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보다 사람이 힘들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일 자체보다 사람 때문에 지치는 순간이 더 많다. 누구나 한 번쯤은 “왜 저런 사람이랑 일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동료, 상사 또는 부하직원들을 겪어봤을 것이다. 일은 슬쩍 떠넘기고 공은 가로채고, 회의만 반복하거나, 험담으로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들, 혹은 실력은 부족한데 보상만 챙기려는 이들까지.
조직은 다양한 성향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공간이라지만, 이런 이들의 태도는 업무의 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팀워크를 무너뜨린다. 결국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만 소진되고 만다.
직장 생활에서 마주쳤던, 어디에나 꼭 한두 명씩은 존재하는 ‘회사 빌런’들을 떠올려본다. 동시에 나 자신은 한 번도 그들과 같았던 적 없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 슬쩍 떠넘기기 빌런
회사에서 자주 마주치는 유형이다.
프로젝트는 본인이 시작해 놓고 생색은 다 내더니, 막판 실무는 다른 사람들에게 넘긴다.
프로젝트 초반에는 리더인 척하고, 결과가 좋으면 본인의 성과로 포장한다. 이렇게 공을 가로채는 동시에 책임은 회피하는 이들은 말재주도 좋아 금세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든다.
동료라면 업무 분장을 명확히 하고 상사에게도 간접적으로 이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조율할 수 있지만, 핵심 부서나 협업 부서 책임자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잘못 대립하면 오히려 내 탓이 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럴 땐 협업처럼 보이되, 작업 과정과 결과는 반드시 문서화하고 기록을 남기며, 회의에서도 자신의 기여를 명확히 언급해야 한다.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할 때는 늘 피곤하다.
□ 부하 직원 험담하는 상사 빌런
내가 요즘 제일 꼴사나워하는 인간류이다. 사람들 앞이나 뒤에서 부하 직원을 험담하는 상사는 민망할 뿐만 아니라, 결국 본인의 직원 관리 및 리더십 부재를 드러내는 꼴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직원은 신뢰를 잃고 동기를 잃으며, 이직을 고민하게 된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도 있고, 답답한 감정을 털어놓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실무자 시절엔 이런 모습이 없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문제를 느낀다면 정면으로 대화하고, 행동을 구체적으로 고쳐달라고 요청하는 게 정답이다.
반대로, 상사를 욕하면서 앞에서는 아부하는 직원도 꼴불견이다. 조직의 신뢰를 해치는 행동은 상하를 막론하고 바람직하지 않다.
□ 뒷담화 빌런
화장실, 탕비실, 회식 자리에서 늘 ‘누구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긍정적인 이야기는 99.9% 없다. 이들은 오해를 불러오고, 조직 내 분열을 유도하는 장본인이다. 그들과 10분만 이야기하면 회사 사람들의 온갖 정보를 알 수 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루머일 뿐이다.
한때는 나도 그런 대화에 어색하지 않게 하려고 맞장구쳤던 부끄러운 기억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대화엔 끼지 않거나,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려고 한다. 언젠가는 나도 그들의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사람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최선이다.
□ 말 바꾸기 빌런
지시는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며, “그 뜻이 아니었어”, “이게 아닌데?” “식으로 말을 바꾼다. ”이해를 못했네,“ 남 탓으로 돌린다. 이런 류는 감정에 따라 지시가 바뀌는 경우도 많다.
지시 내용을 반드시 문서로 남겨야 한다. 메일이나 메신저로 확인을 요청하고, 변경이 생기면 그 이유까지 정리해 두어야 나중에 난처한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 그 사람의 기억이 아닌, 내 기록이 나를 보호해야 한다.
□ 정치에 몰두하는 주니어들
조직에서 어느 정도의 정치력은 필요하다. 시니어들의 세계는 복잡하고 때론 치열하다.
하지만 일을 배우는 데 집중해야 할 주니어들이 실무보다 줄 서기와 인맥 관리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누구 밑에 붙을지, 어느 파벌에 설지 계산하며 움직이고, 도움이 될 만한 시니어에겐 인사를 잘하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은 투명인간 취급한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면서도, 인사를 선택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다.
주니어라면 줄서기 보다는 실력과 태도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주니어들은 못 믿겠지만, 실력 있는 사람은 위에서 결국 다 알아본다.
□ 자기 과대평가 빌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여러 연구에서도 밝혀진 사실이다. 하지만 도를 넘는 경우가 있다. 실제 성과보다 자신을 훨씬 높게 평가하며, 그에 걸맞은 보상과 인정을 요구한다.
실력보다 셀프 브랜딩에 집중하고,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조직에 대한 불신을 키우며 불만을 전파란다.
기여도는 객관적인 수치나 구체적인 결과로 입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모든 성과가 수치로 환산되거나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결국 조직 내 평가와 보상 체계는 현실적으로 복잡하고, 늘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 회의 중독 빌런
회의가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수 있다. 여러 부서와 이해관계자가 얽히고,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체크하며, 리소스를 조정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모든 일을 회의로 시작해서 회의로 끝낸다. 실행은 없고, 결정은 미뤄지고, 회의만 계속된다. 책임은 지기 싫고, 혼자 결정할 자신은 없어서 회의라는 장치를 방패 삼는다.
상사가 이런 스타일이라면 답은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회의 안건을 사전에 묻고, 회의 목적을 명확히 하며, 회의 후엔 액션 아이템을 정리하고, 상사가 결정을 못 내리면 선택지를 좁혀 제안하는 식으로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주도하는 사람이 결국 총대를 메게 되다 보니 피곤해진다. 게다가 잘못하면 책임까지 떠안을 수 있다. 결정은 하지 않으면서도, 관리의 균형을 잡는 방식이 필요한데, 쉽지 않다.
지금 당신 옆에도 이런 사람이 있지는 않은가?
직장은 결국 사람과 부딪히며 일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일보다 사람이 힘들다'는 말이 늘 공감된다.
이런 빌런들을 완전히 피할 순 없지만, 그들과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 자신이 그들과 닮아가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보는 게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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