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손

세상을 보듬는 손

by 팽나무

수녀님에게 사고가 일어난 건 일주일 전이다. 아침에 출근했더니 점주가 흥분한 목소리로 사고 소식을 전해주었다. 전날 가게에 불고기를 주러 왔던 수녀님은 문을 나서다가 길바닥에 쓰러졌단다. 전동 킥보드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이 수녀님을 미처 못 보고 부닥친 것이었다.

둔탁한 소리에 놀란 점주가 나갔을 때 수녀님은 보도블록에 쓰러져 있고 가해자는 어쩔 줄 모른 채 옆에 서 있었던 모양이다. 점주는 119에 신고하고 수녀님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고 했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어 잘못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았단다. 그래서 쪼그려 앉은 자세로 수녀님의 머리를 받쳤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 그런 자세로 있는 동안 수녀님은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수녀님과 동행했던 할머니 한 분이 대성통곡을 하는 바람에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빨리 신고를 하라며 재촉하기도 하고 뇌를 다친 것 같다고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사고를 낸 당사자는 고등학생이었다. 점주는 그에게 부모님께 연락하라 하고는 수녀님의 보호자로 병원 응급실까지 따라갔다. 그 후 수녀 전문병원으로 옮긴 뒤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게 점주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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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식을 듣는 내내 나는 수녀님의 손을 생각하고 있었다. 전날 내 손을 잡아주던 그 따뜻하고 거친 손, 그 손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인자하고 웃음 가득하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누군가의 배고픔을 덜어주고 외로움을 달래주고 희망이 되어주었을 손, 그 손의 온기가 살아났다.

사실, 사고 당일 나는 수녀님을 뵈었다. 전화를 받고 급히 내려갔더니 수녀님은 아파트 경비실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불고기를 만들었는데 빨리 가져다주고 싶어서 왔노라 했다. 매번 그렇지만 뭉클해서 말을 못 하고 서 있자 손을 꼭 잡아주고 수녀님은 떠나셨다. 그렇게 곧바로 가게로 향했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 집에 안 왔더라면 좀 더 빨리 가게에 갔을 테고, 그랬더라면 킥보드 탄 고등학생과 부딪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점주는 수녀님의 차 트렁크 안에 고기 봉지가 여러 개 있더라고 했다. 늦은 시간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챙기려고 바쁘게 다녔을 그 발걸음이 눈에 선했다. 다음날 전해 들으니 수녀님은 통화가 안 되는 상태고 면회를 거부한다고 했다. 면회 올 사람들의 번거로움을 먼저 생각하는 수녀님 다운 선택이었다.

삼일 뒤 전화를 했더니 수녀님이 받으셨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타박상이 심할 뿐 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때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로 봐서 머리에 충격을 받은 건 분명했다. 점주는 기적이라고 했다. 그날 수녀님을 직접 목격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학생과 부딪혀 쓰러지는 장면이 담긴 CCTV를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사고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수녀님을 알게 된 건 삼 년이 조금 넘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는 판매하고 남은 빵을 기부하고 있는데 수녀님이 그 일을 맡고 계셨다. 독거노인들이나 청소년 가장, 또는 한 부모 가정 등 형편이 어려운 이들의 생활을 돕는 게 수녀님의 일이라 했다. 비단 빵뿐만이 아니라 반찬이며 먹을 것을 직접 만들어 한 분 한 분께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수녀님이 타고 다니는 경차 뒷좌석에는 기부받은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있었다.

수녀님은 바빴다. 먹을 걸 가져다주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병원에 모시고 말동무도 해드리다 보면 늘 시간에 쫓긴다고 했다. 할머니들은 가끔 병원비까지 수녀님께 부담시키는 바람에 주머니도 더러 여는 듯했다. 그런 수녀님이 나까지 챙기려고 했을 때 나는 극구 사양했다. 불우이웃이 된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누군가가 도와주려는 데에 자존심이 살짝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녀님의 마음이 그게 아니라는 걸 안 뒤에는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그날 수녀님은 내게 장조림을 가져다주었는데 금방 만든 듯 뜨끈뜨끈했다. 괜찮다고 한사코 사양하는 내게 수녀님은 말했다. 그동안 유심히 지켜보았다며 온종일 서서 일하는 게 힘들어 보였다고 했다. 동정이 아니라 마음이 가서 그러니 개의치 말라며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다.

그때 수녀님의 손을 보았다. 거칠고 투박했다. 하지만 어머니 손처럼 따뜻했다. 그 손이 수녀님의 진심을 말해주었다.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먹을거리를 받았다. 그 뒤 수녀님은 내게 모닥불 같은 분이 되었다. 가게 점주가 제때 밥을 못 먹고 일한다는 걸 알고 난 뒤 수녀님은 가게에도 반찬을 가져다주었다.

사고가 난 날도 늦게까지 세상의 낮은 곳만 살피다가 수녀님은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 콘크리트 바닥은 사람의 삶을 끝내버릴 수도 있는 곳이다. 차갑고 무자비한 바닥은 부드러운 것을 품어주지 않는다. 깨고 박살 내버린다. 사람의 머리인들 온전할까. 그런 바닥에 부딪쳤지만 수녀님은 일주일 만에 환한 얼굴로 다시 돌아왔다.

바닥과 수녀님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한 어떤 기운, 그게 무엇이었을까. 수녀님의 손에서 전해진 온기가 세상의 바닥에 흐르고 있음을 나는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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