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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Erika Mar 17. 2023

첫 이직 오퍼를 받다

대한민국 문과생, 캐나다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6>


북미의 헤드헌팅 산업은 그 규모가 가히 어마어마해서, 리쿠르터들이 이직을 원하는 사람과 회사를 연결시켜 주는 일이 매우 흔하다. 연차가 쌓일 때마다 적절하게 레주메(Resume: 이력서)와 링크드인(Linkedin) 프로필을 업데이트해 두면 메시지와 이메일 등으로 수시로 연락이 온다. 특히 한 회사에서 좀 오래 있는 것 같다 싶으면(?) 특히 더 반갑게^^; 손을 내밀 것이다. 너무 작은 회사들은 고용 절차를 헤드헌터들에게 맡길 예산이 없고 또 굳이 맡길 필요도 없기 때문에, 보통 리쿠르터들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와 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점을 생각하면 전부는 아니지만 리쿠르터가 제안하는 회사들로 소위 말하는 '좋소' 기업들을 1차로 걸러낼 수도 있다. (물론 완전 보장은 아니다)


하지만 헤드헌터를 끼지 않는 좋은 회사들도 많다. 그러니 리쿠르터들에게 모든 걸 맡기는 건 스스로 다양한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위험한 일이다. 내가 갈 곳인데 당연히 나도 부지런히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리쿠르터는 중간에서 회사와 구직자를 좀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지, 어차피 어느 경로든 회사와 직접 인터뷰를 하고 나를 설득하는 건 본인의 몫이다. 기회는 생각보다 정말 많은 곳에 있다. 예를 들어 관련 업종 관계자들이 모여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포럼에도 구인/구직은 생각보다 활발하게 이뤄진다. 실제로 나도 이런 경로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연락이 오는 수많은 리쿠르터들과 이야기하는 동시에 다양한 회사 담당자들과도 직접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시작할 땐 구인/구직이 주제가 아니었는데 대화 끝에 "너 우리 회사에서 일해보지 않을래?" 하는 제안을 받는 일도 더러 있었다. 그저 비즈니스적으로 고용주와 구직자의 개념으로 기업에 접근하기보다는, 같은 필드의 동료, 선배로써 다가가자. 이곳의 네트워킹 문화가 말해주는 것은, 결국 "구직"과 "사교"의 경계가 없다는 뜻이다.  





커리어 전문가들은 모름지기 직장인은 매일 이직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직을 실제로 실천에 옮기지 않더라도 이력서는 늘 최신으로 업데이트하고 항상 나를 스토리텔링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백번 맞는 말이라 공감하지만, 막상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 실천하기는 참 어렵다. 고되고 스트레스받는 직장에서 퇴근하면 일에 관한 생각은 요만큼도 하기 싫은 것이 보통의 직장인이다. 현실적으로 은퇴는 불가능하니 이직이라도 하자고 겨우 큰 맘을 먹었지만, 막상 몇 년간 볼 일 없었던 케케묵은 이력서를 꺼내 들고 보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한숨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당신은 훌륭하다. 첫째로는 육체/정신의 피로함과 게으름을 이기고 이직이라는 변화를 결심했다는 점에서, 둘째로는 이력서가 오래되어 고칠 것이 많다는 건 그만큼 업데이트할만한 경력이 많이 축적되었다는 뜻이란 점에서 그렇다.


컴퓨터에 저장된 이력서를 열어보니 마지막 수정 날짜가 3년도 더 전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다. 템플릿부터 깡그리 갈아엎고 현재 내 직무를 중심으로 수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현재 무슨 일을 어떻게, 얼마나 하고 있는지를 간결하고도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워딩(단어)이 기억나지 않으면, 내가 지원하려고 하는 포지션의 잡 포스팅들을 찾아봤다. 내 포지션이 요구하는 업무와 스킬을 표현한 단어와 문장들을 가장 내게 맞는 것으로 다시 다듬었다. 3년 전 이력서이다 보니 5년도 지난 경력/경험도 적혀있었는데, 모두 지우고 총 2페이지를 넘지 않는 이력서를 다시 꾸렸다.


나는 지금도 당장 이직을 원하지 않더라도 틈틈이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어가서 내가 앞으로 원하는 잡 포스팅들을 늘 읽는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업무가 내가 하려는 포지션에 적합한 일인지 중간중간 점검할 수 있고, 앞으로 어떤 업무/스킬을 더 많이 하고 익혀야 하는지도 참고하기 위해서다. 현 업계의 흐름을 파악하는데도 매우 도움이 된다. 근래에 유독 잡 포스팅이 많다면 해당 산업이 호황이라든지, 사람이 부족한 시즌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대화를 시작한 회사는 평소 우리 회사와 협업할 일이 잦았던 한 대형 로펌이었다. 로펌 특성상, 동종 업계 타 회사, 즉 다른 로펌과 항상 만나게 되는데, 대게는 우리 클라이언트의 상대방이 고용한 변호사가 소속된 로펌이다. 상대방 로펌이니 사이가 안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각자 본인의 클라이언트 입장을 대변하고 일할 뿐이지,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그곳의 많은 직원들과 소통하고 일한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꽤 친숙한 담당자들이 많았다. 간혹 우리 쪽이 했던 실수들이 생각나 괜히 민망했는데, 그래도 내부에선 나를 긍정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편하게 비즈니스 이야기나 해 볼 요량으로 시작한 대화가 몇 주간 점점 스카웃 분위기로 흐르더니, 수차례의 다양한 담당자들과의 대화 끝에 나는 입사를 제안받았다.


당시 내 연봉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숫자와 베네핏 패키지(복지제도)가 기술된 오퍼를 막상 받아 드니, 얼떨떨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이 업계 시장에서 먹힌다(?)는 것을! 여태 죽어라 일만 해오며 내가 시장에선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가늠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내 가치를 처음으로 확인받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깨달았다. 그동안의 내 직장생활은 단순히 우리 회사만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진심을 다했던 순간들이 후에 미처 생각지 못한 기회를 가져다준 것이다.


나는 오퍼를 곧장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시간을 오래 끌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벅찬 마음을 가다듬고 리쿠르터/회사들로부터 와있던 면접 제의 이메일과 메시지들을 다시 열었다. 잡 포스팅들도 찾아 읽었다. 내게 가장 적합해 보이는 조건들을 추려 이메일과 메시지를 보냈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인터뷰를 스케줄 하기 위한 연락들이 다시 쏟아졌다. 하나하나 약속을 잡고, 플래너에 채워 넣었다. 근무 중엔 시간이 없으니 대부분 출근 전 이른 아침 시간을 이용해야 했다. 다행히 당시 회사는 10시 출근이라, 대부분 8-9시 사이에 스케줄링을 할 수 있었다.


한편 회사에서는 대표와 개인 면담 때 참조할 개인별 업무 현황 자료를 각자에게 배부하고 있었다. 지쳐있는 직원들의 불만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회사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나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면담을 통해 모색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면담이 있기 며칠 전, 매니저는 갑작스럽게 나를 따로 불러내더니 회사 미팅룸이 아닌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 앉혔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말을 듣게 된다.


"직원들을 선동하고 다니지 말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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