부자




아빠의 손은 무쇠 손이에요. 뼈마디도 굵고 손 자체가 굉장히 두툼하고 투박하죠. 그런 손으로 우리 삼남매를 모두 키웠어요. 겉으로 볼 때는 크고 무서운 손이지만, 내가 아플 때는 그 손이 매우 용한 약손으로 바뀌었어요. 그런 온기 있는 아빠 손이 가끔 그리워요. 지금은 내가 가장이 되어 아이들을 직접 케어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어요. 이제는 아파도 아플 여유가 없어요. 


가끔 아이들이 아플 때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어요. 아직 아이들이 크게 탈이 나서 아빠의 약손을 보여준 적은 없지만, 혹여나 아이들이 탈이 나면 나도 아빠가 나에게 그러했듯, 내 투박한 손으로 '약손의 맛'을 보여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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