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편
지난번 캠퍼스 편에 이어 이번에는 싱가포르라 가능한 트로피컬 디자인의 호텔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싱가포르의 로컬 사무소인 WOHA는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비슷비슷한 지루한 디자인의 회색 빌딩들은 싱가포르의 고유한 자원인 기후를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디자인은 가히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디자인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두 호텔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자국의 환경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건축사무소 WOHA
미츠비시 설계사무소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도쿄 본사에서 디자이너들이 분기별로 싱가포르에 견학 겸 시찰 출장을 오곤 했는데, 주로 대표적인 건축물에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이너 한 빌딩들까지 골고루 둘러보는 3박 정도의 일정이었다. 일정이 끝나고 마지막 날 저녁 회식을 하면서 싱가포르 건축에 대한 감상이 어땠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들 한 번씩은 ‘싱가포르라 가능한 디자인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일본에서는 결코 승인이 나지 않을 디자인들이라는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사실은 꽤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싱가포르라 가능한 디자인’이라는 짧은 한마디 안에는 과감한 디자인 자체도 포함되어 있고, 4계절 내내 루프탑이 사용 가능하며 실외 디자인에 식물을 사용할 수 있는 기후도 포함되어 있고, 정부차원에서 다양한 시도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싱가포르의 건축에서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부분은 아마도 자연적 요소 Green일 것이다. 싱가포르는 사계절 내내 따뜻 혹은 더운 날씨에 비도 적절히 자주 내려주니 나무와 꽃들이 무럭무럭 잘 자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러니 이런 식물들을 건축디자인의 한 요소로 사용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지난번 <스타 건축가들의 캔버스가 된 싱가포르 – 이토 토요> 편에서 소개했던 캐피타 그린 Capitagreen 빌딩 또한 좋은 예이다. 건물 외벽의 이중 유리 스킨과 함께 절반 이상을 녹색식물은 건축가의 의도대로 마치 빌딩 전체를 거대한 나무로 보이게 한다.
캐피타 그린이 유리 스킨 사이에 식물을 ‘장식’했다면 지금부터 소개하려고 하는 이 호텔은 정말로 한 그루의 나무처럼 매일매일 자라나며 그 모습이 변하고 있다. 래플스 플레이스 Raffles place와 함께 중심 비즈니스 지역인 탄종파가 Tanjong Pagar역 바로 앞에 위치한 오아시아호텔 다운타운 Oasia Hotel Downtown이 그 주인공.
1. 오아시아호텔 다운타운 Oasia Hotel Downtown by WOHA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건축 사무소중 하나인 WOHA가 설계를 담당한 호텔은 세계 초고층 도시주거 협의회 CTBUH: Council on Tall Building & Urban Habitat가 선정한 2018년의 최고 고층건물상을 수상하였다. 28개국에서 선정된 총 48개가 넘는 최종 후보작들 중에서 수상한 쾌거이다. CTBUH의 상무이사이자 시상자를 맡은 앤토니 우드 Antony Wood는 많은 쟁쟁한 후보작들 중에서 이 오아시아 호텔 다운타운이 선정된 이유는 60층 높이의 그린 외벽을 도입한 것 또한 물론 놀랍지만, 무엇보다 공용구역에 대한 높은 기여도를 높게 샀다고 말한다. 이 빌딩의 기둥의 40% 이상이 테라스에 설치된 오픈 에어 공용테라스에 사용되었다.
자국의 환경요건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로컬 사무소답게 WOHA는 그들의 디자인에 있어 언제나 ‘싱가포르다움’ 요소를 잊지 않는다. 매년 새로운 빌딩이 끊임없이 세워지고 점점 더 그 밀도가 높아져가는 비즈니스 중심구역에 또 다른 호텔을 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추구한 것은 단순한 또 하나의 고층빌딩이 아닌 주변 환경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는 ‘살아있는 빌딩’이었다.
메쉬 소재로 만들어진 붉은 건물 외벽을 타고 총 21가지의 덩굴식물들이 실제로 매일매일 그 벽을 타고 자라나고 있으며 사이사이에 피어난 꽃들에는 벌레와 동물이 앉기도 한다. 빌딩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식물원이 된 셈이다.
2. 파크로얄 온 피커링 Parkroyal on Pickering by WOHA
만약 싱가포르의 인기 있는 관광지구인 차이나타운에서 클락키 Clarke Quay로 가는 길에 멀리서부터 눈에 띄는 거대한 공중정원을 보았다면 그건 바로 파크로얄 온 피커링 PARKROYAL on Pickering이다.
WOHA의 이름을 일반 대중들에게도 크게 알리게 된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이 파크로얄 온 피커링이다. 싱가포르의 정부 주택인 HDB 아파트 단지와 시민들의 쉼터인 홍림 공원 Honglim park 사이에 위치한 중앙 비즈니스 지구의 서쪽 가장자리에 길게 자리 잡은 이 호텔은 싱가포르의 한강이라고 할 수 있는 싱가포르 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호텔의 설계를 맡았을 때 WOHA의 디자이너들은 이 지역에 상업 호텔을 짓는 행위가 자칫하면 공공구역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대신 반대로 이 호텔이 공원과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연결체가 되도록 했다.
호텔의 독특한 외관을 결정짓는 요소중 하나는 굴곡진 지층 모양의 차양이다.
입구로 들어서면 엄청난 규모와 그 독특한 모습의 천장과 차양에 압도되는데 이 공간에는 의도한 바가 있다. 차이나타운과 남쪽 지역의 HDB 블록을 잇는, 다른 두 관할권을 하나로 묶는 기념비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 차양 아래로 걸어가는 보행자는 그 안에서 시각적으로 그 연결성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열대 식물로 장식된 방대한 하늘정원과 야자수를 지탱하고 있는 객실은 4층마다 캔틸레버 구조(외팔보라고도 하며 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쪽 끝은 자유로운 들보 형식)로 설계되었다. 호텔 전체가 마치 공중정원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또한 외관에 식물로 덮인 발코니와 테라스를 추가함으로써 호텔 총면적의 두배인 총 1만 5천 평방미터의 녹지가 생성되었고 각 객실의 창문에서 이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파크로얄 온 피커링 호텔은 2013년 1월에 오픈한 이후로 많은 건축가들과 건축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싱가포르의 가장 권위 있는 환경인증인 그린마크 플래티넘상을 수상하였다.
자국의 환경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건축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그 책임감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프로젝트에 임하는 WOHA가 또 다음에는 어떤 싱가포르다운 디자인을 선보일지 기대된다.
참고
WO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