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현직 건축가 조나단의 이야기
어느 산업이든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 시기는 산업군에 따라 계절이 원인일 수도 있고, 트렌드일 수도 있고, 세계경제상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는 고객들이 그 상품이나 서비스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자 하는지가 그 사업의 흐름을 좌우한다.
건축업계는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 -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도로가 확장되고, 점점 더 좋은 생활환경과 인프라에 대한 욕구가 높아질 때가 바로 호황기이다. 따라서 이미 경제가 성숙하고 많은 규제가 생긴 선진국에 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성장을 목표로 달려가는 국가들이 바로 클라이언트요, 곧 기회의 땅이 된다.
그러니 새로운 기회를 찾아 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건축가와 사무소가 많은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 아시아 중에서도 적극적이고 투자와 과감한 시도로 현대건축의 중심지로 떠오른 싱가포르는 많은 건축가들이 경험해보기 원하는 시장이다.
스피드, 자본, 인적 자원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프로젝트가 된 마리나 베이 샌즈 ©Unsplash
오늘은 그런 싱가포르에서도 실력파 건축사무소 워하 WOHA에서 7년째 경력을 쌓고 있는 건축가 조나단이 이야기하는 ‘건축가라면 지금 아시아에서 일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들어본다.
조나단이 운영하고 있는 건축 블로그 Archigardner ©Jonathan Choe
조나단이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인 아키가드너 Archigardenr(구 이름: 어반 아키텍처 나우 Urban Architecture Now)는 이미 싱가포르의 건축업계 사람들과 건축 팬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2010년부터 꾸준히 운영해온 이 블로그에는 싱가포르에서 새로 진행되는 프로젝트,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방문해보면 좋은 스폿, WOHA에서 건축가로서 실제로 일하면서 쌓인 인사이트 등을 직접 찍은 사진을 곁들여 자세하게 적어놓은 포스팅이 가득한데 매달 20~100k 뷰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조나단 조/ 조나단의 자택 ©Jonathan Choe
싱가포르에서 현직으로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건축가인 조나단이 공유해주는 정보는 싱가포르 건축업계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얻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그가 이야기하는 ‘지금 아시아에서 일해야 하는 이유’는 특히 흥미롭다.
조나단은 아버지가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때 싱가포르에서 잠시 지낸 적이 있었는데 트로피컬 한 환경과 다채로운 음식 문화가 무척 마음에 들었었다고. 그는 시카고의 일리노이 공과 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한 후 싱가포르의 건축사무소 WOHA에서 여름 인턴십을 마친 후에 잡 오퍼를 받아 자연스럽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아시아 다운타운 호텔 by WOHA ©에리카
아마도 WOHA는 ‘시티 인 가든 A city in a garden’이라는 싱가포르의 정책방향에 가장 잘 부합하는 디자인을 선보이는 곳이 아닐까 싶다. 식물과 가드닝에 관심이 많은 조나단과 어울리는 사무소인 셈이다.
파크로열 온 피커링 호텔 by WOHA ©에리카
아래는 아시아에서 건축가로 일하는 것에 대해 진행한 서면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Q: 시카고에서 싱가포르로 먼 길을 떠나왔다. 미국이 아닌 싱가포르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는?
A: 어릴 적 잠시 아시아에서 살아본 후, 다시 미국에 돌아가 공부를 하는 동안에 얼마나 미국에서는 건축 프로젝트가 느리게 진행되는지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페이스가 느릴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 비해 프로젝트의 절대적인 수 자체가 적었다. 도시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다.
그 후, 유럽에서도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미국과 마찬가지로 새롭게 지어지는 프로젝트는 지극히 적었고 그나마 있는 프로젝트도 진행속도가 너무 더뎠다. 공사 기한이 계속해서 연장되기 십상이었다. 건축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데다 자금이 많이 투입되는 일이므로 빠른 시간 안에 공사가 진행되고 기회가 많은 아시아처럼 성장하는 경제시장에서 일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Q. 건축가라면 아시아에서 일하는 것을 추천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본다면.
A.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을 포함해 프로젝트, 인력, 스피드, 자본 이 네 가지를 장점으로 들 수 있겠다. 또한 싱가포르를 구체적인 예로 들자면, 내가 시카고에서 공부를 하던 5년 동안 아주 적은 수의 프로젝트가 그것도 타이트한 예산으로 진행되고 있었다면 싱가포르에서는 같은 기간에 엄청난 수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지휘 하에 이미 완성되고 있었다.
모셰 사프디의 주얼 창이 ©Unsplash
스피드
미국, 유럽에 비하면 아시아의 건축 시장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클라이언트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신속히 진행하고 싶어 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공무원들과 저렴한 노동력이 결합되어 서구권에서라면 10년이 넘게 걸릴 프로젝트가 아시아에서는 고작 몇 년이면 이미 완성된다. 건축가라면 가능하면 많은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시아는 최적의 환경이다.
싱가포르 비즈니스 중심가 CBD ©Unsplash
중산층의 성장
또한 성장하는 경제와 함께 공공 인프라, 사람들의 주거환경에 대한 수요도 엄청나다. 일례로 몇 년 전, 시카고에서 본 한 배너광고에서 새 콘도미니엄이 6개월 안에 15%를 판매한 것에 대해 대단하다는 식으로 강조를 하는 것을 봤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날 싱가포르에서는 WOHA의 프로젝트인 27층짜리 아파트인 오아시아 다운타운 Oasia Downtown이 단 하루 만에 완판이 되었다는 뉴스를 봤다.
아시아의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중산층은 건축계에 엄청난 기회를 가져다준다.
CBD의 항공 샷 ©Unsplash
자본
또한 자본을 빼놓고 건축을 이야기할 수 없다.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 5년 동안 공부한 시간을 법이나 금융을 공부했더라면 아마도 더 많은 소득을 창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개인적 소득보다는 클라이언트가 이 프로젝트에 얼마만큼의 예산을 투입할 능력이 되는지가 중요하다.
다행히 아시아의 클라이언트들은 점점 더 고퀄리티의 디자인에 투자하려는 의지가 강해지고 있어 예산 또한 관대하게 집행된다고.
그러니 점점 더 많은 유럽과 미국의 유명 건축 사무소들이 아시아에 사무실을 열고,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 ©Unsplash
물론 현재 코로나로 인해 다른 대부분의 업계와 마찬가지로 건축 업계 또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상황이 회복되고 난 후,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고.
싱가포르에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건축가 후배들에게는 BIM 즉, 빌딩 정보 모델링(건축 설계를 기존 평면에서 입체로 한 차원 높임으로써 각 과정을 시뮬레이션으로 보여 주기 때문에 시설 공사에 이를 도입하면 설계 과정부터 잘못된 부분을 수정할 수 있다)과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싱가포르에서 특히 수요가 많다고 한다.
디자인 오차드 by WOHA ©Jonathan Choe
조나단은 요즘 더욱더 복잡한 도시에 생물학적 다양성을 복구할 수 있는 녹지를 조성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가 건축가로 일하고 있는 WOHA의 프로젝트인 디자인 오차드와 자신의 아파트의 레노베이션에서도 그 열정을 엿볼 수 있다.
다른 나라로 또 움직일 예정이 있냐고 묻자, 싱가포르는 아시아 주변 국가를 여행하기에 좋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어 당분간은 옮길 예정이 없다고 한다. 앞으로도 싱가포르에서 건축가로 일하며 인사이트를 나누어줄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글 디자인 프레스 해외 통신원 에리카
협조 조나단 조 Jonathan Choe
archigardener.com
Instagram.com/archigarde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