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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 이야기] 저도 너무 지쳤어요, 어머니.

불필요한 것에서 자유로워지다

by 코지모

“이제부터 이 집에서 나갈 생각이에요.”


닥터 차정숙 보다 내가 먼저 어머니께 통보를 날렸다. 그러므로, 내가 집을 나가기로 한 결정은 혹자의 말처럼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영향은 아니다.


나는 닥터 차정숙처럼 가족들을 불러 모아 통보하지는 않았다. 결혼초부터 어머니가 나와 관련된 중요한 결정들을 항상 나와 논의 없이 남편 통해서 전달하거나 통보하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했다. 어머니와 얼굴도 마주하지 않고 말도 섞지 않은 지 두 달이 넘었던 때였다.


한 집에서 같이 살았기 때문에, 남편과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처럼 서로 말을 안 하고 오랫동안 지낸 적은 없었다. 심지어 나에게 씻을 수 없는 마음의 큰 상처를 남긴 십여 년 전의 친정아버지 사건 때에도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닫아버린 계기가 되었지만), 냉랭한 상태가 2주 이상 넘기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몇 달 전 어머니가 야기한 사건이 오래된 친정아버지 사건의 깊은 상처를 건드렸다. 여전히 나에 대한 배려나 존중은 없으시구나, 내로남불이 따로 없구나, 여전히 본인 생각만 하시는구나, 앞으로도 바뀌지 않으시겠구나.


십여 년을 내 가슴 저 깊숙한 판도라 상자에 봉인해 놓았던 온갖 원망, 미움, 분노의 감정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밖으로 표출은 못하고 내 안에서 부정적 감정은 날이 갈수록 강렬히 휘몰아쳤다. 20년 이상을 잘 참고 버텼건만, 이제는 인내심이 바닥이 났는지 도통 참아지지가 않았다.


하루하루 얼굴을 마주하기가 너무 괴로울 지경이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숨쉬기 힘들고, 같은 공간에 있다는 생각만으로 신경쇠약의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일단 살고 봐야 했다.

남편에게 손쉽고 빠른 대안으로 오피스텔을 얻어서 일단 1년 살아보자고 했다.


나도 이제 행복하고 자유로워지고 싶다.

대한민국 헌법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이제 나도 그 기본권 행사할 짬밥은 되지 않았나. 아이도 컸고 이제 나도 그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어머니와 거리를 두고 더 이상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힘들고 지친다.


남편도 나의 심각한 정신 상태에 놀랐는지, 평생을 분가의 '분'자도 못 꺼내게 했던 남편이 어쩐 일이지 내 뜻을 어렵사리 받아들였다. 어머니께는 서로의 미래를 위한 단기 분가라고 말씀을 드린 것 같다. 흠…


남편 말대로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는 가보다. 그때가 오지 않는다면 아무리 기를 써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막상 때가 오면 너무 쉽게 이루어진다.


나의 바람과 달리 본가에서 멀리 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한 남편의 입장도 이해했다.

1km 반경에 있는 1.5룸의 주거텔을 얻었다. 운 좋게도 작은 평수의 일반 아파트와 같은 편안한 설계와 답답하지 않은 구조여서 남편과 둘이 살기에 좋았다.


어머니가 갑자기 본가 벽지 도배를 해야 한다고 하셔서, 4일 만에 짐 대충 챙겨 쫓기듯 나왔지만, 그래서 엉성한 이사였지만,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에 자유로움을 느꼈다. 부엌 용품, 살림살이를 하나씩 장만하고 집안 곳곳이 누구의 간섭 하나 없이 내 손길만으로 아늑한 생활공간으로 바뀌어 가는 재미에 한 달이 후딱 지나갔다.


어느새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거울 앞에서 춤을 추는 나를 발견하고 놀라기도 했다. 부엌살림도 재미있었다. 요리도 재밌었다. 좁은 공간에 여러 살림살이를 끼워 놓는 요령도 생겼다. 마치 테트리스 블록이 빈칸에 착착 맞아 들어가듯, 집안의 가구와 물건들이 완벽하게 빈틈 공간에 채워질 때의 짜릿함도 무척 즐겁다. 나의 똘똘함에, 그리고 나름 살림꾼 자질에 나 자신을 특급 칭찬하기도 했다.


집이 이리 마음 편한 곳이었나.


집은 세상 그 어떤 곳보다도 편안하고 익숙해야 하는 공간인데, 내게 집은 오랫동안 불편하고 불안한, 늘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다.

그래서 경제적인 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자주 다녔다. 1년에 몇 번은 아이를 데리고 집을 떠나,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니며 여행을 했다.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숨 쉴 수 있는 여백이자 작은 도피처였다.


물론 지금도 여행은 여전히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MBTI 내향형 ‘I’ 답게, 본질적으로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 그 고요한 충전의 순간들을 더 즐긴다.


가끔은 문득 ‘이게 뭐지?’ 싶은 현타가 오기도 한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주거텔 생활이라니. 효자인 남편의 마음은 또 얼마나 복잡할까 싶고, 아들과 손자 곁에서 떵떵거리며 살던 시어머니의 지금 처지도 어느 순간 안쓰럽게 느껴진다.


이제는 드디어 나만의 공간에서, 작지만 소중한 우리 가족 셋이서 오붓하게 지내고, 내 손으로 밥도 해줄 수 있게 되었는데, 정작 군대 간 아들과 함께할 시간도, 밥을 해줄 시간도 많지 않다는 현실에 문득 허무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특별할 것 없는 작은 집이지만, 내 마음이 편안하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지. 이 작은 자유에 감사한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지만, 늘 마음에 남는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에 있다’.


불필요한 감정, 억눌림, 부정적인 생각들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비로소 행복을 향한 여정의 시작일 것이다.



배너 이미지 : 앤드루 와이어스 ‘Christina’s World’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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