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리카 May 19. 2020

우리 모두 정말로 언제나 '연결'되어 있어야 할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정말이다. 

언제부터 우리가 24시간 인터넷에 접속해있는 것이, 연락 가능한 것이, 모든 정보를 핸드폰을 들고 타닥타닥 입력하기만 하면 찾아볼 수 있게 됐을까. 길어봤자 최근 10여 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다. 20년 전에 사람들에게 우리가 손안에 잡히는 작은 기계를 컴퓨터처럼 사용할 거라고 하면 웃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친한 동생이 80년 대생들의 이야기/ 특히 05학번들이 공감할 ^^유튜브 영상을 하나 보내줬었는데 거기에는 복학생들이 피시방에 가서 (비니와 이니셜 목걸이를 함 ㅎㅎ) 네이트온에 접속하고는 게임을 시작할 때는 상태 메시지를 '자리비움'으로 바꾸는 모습이 나온다. 싸이월드에 로그인해서 내 방을 꾸미기도 하고. ;)

그걸 보고 한동안 둘이서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 우리가 '메신저'라는 프로그램을 쓰던 시절에 대해서. 


그때는 학교에서 친구와 헤어지면서 할 얘기가 있으면 "몇 시에 세이클럽에서 만나자"라고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되면 로그인을 하고 누가 온라인 상태인지 확인했다. 그러다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남자애가 로그인을 한다고 팝업창이 뜨면 괜히 설레고 바로 인사를 할지 아니면 조금 있다 할지/ 안 할지를 고민도 하고. 

뭔가 그런 기다림의 즐거움이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24시간 전 세계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게 된 게 고작 불과 몇 년 안에 일어난 일이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나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의 일상을, 24시간 그 사람이 무얼 하는지 알 수 있다. 뭘 먹고, 뭘 입을 것이며, 심지어 어떻게 자는지도, 어떻게 일어나는 지도 안다. 그리고 와이파이는 거의 사람들의 생명줄과도 비슷한 단어가 되어간다. 여행자들은 "안녕하세요" 보다도 "와이파이 있어요?"라는 질문을 더 많이 할지도 모른다. 


최근에 한 회사의 캠페인 내용을 번역하는데 '우리가 항상 24시간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내용의 이야기가 나왔다. 'connect'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해서 나온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에서, 페이스북에서 우리가 하루 종일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또 반대로 남들이 무얼 하는지 꼭 봐야지만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걸까? 무엇보다 애초에 우리가 꼭 24시간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걸까?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시간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나'와 연결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과연 우리는 정작 나 '자신'과는 얼마나 연결되어 있을까. 


언제나 화려하고 흥미로운 일상을 보내는 인플루언서가 있다. 그녀의 일상을 24시간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보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녀를 진짜로 아는 걸까? 내가 그녀와 연결되어 있을까? 반대로 한 달에 한번 연락을 할까 말까 한 오래된 친구가 있다. 메시지를 보내면 그다음 날 답장이 오고, 이틀이 걸려서 이야기가 이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안다.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지 않아도 오랜만에 만나면 어제 만난 것처럼 편한 그런 사이다. 내 친구가 오늘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는 굳이 몰라도 된다. 우리가 1년 만에 만난다고 해도 둘 사이의 '연결'은 약해지지 않는다. 


최근 인스타그램 앱을 지우고 사용하지 않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내가 인터넷 뉴스를 보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내가 몰라서 큰일이 날 내용이라면 어떻게든 알게 될 것이다. 첩첩산중에 혼자 사는 것은 아니니. 하지만 그 외에 '굳이 몰라도 전혀 내 삶에 득도 실도 되지 않을 정보'들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뇌는 너무나도 가뿐해진다. 사람들에게 사이다랑 콜라 중에 뭐 마실지, 죽염 치약을 쓸지 미백 치약을 쓸지, 계란을 삶을지 구울지 처럼 정말 사소한 선택/정보를 계속해서 처리하게 하면 사소한 것들이라도 결정하고 처리하는데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나중에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불필요한 정보는 아예 차단하는 것이 뇌에 과부하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빌 게이츠는 1년에 한 번씩 아예 모든 것을 셧다운하고 자신만의 별장에 책만 들고 가서 책만 읽으며 생각하는 주간을 가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 또한 한동안 머리가 복잡할 때 템플스테이를 가야 하나, 어디론가 떠나야 하나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불필요한 정보를 차단하고 보니/인스타그램을 안 쓰고 보니 단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만의 공간이 생긴 느낌이다. 정보가 나를 집어삼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할 때만 켜서 이용한다는 이 느낌이 좋다. 어딘가 내가 기술에 지배당하는듯한 기분이 싫었는데 이제는 온전히 내가 컨트롤한다는 이 느낌이 좋다. 


어떤 것이 당연해지기 시작하면 그것에 대한 의문을 가져봐야 하는 것 같다. 

과연 왜 우리가 24시간 온라인이어야 하는 건지, 왜 항상 타인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건지 (혹은 모든 것을 보여주고 보아야만 하는지). 

타인의 정의에 상관없이 대체 그 '연결됨'이라는 것이 나에겐 무엇을 의미하는지. 




매거진의 이전글 그건 솔직한게 아니라 무례한거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