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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의 학생,자녀가 느린 학습자라면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

자녀, 혹은 학급의 학생이 또래들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느껴진다면

우리 반의 한 학생을 보며 줄곧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입학식 날 그 친구의 어머니께선 아이가 발음이 부정확하여 언어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알려주셨다. 처음에는 발음이 다소 어눌하고 말하는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닌 것 같았다. 또래들에 비해 글씨도 매우 삐뚤빼뚤하게 썼고 발표를 시키면 동문서답을 했다. 특히 그리기와 만들기에서 또래들과 무척 차이가 났다. 3월 학부모 상담을 앞두고 아이의 어머니께 이 사실을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했다. 어린아이들일수록 몇 개월 차이에 따라 발달의 차이가 많이 나기도 하고, 아이의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이유로 내가 선입견을 갖고 아이를 관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머니와 상담을 하는 동안 돌리고 돌려 아이의 상태에 대해 말씀을 드렸으나 어머니께서는 아이가 언어가 느린 것 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또한 아이의 상태를 정확히 모르고 계신 듯했다. 차라리 어머니께서 아이의 상태를 인지하시고 나에게 도움을 구하셨거나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길 원하셨다면 아이의 상태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학교에서 잘하는 줄로만 아시는 어머님께 아이의 상태를 말씀드리기가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어머님께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셨으니 “선생님, 사실 이건 선생님께만 말씀드리는 비밀인데요. 저희 00 이가 아직 밤에 기저귀를 못 뗐어요.” 하시며 웃으시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나는 그 말씀에 아이에게 확실히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확신했다. 용기 내서 어머님께 아이의 상황을 말씀드렸고 검사를 받아보심이 어떨지 매우 조심스레 제안드렸다. 역시나 어머니의 얼굴을 화끈 달아올랐고 당황해하셨다. 어머님께서는 충격을 받으신 나머지 나에게 인사도 잊은 채 교실을 나가셨다.



경계선 지능의 아이들

그날 저녁 어머니로부터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아까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못 드리고 나와 죄송하다고, 아버님과 상의 끝에 검사를 받아보기로 결정하셨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어머니께서 아이를 통해 이 책을 보내주셨다. 아이의 검사 결과지와 함께였다. 경계선 지능.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다. 학교에는 다양한 수준의 아이들이 있다. 우리 반에만 해도 다문화 가정의 어려운 상황의 아이가 둘, 한 부모 가정 탈북 아이가 한 명 있다. 이 친구들은 가정 형편이 어렵다 보니 정상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습에 어려움을 보이고 또래와 많은 수준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학습 외의 다른 분야, 예를 들면 미술, 체육, 사회성, 언어 등에서는 큰 어려움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 학생들은 학습 지도를 통해 그 수준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이런 학생들은 학습부진이라고 지칭한다 한다. 하지만 경계선 지능의 경우는 학습은 물론, 가위질, 풀칠, 글씨 쓰기, 그리기 등 간단한 조작 능력도 미숙하고 사회성도 매우 부족하다. 부정확한 발음, 부족한 어휘, 언어 발달이 늦는 것도 경계선 지능의 특징이었다. 00 이는 특히 소위 말하는 눈치가 매우 없는 편이었는데 이 또한 경계선 지능의 특징인 사회성 저하의 결과였다. 즉, 경계선 지능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낮은 발달 수준을 보이지만 그렇다고 지적장애 아이들만큼 심각한 수준의 저하를 보이는 것은 아니어서 학교에서는 특수 학급에서 생활하지 않고 일반 학습에 속해있다.



경계선 지능에 대한 이해가 필수

경계선 지능의 아이들은 위에서도 언급했듯 모든 영역에서 낮은 수준의 능력을 보이지만 그렇다고 일반학급에서 생활을 못할 정도도 아니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하지도 않다. 특수학급에 가기에는 특수학급의 수준이 너무 낮고 그렇다고 일반학급에 있자니 그것도 석연찮다. 따라서 교사 및 부모는 아이들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들의 특성을 이해하면 아이들의 태도에 화내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으며 적절한 지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경계선 아이들의 특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니 우리 학급의 다른 아이들도 혹시 경계선 지능이 아닐까 의심이 되었다. 학기 초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잘 관찰하여 조기에 아이들의 상태를 진단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도 방안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교사와 부모가 아이를 위해 지도할 수 있는 활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는 것이다. 인지 능력, 신체 활동, 독서 활동, 미술 활동, 사회성 지도로 나누어 각각의 영역을 향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10년간 직접 아이들과 만나며 체득한 결과이니 신뢰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인지 능력 향상 프로그램: 자르기, 도형 모방하여 그리기, 같은 모양 찾기, 빠르게 찾아내기, 사물들 간의 유사점과 차이점 찾기, 변화의 규칙 이해하기, 대응관계 이해를 통한 추리 능력 기르기, 순행 기억과 역행 기억 등


언어 능력 향상 프로그램: 어휘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기, 주어진 낱말을 보고 그 낱말을 근거로 생각나는 다양한 낱말 떠올려보기 (어휘 확장) 등


교사인 나에게 가장 유익했던 부분은 독서 능력 향상 프로그램 부분이었다. 어떤 책이 좋은지 책 목록도 92권이나 있고 각각의 책에 맞는 독후활동이 소개되어 있어 바로 적용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는 경계선 지능 아이들 지도에 국한된다기보다 학급 전체를 대상으로 독서 활동을 할 때에도 유익할 것이다. 경계선 아이를 지도하는 일은 쉬운 일만은 아니다. 학급에 서른 명 가까이 되는 학생이 있고 그들을 지도하면서 학습 속도가 느린 학생을 함께 지도한다는 것은 때로는 엄청난 인내심을 요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면서도 가끔은 아이의 눈치 없는 행동에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관심과 애정이다. 관심과 애정을 갖되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도해야 한다고 한다. 훈육 시에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자존감을 지켜주면서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는지 방법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지도하지 말고 따로 불러서 지도하기, 집단으로 지도하기보다 1:1로 지도하기, 한 번에 한 가지 행동에 초점을 두어 지도하기, 답변이 느려도 격려하며 기다리기 등



쉽지 않은 일,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유능한 교사인지의 여부는 부진아를 지도하는 방법에서 드러난다고 한다. 서른 명의 아이를 교사 한 명이 상대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학급에 학습 속도가 늦는 아이들이 있으면 그 힘듦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원해서 현재의 상황에 놓인 아이들은 없다. 교사라면 그들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것을 알려주려 하기보다 그들의 입장에서 기다려주고 하나라도 친절하게, 그리고 한 문제라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쁨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친절하게 아이들을 이끌다 보면 아이들은 반드시 성장할 것이다. 부진아가 없는 학급은 없다. 경계선 지능의 아이를 둔 교사뿐 아니라 모든 교사가 한 번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우리 반 학생들에게 교사로서 부족했던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낀다. 남은 시간만이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아이들을 배려하고 기다려주고 성장을 응원하고 열심히 보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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