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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나] 행복은 거창하지 않았다

by 코지모

40대에 가장 자주 입에 담은 단어는 ‘행복’과 ‘자유’였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 행복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몰랐다. 어느 순간부터는 실체 없는 행복을 막연히 좇으며, 가지지 못한 어떤 것을 언젠가는 손에 넣으리라는 욕망으로 살아온 건 아닐까 싶다.


아이를 키우고, 돈 벌기 위해 일하고, 가족과의 관계 안에서 감정을 눌러가며 살다 보니,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겨를이 없었다.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저 살아갔고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아이가 자라고, 나에게도 잠시 숨 쉴 여유가 생기자 문득 “나는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이 들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막연히 “행복해지고 싶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내가 바라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상태를 행복이라 느끼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직도 그 답을 명확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나만의 긴 터널을 지나며 ‘행복’이라는 단어를 더 이상 거창하거나 특별하게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행복은 집착하듯 좇을수록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도, 갖고 싶은 것도 많다.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줄지어 있다. 하지만, 더는 그것들을 ‘행복의 조건’이라 여기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행복이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작은 즐거움들이 이어진 삶 그 자체 아닐까 생각한다.

커피 한 잔의 여유, 좋은 음악이 주는 평온함, 햇살 좋은 날의 산책, 말없이도 편한 사람과의 조용한 시간 — 이런 작고 소소한 순간들이 나를 살아가게 했고, 그게 바로 행복이 아니었을까?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라고 누가 말했듯이,
매일의 삶을 나답게,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계속 누리며, 때로는 웃으며 살아가는 것 — 그것이 내가 바라는 진짜 행복인지도 모르겠다.



배너 이미지: Eva Armisen 'The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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