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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대신에 카오산 로드

by 에리카

일본에서의 유학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복학을 하고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화려했던(?) 도쿄 생활은 끝이 났고, 나는 어느샌가 다시 대구 고향집 내 방에 돌아와 있었고 한동안은 마음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건지 많이 우울했었다. 지난 2년 반 동안의 시간이 마치 꿈같이 느껴졌다. 그동안의 사진들을 보면서 내가 과연 도쿄에 있었던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우울해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다. 여기에서 최대한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최대한 누리자고 생각했다. 우선은 복수전공으로 일어일문학과를 신청했고,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일본에서 꽤 실력이 는 데다 JLPT 1급을 따기도 해서 자신감이 생긴 나는 수업이 점점 재미있었고 자연스레 성적도 쉽게 잘 받을 수 있었다. 전공 공부는 여전히 힘들었지만 다행히 일어일문학과 수업이 나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고, 성적도 보완해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호주로 떠났던 글로벌 챌린지,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도요타 TPS 연수 등에도 참가하면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역시나 나는 다시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니 2년이란 시간은 금세 지나갔고 어느덧 4학년 2학기, 공채시기가 다가왔다. 나는 그제야 뭘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하나 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다들 일찌감치 취업스터디라는 것도 하고 있었고 채용정보에도 빠삭했다. 그리고 대기업, 공기업, 사기업 할 것 없이 지원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기 시작했다. 취업할 때까지 100통까지도 쓴다고 했다. 놀라울 따름이었다.


난 여전히 대체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멍하니 있으면 안 될 것 같았고, 남들이 다들 달려가니 나도 왠지 같이 달려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일단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써봐야겠다는 생각에 몇몇 기업의 포털에 로그인을 하니 이런저런 정보를 입력해야 하고 마지막엔 지원동기를 써야 한단다. 그런데 도통 '남들이 다 하니까?'밖에 생각나지 않는걸 어쩌겠나. 주위에 물어보니 다들 그럴싸한 스토리로 소위 자소서가 아닌 자소설을 쓴다고 했다. 나도 시도는 해봤지만 이놈의 곧죽어도 내키지 않는건 못하는 성격 덕분에 자괴감이 들었다. 역시 이건 아니다란 느낌이었다.

그렇게 남들이 다들 한창 원서를 쓰고 있을 시기에 나는 처음으로 혼자서 해외여행을 가보기로 마음을 먹고 그나마 가까운 태국, 방콕행 티켓을 끊었다. 일주일 일정으로 떠난 방콕에서 나는 혼자 사원을 돌아다니다 만난 현지 여행 가이드와 친구가 되었고(혼자 다니던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의 뮤지션 친구들과, 그들의 여자 친구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카오산 로드에서는 발마사지를 받다가 옆에 앉은 재미교포와 그의 여자 친구와 친구가 되었고 함께 바 투어를 다니며 점점 일행이 늘어나는 마법(?)을 경험했다. 카오산 로드는 작은 지구촌이었다. 다들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고, 각자의 이야기만 들어도 밤새도록 수다를 떨 수 있었다. 모두 이곳에 찾아온 구체적인 이유도, 인종, 성별, 직업도 다 달랐지만 다들 무언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찾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 모두는 그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고 싶지는 않았기에 잠시 멈춰 서거나 혹은 돌아가는 길에 만난 인연이었다.


방콕에서 일주일을 지내며 느낀 건, 나는 여전히 호기심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이었다. 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세계를 보고 경험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외에서 일을 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일단 한국에서 경력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여행에서 돌아와 내가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서울의 한 광고회사에서 일본 시장에 한국 콘텐츠 사업을 마케팅하는 포지션을 발견해 면접을 보고 합격을 했다. 월급은 정말 적었지만 경험을 쌓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그 일을 하며 서울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회사는 논현동이었지만 방은 신촌에 얻었다. 덕분에 매일 아침 지옥철을 경험했고 훗날 싱가포르의 출근길은 가뿐하게 느껴지는 트레이닝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의 가장 큰 소득은 업무 경험이 아닌 신촌에 있는 한 일본어학원에서 열린 모임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들이다.

정말 추웠지만 친구들과 즐거웠던 2012년의 겨울. 무려 8년전 이라니!
일본 출장 때마다 만나고 친구의 결혼식에도 함께 할 수 있었다

단기 어학연수로 서울에 왔던 리츠코, 마리, 하루카, 카오리 언니와 신촌의 일본어학원에서 열린 그 이벤트 날 만난 것은 정말 감사한 인연이다. 같은 조로 구성되어 잠시 이야기를 나면서 급속히 친해진 우리는 그 날 이후로 '팀 서울'이란 모임을 결성했고 함께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서울 구석구석을 다니며 즐거운 추억들을 가득 쌓았다. 짧은 연수기간 후에 각자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내가 일본에 출장을 갈 때마다 다 같이 모이기도 하고, 카오리 언니의 결혼식에도 참석하기도 했다. 친구들과는 지금도 여전히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에서 다닌 회사는 술을 좋아하는 사장 때문에 점심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시는 건 기본이었고, 회의를 하면서 창문도 열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 걸 참으며 고문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새벽 세네시까지 남아서 PT 작업을 하던 30대 초반이지만 이미 탈모가 시작되었던 대리, 히스테리가 심했던 고양이를 사랑하는 과장 등 - 글로 쓰고 보니 마치 영화 속 캐릭터들 같지만 실제로 이런 환경에서 일을 해야 했다. 아마 네 달 정도 버텼을까? 소중한 내 젊음을 이런데서 낭비해서는 안된다란 결론을 내렸고 퇴사를 결정했다. 결과적으로는 퇴사할 때 두 달 치 월급을 체불한 마지막까지 징한 악덕업주였지만 덕분에 나는 한국에서 다시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해 준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런 회사를 경험하고 난 후에는 웬만한 환경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역시 살면서 쓸데없는 경험은 없는 것!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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