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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쭈꾸미 Aug 23. 2021

엄마와 아빠가 만나게 된 이야기

  엄마는 꽤 철부지 딸이었다. 엄마의 엄마는 미운 년 떡 하나 더 주는 셈 치며 용돈을 쥐어주며 말했다. "우체국 사거리에 N시까지야, 어디 딴 길로 새지 말고".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알았어, 알았다고" 하며 길을 나섰다고 한다. 술을 워낙 잘 마시고 노는 걸 좋아하는 엄마는, 누나 말 잘 듣는 남동생에게 "나 오늘 엄마한테 용돈받았으니까 맛있는거 먹자. 나 금방 다녀올 테니까, 일번가에서 놀고 있어" 라며 으름장을 놓고는 우체국 앞 횡단보도를 건넜다. 근데 우체국 사거리라는 게 어느 코너에서 볼지 정하질 않아 처음에 횡단보도를 엇갈려 갔다고 한다. 아빠는 엇갈렸음에도 그때 벌써 엄마한테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엄마는 초면에 다짜고짜 더우니까 시원한 맥주나 마시자 했다. 맥주 한잔에 취하는 남자임에도 첫눈에 반했던 지라 좋다고 했다고 한다. 엄마는 빨리 자리를 파하고 남동생이랑 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얘기를 할 적엔 꽤나 기분이 좋아 보인다.

  결혼하고 나서도 대화의 흐름을 보다 보면 예전과 별로 다를 게 없다. 매번 툴툴거리며 아빠 맘 다 받아주는 엄마랑, 표현은 서툴지만 항상 일편단심인 아빠를 보며, 직접 겪어본 일이 아님에도 옛이야기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참고로 누나 말 잘 듣는 남동생은 나중에 누나가 딸 셋 낳아 힘들 때 매번 와서 조카들이랑 놀아주고, 바쁜 아빠 대신 운동회도 같이 가주는 착한 동생인데, 결혼을 못했다. 누나가 좀 덜 부려먹었으면 그 시간에 좋은 짝 찾아 결혼하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엄마 딸인지라 어차피 못한 거 앞으로도 누나 곁에 쭉 있었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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