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에 차 있는 사람보다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 보기 좋지요.
하지만 요즘은 워낙 자존감, 자신감을 강조하는 사회이다 보니 오히려 가끔 자신감이 지나친 듯한 분들을 볼 때가 있어요. 마치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그런 분들을 볼 때면 가끔 아슬아슬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리고 저도 모르게 20대 중반의 제 모습을 떠올리게 되곤 해요.
저는 대체적으로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20대 중반까지는 무탈하게 대부분 원하는 일이 있으면 이루어지는 삶을 살면서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라고 생각했었어요. 타고난 긍정적인 성향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당시의 저는 작은 것 하나하나에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내가 원하면 다 이뤄낼 수 있다'라는 어떤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단지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싱가포르에서 다니던 두 번째 직장인 일본 대기업을 1년 정도 다니다 퇴사를 하고 뉴욕으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였어요. 저는 싱가포르 생활이 3년 정도 되자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고, 잠시 휴가로 다녀온 뉴욕의 강한 에너지에 매료되어 다녀온 후 얼마 되지 않아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어요.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 영어공부도 하면서 뉴욕 생활을 즐기는 뉴요커가 돼보고 싶었죠.
상사였던 토바 상은 저의 결정을 존중해주셨고, 퇴사를 하기 전 저녁을 함께 먹으며 앞으로의 저의 계획에 대해, 그리고 이런저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러다 토바 상이 저에게 "지은, 너는 참 항상 긍정적인 게 장점이야. 그런데 겁나거나 걱정되는 건 없어?"라고 하시기에 앞으로의 기대로 한껏 들뜬 저는 앞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며,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죠.
그러자 토바 상은 미묘한 표정으로 "긍정적인 건 참 좋아. 하지만 가끔은 인생이 그렇게 네 마음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을 때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렴."라고 하시더라고요. 평소엔 저보다 훨씬 더 긍정적이신 분이 그런 말을 하기에 저는 의외였기도 했고, 당시에는 '왜 하필 지금 이런 사기를 꺾는 말을 하시는 거지?'라고 생각했어요. 어른들이 으레 하는 그런 '현실 이야기'라는 생각에 "왜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라고 했던 것 같아요.
토바 상은 "나도 한 때는 너처럼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었어. 못해낼 것은 없다고 말이야. 하지만 살다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 그리고 싫든 좋든 우리는 삶 앞에서 겸허함을 배우게 되는 때를 맞이하곤 해."라고 하셨죠. 그때는 사실 저 당시에는 저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저 말의 뜻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요. (미국 학생비자가 거절된 것도 그 경험 중의 하나였네요)
인생을 살면서 종종 우리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을 겪을 때가 있죠. 그건 내가 '덜 긍정적'이어서도 아니고, '덜 노력'해서도 아니고... 그저 일어나는 일들이에요. 그런 일들조차 자신이 모두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신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원하지 않는, 가끔은 힘든 경험들을 통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 받아들이고 삶 앞에서 겸허함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긍정적이고, 인생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는 거예요. 그리고 자신감과 자만은 한 끗 차이라는 것.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건 좋지만 그게 과하면 나르시시스트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도 말이죠.
요즘은 워낙 퍼스널 브랜딩이 중요한 사회이다 보니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가 중요하죠. 그런 만큼 지금이야말로 실력이 있으면서도 겸손하신 분들이 더 돋보이는 시대인 것 같기도 해요. :)
자신감과 자만감, 그 적절한 균형이 중요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