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에리카 Erika
Feb 28. 2023
"먹고" 사는 이야기
북미의 직장 점심식사 문화
한국의 직장 문화중 늘 부러운 것 중 하나는 점심을 제공하거나 식대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많다는 것과, 맛있고 저렴한 점심 옵션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도 물가가 올라 이제 저렴한 점심이 없다고는 하지만 텍스와 팁이 따로 없는 것만으로 여전히 부럽다).
이곳에도 카페테리아 (구내식당)가 있는 회사들은 있지만 직원에게 저렴하게 혹은 무료로 매일 음식을 제공하는 곳은 매우 드물고, 출장을 제외하고는 식비를 따로 지급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특정한 날(ex. 매달 셋째 주 금요일, 크리스마스/새해 기념 등)에 회사에서 다 같이 피자를 시켜 먹는다던가, 아침에 간단한 베이글을 제공한다던가 하는 날이 가끔 있긴 하지만 평소엔 점심 도시락과 간식을 본인이 알아서 준비해 오거나 회사 주변에서 사비로 사 먹는 문화가 지배적이다. 대부분 점심은 간단하게 해결하고 집에 가서 가족들이랑 제대로 된 저녁을 먹는 분위기다.
생각해 보면 한국은 일찌감치 학교에서부터 "급식"이라는 제도를 도입했고 이제는 그마저도 전부 무료(!)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여전히 각자 집에서 점심 도시락을 싸 다닌다. 왜 급식 문화가 이곳에는 쉽게 들어올 수 없는가 추측하건대 아마 워낙에 개인마다 가진 알러지가 다양하고 많은데다 종교 등의 이유로 지향하는 식습관도 달라서 아주 대기업이 아니고서야 비용면에서 그만큼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기 힘들고, 그렇다 보니 섣불리 단체를 위한 음식을 준비했다가 따라올지도 모를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내 경우,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면 사 먹지 않는다. 사 먹으러 나가는 게 귀찮기도 하고, 이 물가 비싼 나라에서 아무 생각 없이 점심을 사 먹는 버릇을 들였다간 한 달 점심 값으로만 몇 백 달러가 들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간단하게 사각형 컨테이너 하나에 도시락을 준비하는데, 대충 휘리릭 만든 샌드위치나 파스타, 리소토, 덮밥, 볶음밥, 샐러드가 제일 만만하고 이마저도 정말 귀찮을 땐 미리 고구마랑 달걀을 삶아 뒀다가 가져가기도 한다. 플레인 빵 몇 조각과 치즈, 쨈을 가져가는 날도 많다. 김치는 향이 강해 집에서만 먹고 도시락 재료엔 넣지 않는다.
성인이 된 후로 한국과 미/캐나다에서 혼자 살며 음식을 후딱 만들어내는 건 익숙해진 데다 요리도 좋아하기 때문에 점심 준비 자체가 크게 어렵지는 않지만, 매우 귀찮은 건 어쩔 수 없어서 한 번 만들 때 며칠 분씩 준비해두기도 한다. 직장 동료는 유튜브에 밀프렙 (Meal Prep: 수일 치 (보통 일주일) 도시락을 한 번에 준비해두는 것) 동영상을 참고한단다. 북미에선 어릴 때부터 본인 점심과 스낵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자연스럽고 무엇이든 동료들과 나누어먹으려고 하는 한국 문화와는 차이가 있다. 나 역시 도시락 이외에 과일, 크래커, 그래놀라바, 초콜릿, 머핀, 칩스 등 보통 코스코에서 벌크로 사뒀다가 소분해서 가지고 다니고 있다. 회사에서 간단한 스낵 정도는 제공되는 경우도 있다.
회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북미 회사는 한국처럼 정해진 점심시간이 없다. 한국은 9-6시를 회사에서 머물고 그 중 1시간은 점심시간이기 때문에 8시간을 근무하는 것이라는 개념이 일반적이라면, 이곳은 9-5시를 회사에서 머물고 그 중 30분-1시간은 점심시간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는 9-5시 중 원하는 때 1시간을 알아서 점심시간으로 가지므로 실 근무 시간은 하루 7시간이다. 풀타임(Full-time) 근무가 주 35~40시간으로 회사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는 이유다. (사실 그렇다고 해도 직원들이 점심시간을 얼마나 갖는지 회사에서 재는 것도 아니고 시급제가 아닌 연봉제일 경우 출퇴근 시간에도 차이가 없지만, 연봉제의 경우 풀타임을 짧게 규정하는 곳일수록 더 이득이긴 하다. 오버타임 등 추가 수당이 생길 경우엔 시급으로 계산해서 정산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요즘은 도시락을 많이 가지고 다닌다고 하는데, 한국처럼 맛있는 먹거리가 많으면 사 먹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기란 참 힘들 것 같다. 역시 제일 부러운 건 편의점이다. 한국 편의점엔 도시락도 어쩜 그리 맛있게 잘 나오고 다른 음식이며 간식들도 훌륭한지! 한국에서 늘 그리운 건 근사한 레스토랑의 화려한 음식들이 아닌, 편의점이나 분식집, 동네 백반집 같은 푸근한 식당이다.
아쉬운 대로 오늘 저녁엔 아시안 마켓에서 산 된장으로 끓여낸 된장찌개라도 차려야겠다. 한참 전에 먹어치운 김치가 못내 아쉽다. 기억하자, 한국인의 밥상은 밥이 아니고 보약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