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나] 주책과 쿨 사이, 그 어딘가에

by 코지모

이태원에서 친구를 만나 함께 일하기로 했다. 교통 체증에 주차 걱정까지 겹쳐, 차보다는 버스를 타는 게 낫겠다 싶었다. 1시간 거리, 편하게 움직이고 싶어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연회색 백팩에 컴퓨터를 챙겼다.


유쾌한 템포의 음악을 에어팟으로 들으며 걷다 보니,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세계에 들어선 기분이 들었다. 하늘은 청명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흐르고 발걸음에 자연스럽게 리듬이 실리며 온몸이 자유로워졌다.


그 기분 좋은 순간에 문득, 생각이 스친다.


‘내가 혹시 주책스러워 보이지는 않을까?’


요즘 들어 과하게 젊어 보이려 애쓰는 듯한 머리와 화장, 옷차림의 중년 여성들을 보며 ‘조금 지나친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내 시선처럼, 이제 나도 그런 시선을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을 내면화해 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나이를 잣대 삼아 타인을 바라보고, 또 나 자신을 검열한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 50대도 여전히 젊다고들 한다. 생각과 취향, 삶을 즐기는 방식 역시 한층 더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나이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틀 안에 머물러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도 자주 흔들린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과,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 사이에서 헤맨다.


‘주책’이라는 말은 묘하다. 때론 나를 움츠리게 만들고, 때론 타인을 쉽게 판단하게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이에 맞는 모습’이라는 기준은 애초에 모호하다.


내가 나답게 즐기되, 그로 인해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 거나 불편을 주지 않는다면, 조금쯤 튀어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지금, 주책과 쿨 사이 어딘가에서 나를 즐기는 법을 배우고 있다.



배너 이미지: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m-maybe’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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