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인간이 보지 못하는 큰 숲을 보여주신다
삶을 돌아보면 내가 조금씩 하느님과 가까워졌던 시간은, 언제나 인간인 나의 기준에서 "절망적인 시기"였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재미있게, 하하 호호 그저 즐겁게 지낼 때는 신의 존재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게 내 마음대로 잘 풀리니까 (혹은 그렇게 착각했을지도).
어릴 적 아토피가 너무 심해 괴로움에 잠 못 들던 밤, 상처가 너무 심해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지내며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건지 불만과 화로 가득했던 나날- 어린 마음에도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결코 건강해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불교서적을 읽고, 명상이란 걸 시작하고, 마음공부라는 걸 시작했다.
내가 하는 생각이 내 몸을 더 아프게도 하고, 편하게도 한다는 것을 깨닫고나서부터는 내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마음공부가 해외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도, 소위 멘탈이 강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싱가포르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도, 화려한 삶, 커리어를 좇아가며 살다 잠시 방향을 잃어 방황할 때도, 사람에게 상처받아 마음을 다독여야 할 때도- 결국엔 답은 내 안에 있다고 믿고 더욱더 명상과 마음공부에 집중했다.
그렇게 힘든 시기마다 절박한 마음으로 내면에 집중할 때면 항상 조금씩 더 신과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당시, 내가 '우주', '참 자아'라고 부르던 존재는 지금 와서 돌아보면 결국엔 신, 하느님이었다. 마치 필요할 때만 연락해서 하소연하는 얌체 친구처럼... 나는 내가 필요할 때만, 내가 힘들고 절박할 때만 하느님을 찾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느님은 나를 묵묵히 위로해 주셨고, 나를 들어 올려 좁은 인간의 시야로는 보지 못했던 큰 숲을 보여주셨다. 내가 얼마나 작은 것에 집착하느라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애초에 내가 최종적으로 가고자 했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잊고 있었는지를 알려주셨다.
크리스천이 되기 전에는 인간의 '원죄'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건지, 나의 그 죄를 예수님이라는 분이 십자가에 못으로 박혀 돌아가심으로 씻어주셨다는데. 도통 이해가 되지 않고, 심지어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부탁하지도 않은 선물을 받았으니 감사해야 한다는 말인가?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느님을 만나고 난 후에는 깨닫게 되었다. 그 인간의 오만함이야말로 죄라는 것을.
인간은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냥- 신은 필요 없다는 태도로 삶을 살다 자신이 인간으로서 무능력함을 경험할 때가 되어서야, 그 절박한 상황이 되어서야 신을 찾는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는 자신이 신이 아니라 그저 한낱 인간일 뿐임을 깨닫는다. 조금 반성을 하고, 신 앞에서 겸손해진다. 그러다 신의 도움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고 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의 능력으로 멋지게 극복했노라 자만하게 된다.
인간의 삶은 그 사이클의 반복이다.
게 중에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신 앞에 다가와 참회를 하고, 신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고, 한낱 인간의 지혜로 살아가는 것보다 신께 맡기는 삶을 살아간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그렇게 신을 모른 채, 혹은 필요 없단 생각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결국 신을 정면으로 만나게 되는 순간에는 어떤 마음이 들까? 다른 이들의 마음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꽤나 부끄러울 것 같다.
하느님을 만나고 난 후, 가장 큰 변화는 인간으로서의 자만심과 어리석음을 깊이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나름 머리를 굴려 계획을 하고,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는 대신 하느님의 계획대로, 하느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모습으로, 하느님의 자랑스러운 자녀의 모습이 되어가도록 이끌어주시리라 믿고 따라가겠습니다라는 기도를 드린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긴 순간부터 내 마음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평화가 가득해졌다.
물론 여전히 인간의 한계인 의심, 불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 역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다. 제 마음을 하느님을 향한 믿음으로 빈틈없이 가득 채워주시라고. 결국엔 모든 문제는 하느님께 부탁드리는 삶이 된 것이다. 이렇게 편한 삶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생각할 때도 있다 (웃음).
아마도 나처럼 스스로 똑똑한 줄 알고, 고집이 센 양들은 이렇게 돌고 돌아 하느님께 오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만큼 더 하느님의 품이 얼마나 아늑하고 따뜻한지를 아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