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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진짜 열심히 안 살 뻔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인스타에는 온갖 행복을 인증하는 게시물이 가득하다. 고급 음식점, 뷰가 끝내주는 호텔, 아름다운 여행지, 눈이 돌아갈 정도로 예쁜 명품 등. 사진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러한 게시물들을 올리는 사람이 부럽고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인스타가 보여주는 행복에 길들여졌다. 


사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낄 땐 일하고 피곤에 절어 집에 왔다가도 아기가 '엄마'하고 소리 지르며 현관으로 달려오면 피로가 싹 달아나는 것을 느낄 때, 남편과 거실에 나란히 앉아 아기의 재롱을 지켜보며 박수칠 때, 아기를 재우고 신랑과 배달 음식을 시켜먹으며 하루를 공유할 때이다. '그래, 이런 거면 충분하지.'내 삶에 감사함을 느낀다. 


왜 인스타를 끊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인스타를 보면 내 생활에 감사함과 즐거움을 느꼈던 것도 잠시, 다시 초라함을 느끼거나 기분이 우울해지곤 한다. 지인이 올린 인스타 게시물 하나로 자상하고 착한 내 남편이 기념일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 나쁜 놈이 되기도 하고, 적당한 수입을 버는 남편의 직업은 돈을 무진장 못 버는 무능한 직업이 되기도 한다. 


나는 내가 부럽게 바라보던 인스타 속 행복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명품을 무리하게 사들이고 아기를 대동해서 외출을 하면서도 옷을 차려 입고 비싼 가방을 들고나갔다. 아기와 다닐 땐 편하게 다니는 게 최고임을 알면서도 한 껏 꾸몄고 꼭 비싼 곳을 골라 다녔다. 아기가 울든 말든 마음에 나오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남편을 닦달해서 사진을 찍었다. 그 과정이 남편은 한없이 짜증 났겠으나 나는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과정에서 내 기분은 들떴고 행복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예쁘고 비싼 옷과 가방, 비싸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그리고 내 실물과는 딴 판인 보정이 팍팍 들어간 예쁜 사진까지. 하지만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인스타의 좋아요 개수에 따라 내 감정은 곤두박질쳤다. 에르메스가 아니어서 그런 건가? 시그니엘에서 음식을 먹어야 하는 건가? 나는 점점 나에게서 부족한 것을 찾기 시작했고 내 형편으론 크나큰 무리를 해야 함을 알고  좌절했다. 


어디 인스타뿐이겠는가. 내 삶이 그랬다. 어릴 땐 이만큼 공부해서 이만큼 대학에 갔으면 나름 잘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도 인턴을 하면서 만난 SKY생을 만났을 땐 마음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나도 나름 봐줄 만하지 않나 생각했다가도 예쁘고 늘씬한 사람을 보면 주눅이 들어 마음이 또 힘들어졌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직업인 것 같은데 했다가도 같은 직업에서 더 많은 성공을 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부러웠고 조바심이 났다. 이렇게 내 인생은 누군가를 쫓아가기에 바빴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서 무언가를 일구어도 언제나 나를 좌절시키는 것들이 있었다.


젊음이 아름답다 했던가. 과거는 미화된다 했던가. 나는 자부하건대 하루하루를 허투루 살지 않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잠들기 전까지 나만을 위해, 내가 쉬기 위해 쓰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게 된 것도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물론 그 덕에 이룬 것도 많았으니 나의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나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그 노력들을 아름답게 느껴야 하는 것이 맞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왜 나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한 없이 힘들다고만 느껴지는 걸까. 왜 내가 공들여 이룬 것들이 보잘것 없이 느껴지는 걸까.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고 삶이 너무도 힘들게만 느껴졌다. 결국 나를 괴롭히는 것들은 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음에서 오는 것들이었다. 나에게 집중하고 내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언제나 주위와 비교하고 나에게 없는 것들을 찾고 쫓아갔으니 삶이 버거운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삶이 버거우니 다 때려치우고 놀아도 되는 걸까. 아니,  나는 인생은 무조건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 대충 살아도 상관없다면야 하고 싶은 대로 막살아도 상관이 없겠지만 행복해지고 싶다면 열심히 살아야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이루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것들로 행복이 전부 채워진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실현되어야 우리는 우리 삶에 만족할 수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반드시 노력이 따른다.


열심히 살았을 때 어떤 것들은 바로 보상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내가 살아본 바 노력에 대한 보상은 언젠가 어떤 식으로 반드시 온다. 또한 노력으로 일군 성취는 나에게 앞으로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는 큰 힘이 된다. 그렇게 내 인생은 점점 성장하고 만족스러운 삶이 된다.


문제는 우리들이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우리들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교하는 순간 내가 해온 것은 모자란 것이 되고 또다시 누군가를 쫒아가야 한다. 내가 열심히 했다면 그런 나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마땅히 휴식을 취하고 내 스스로가 나의 성취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두어야 한다. 하루 종일, 몇 날 며칠, 어쩌면 몇  달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거려도 괜찮다. 그래도 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으니까.


나 역시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행복을 찾아나가는 중이고 내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래, 한 번뿐인 인생이다. 누가 어떻든 내가 열심히 살았고 내가 즐겁고 내가 행복했다면 그걸로 됐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쓴 작가에게 축하를 건넨다. 그렇게 열심히 살더니 결국 이렇게 에세이가 대박이 나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는가. 이것만 봐도 노력은 어떤 식으로든 결실을 맺는다니까.


그래서 책 제목은 수정을 좀 해야겠다. '거봐, 열심히 살길 잘했지' 정도가 좋지 않을까. 


단, 열심히 살더라도 쉴 땐 확실히 쉬고 한 없이 나태해지자. 사실 작가는 그래서 이런 제목을 정한 것일 거다. 열심히 하되 쉴 땐 쉬고 즐기자고. 너무 죽기 살기로 열심히만 하지 말자고. 나를 좌절시키는 누군가를 쫒아가며 평생의 에너지를 허비하지 말자고.


하마터면 책 제목에 속아 진짜 열심히 안 살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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