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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Erika Mar 08. 2023

재택근무, 뭣이 중헌디?

직장 근무제는 얼마나 중요할까


일주일에 1-2회 정도는 재택근무(Work From Home)를 해오고 있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에 큰 거부감은 없지만, 원격근무를 하면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고 출근 준비와 통근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게 가장 좋다. 우리 회사는 직원 대부분이 원격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반반 섞은 하이브리드 형태로 일한다. 담당 매니저에게 원격근무를 하겠다고 당일 근무 시작 전까지만 간단하게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사무실에 자리를 비워도 필요하면 사내 메신저나 이메일로 언제든 연락이 가능하고, 혹 누군가 내 자리로 전화를 걸면 자동으로 내 개인 전화로 포워딩되도록 설정을 해 두거나 메시지를 남기도록 세팅해 두니 전화 때문에 문제가 생길 일도 없다.


이곳으로 이직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재택근무를 해야 할 상황이 생기자 우리 부서 매니저인 코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이유를 최대한 설명하려고 했다. 이직 전의 회사에서는 재택근무가 거의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건강상의 이유라 어디까지 설명을 해야 하나 좀 머뭇거렸는데, 그녀는 매우 쿨하고 다정하게 그런 나를 멈추며 말했다.


"에리카, 괜찮아. 설명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네가 괜찮은 게 중요해."


금발 머리 백인 코니의 푸른 눈이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하던 그 순간은 이상하리만큼 나를 차분하고 편안하게 해 주었다. 다른 팀원이 사정이 생겨 몇 주간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고 전할 때도 "우리는 너의 삶(life)이 가장 편안한 쪽으로 도울 거란걸 잊지 마."라고 했을 뿐이다. 그녀는 먼저 말하지 않으면 굳이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건 무관심이 아닌 팀원에 대한 신뢰와 배려에서 나오는 태도였다. 그녀는 우리 회사에서만 일한 지 22년이 넘은 직원이었다.


그런데 비단 코니뿐만이 아니다. 우리 회사는 다들 서로 어디서 일하는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저 회사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고 그동안의 안부를 전할 뿐이다.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들과 파트너 변호사들조차도 사무실이 비어있기 일쑤다. 하지만 근무 시간에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는 없고, 또 필요하다면 일주일 내내 오피스로 출근한다. 필요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일 할 뿐이다.


우리 회사가 이런 형태로 운영이 되는 이유는 직원들의 복지를 생각하는 더 좋은 회사라서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코비드로 새롭게 생겨난 근무제도를 반 강제로 지속하다 보니, 이젠 더 이상 매일 사무실로 출근해야 하는 이유를 조직원에게 설득시키지 못했을 뿐이다. 결정적으로 회사의 성장과 근무제의 연관성을 찾지 못한 것이다.


오피스로의 출근이 월등히 높은 효율을 자랑하는 직무도 분명 있을 것이고, 근무 형태가 업무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 또한 직종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업계에서도 나의 현 회사와 전 회사가 재택근무를 매우 다르게 취급하는 것을 보면, 근무제에 관한 지침은 회사의 가치관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모양새다.


맞고 틀린 형태란 없겠지만 마냥 어떤 한쪽을 금지해 버리기에는 시대의 변화 속도가 무섭다. 코비드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년 이상 지속되면서 근무기간 동안 오피스 출근보다 재택근무를 한 날이 더 많은 직원들도 있다. 그렇다면, 변화한 시대에 생겨난 다양한 근무 형태가 부작용 없이 잘 자리 잡도록 방법을 찾는 것이 현시대 조직 운영진들의 숙제가 아닐까?


꼭 매일 얼굴을 봐야만, 옆에 있어야만 본인의 일을 본인의 식대로 처리하기가 편하다는 이유로 재택근무를 부정적으로 평하던 한국분과 일한 적이 있었다. 평소 클릭 한 번만 하면 누구보다 자세히 알 수 있는 일도 꼭 사사건건 옆 사람에게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물어보느니 본인이 찾아보면 빠를 일도 담당자가 사무실에 없으면 당장 본인이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해 혼자 답답하다고 악을 써댔다. 재택근무에 필요한 단순한 기기 활용 능력조차 없었고, 그렇다고 배우거나 익히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방식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모르는 건 잘못이 아니라 백번 양보해 생각해줘도 모두가 자신의 식대로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잘못이다.


회사가 "구성원이 지닌 책임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둔다면, 겉으로 보이는 "근태"가 비중 있는 업무 평가의 척도는 아닐 것이다. 아니, 이는 전형적인 마이크로 매니징의 예일뿐이다. 직장은 선생님의 감시 아래 근면 성실을 훈련시키는 학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직원의 헌신과 성취를 엄중하게 평가할 수 있는 지표는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똑똑한 회사는 이를 십분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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