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흥행 보증수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2010년 발표해 SF 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아바타>에는 주인공인 ‘나비족’들이 살아가는 터전인 숲 속 거대한 나무들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나비족들은 나무와 소통을 하고 나무들은 수많은 스냅스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교감을 나눌 때면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영적이며 신비로운 나무는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인간의 기술력으로 재연해낸 자연
만약 그 나무들을 실제로 경험해볼 수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나무가 콘크리트와 태양열 전지로 이루어져 있다면?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이름을 건 수많은 초고층 빌딩을 만날 수 있는 현대건축의 새로운 실험장인 싱가포르는 원래는 야자수가 가득한 정글이었다. 매년 이 도시국가의 곳곳에서는 멈추지 않는 공사와 개발이 진행되지만 결코 중요한 부분은 잊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과 공존할 때에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싱가포르의 도시계획과 건축계에서는 ‘그린’,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마리나 베이를 따라 총 101 헥타르의 면적으로 개발되어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식물원인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인간의 기술력과 자연이 만난 대표적인 예이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싱가포르의 국립공원 위원회(National Parks Board Singapore)의 ‘정원 속 도시’라는 비전이 현실화된 프로젝트이다. 2006년 1월,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마스터플랜을 위한 국제 디자인 경연이 개최되었는데 총 24개국의 170개의 디자인 사무소가 참여해 70개의 엔트리가 제출되었다.
마리나 베이 지역 개발은 크게 베이 사우스 Bay South와 베이 이스트 Bay East로 나누어 진행되었고 각각 남쪽은 조경 건축 사무소 그랜트 어소시에이츠 Grant Associates와 동쪽은 구스타프손 포터 Gustafson Porter의 디자인이 최종적으로 채택되었다. 두 곳 모두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사무소이다. 마스터플랜은 싱가포르 시민들에게도 프리뷰로 공개되었고 85% 이상의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하이라이트는 30 미터 높이의 인공 실내폭포가 입구부터 맞이하는 돔 형식의 실내 식물원과 아바타 속 나무들을 떠올리게 하는 18그루의 슈퍼 트리이다. 약 16층짜리 빌딩에 준하는 50미터 높이의 슈퍼 트리들은 난초를 비롯해 다양한 열대 지역의 무려 158,000 종이 넘는 식물들로 돌아가며 뒤덮여 있어 마치 살아 있는 나무처럼 보인다.
나무를 덮고 있는 식물들은 브라질, 파나마, 에콰도르 등에서 가져온 것으로 싱가포르의 열대성 기후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종류들이다. 또한 가볍고 단단해 수직구조에서 흙이 없이 따로 관리를 하지 않아도 잘 자랄 수 있는 식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디자인 경연에서 우승한 조경 건축 사무소 그랜트 어소시에이츠의 마스터플랜은 싱가포르의 국화인 난초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 난초꽃의 아름다움을 이국적인 정원을 통해 표현했고, 꽃의 생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슈퍼트리의 섬세하면서도 과학적인 구조가 탄생했다.
슈퍼트리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나무의 중심이 되는 코어, 나무 기둥, 기둥을 감싸며 식물이 자라고 있는 재식 패널, 꽃잎처럼 퍼져나가는 캐노피로 구성되어 있다. 코어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졌으며 나무의 윗부분은 싱가포르의 풍부한 태양열을 활용할 수 있도록 태양열 전지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각각의 슈퍼트리는 빗물을 저장해두었다가 슈퍼트리 자체와 돔 식물원 두곳의 열을 식히는 쿨링 워터로 사용된다. 겉모습만 나무를 닮은 것이 아니라 기능 또한 최대한 실제 나무가 하는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이웃국가인 말레이시아에 40%에 달하는 물을 수입하는 높은 의존도로 만성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 해결방안의 하나로 지하 하수처리 시설 건설에 72억 달러(약 한화 8조7192억 원)를 투자해 2025년도까지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을 낭비하지 않고 재활용하는 것이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상황에서 슈퍼트리의 디자인은 대표적인 친환경 프로젝트로 손꼽힐 만하다. 가든스 베이는 영화, TV를 포함해 많은 미디어에서 다루어졌는데 영국의 BBC 채널의 플래닛 어스 2 (Planet Earth 2) 시리즈에서는 “아마도 시티 그리닝 city greening의 가장 훌륭한 예”라고 소개되었다.
슈퍼트리는 기능적인 면뿐만 아니라 심미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매일 저녁 두 번 진행되는 가든 랩소디 Garden Rhapsody는 1970년대의 디스코, 오페라 등 대중에게 익숙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맞춰 슈퍼트리를 장식하고 있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조명이 마치 춤추듯 움직이는 퍼포먼스이다.
이 가든 랩소디 공연은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놓치면 안될 어트랙션으로 손꼽히는데 저녁이 되면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싱가포르에서 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조명과 음악의 향연과 함께 즐기는 경험은 특별한 추억이 된다. 많은 이들이 슈퍼트리 밑에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앉거나 아예 돗자리를 피고 누워 즐기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화려한 조명의 향연과 함께 웅장한 음악의 퀄리티 또한 많은 이들이 놀라는 부분. 이 가든 랩소디 공연을 위해 설치된 독자적인 68개의 스피커가 바로 스테레오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비밀이다. 이 공연은 싱가포리언 뮤직 프로듀서 뱅 웬푸 Bang Wenfu와 조명 디자이너 애드리안 탠 Adrian Tan의 합작으로 탄생했다. 쇼의 구성은 시즌마다 달라지며 2017년에는 두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영화 스타워즈의 오마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랜트 어소시에이츠의 디렉터 앤드류 그랜트 Andrew Grant는 최첨단의 환경 디자인과 지속 가능한 개발 원칙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열대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매립지인 베이 지역의 구조상 특징과 싱가포르의 기후는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었지만 다행히도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가든스 바이더 베이 프로젝트는 세계적으로도 성공적인 도시개발의 예로 꼽히게 되었고 BCA 그린 마크 플래티넘, 월드 빌딩 오브 더 이어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싱가포르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밝히는 슈퍼트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비록 인간이 창조해낸 인공의 건축물임에도 어딘가 경건한 느낌이 드는 것은 역시 자연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훌륭한 디자인은 결국엔 자연과 가장 닮은 모습일 때가 많은 것이 우연은 아닌 듯 하다.
글 디자인 프레스 해외통신원 에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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