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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나] 낯선 친절이 남긴 따뜻한 여운

마음에 남는 건 결국 사람

by 코지모

음료 매장에서 밀크티를 주문하려고 키오스크 앞에 섰다.


모바일 전용 카드로 결제하려 했지만, 아무리 태그 해도 인식이 되지 않았다. 거리를 앞뒤로 조절하며 몇 번을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느새 내 뒤로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기 시작했고, 그 광경에 마음이 급해졌다. 키오스크 앞에 나 혼자였다면 차분히 다시 시도해 볼 수 있었겠지만, 서두르다 보니 손끝까지 떨렸다.


그때, 내 바로 뒤쪽에서 기다리던 젊은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스무 살 즈음의 대학생쯤 되어 보였다.

내 흔들리는 눈빛을 읽은 걸까.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그녀는 화면 밝기가 어두워 인식이 안 될 수도 있다며, 내 스마트폰을 받아 직접 밝기를 조절해 키오스크에 다시 갖다 댔다. 이번에는 한 번에 인식이 되었다.


나는 키오스크 사용이 서툰 편이 아닌데, 화면 밝기 문제로 카드 인식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건 미처 몰랐다. 당황한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민 그녀의 도움이 너무 고마웠다.

마음 같아선 그녀와 친구들의 음료까지 모두 사주고 싶었지만, 혹시 또 키오스크가 말을 안 들면 어쩌나 싶어 조심스레 그 마음을 접었다.


이런 순간을 겪고 나니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생 시절 엑스포에서 통역 요원으로 일하던 때였다. 나와 함께 일하던 일본어 통역 언니가 있었는데, 어느 날, 나이 지긋한 일본 노신사가 길을 잃었는지, 아니면 물건을 분실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통역 센터에 다급하게 도움을 청했다. 언니는 그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은 뒤, 단순히 길만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목적지에까지 동행하며 통역까지 도맡아 끝까지 도움을 주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언니 앞으로 정갈하게 포장된 작은 상자가 도착했다. 안에는 유명 브랜드의 진주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그땐 조금 놀랐다. 그 당시에는 ‘정말 이 정도까지 고마울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낯선 나라에서 겪는 작은 어려움조차 커다란 막막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순간에 마주한 작은 친절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위안과 울림이 되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누군가의 배려는 결코 가볍게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시간과 마음, 여유가 담긴 결과라는 것을 깨닫는다.

예전엔 당연하게 여겼던 도움도, 직접 누군가를 도와본 경험이 쌓일수록 그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는 도움을 청하는 일조차 망설여지기에, 그런 나에게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의 진심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진짜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장소나 풍경이 아니라, 그런 순간에 다정하게 다가와 준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누군가의 키오스크 앞에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너 이미지: Émile Renouf ‘The helping hand’ 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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