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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자 Mar 07. 2019

어느 결정장애자의 하루

  '짬짜면'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비단 자신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날 중국집에 갔더니 아예 메뉴판에 '복짜면', '탕짜면' 등 다양한 조합이 한면을 가득 채우는 것을 보고 얼굴을 모르는 '결정장애자'들에게 묘한 동지 의식까지 느꼈다.


  그녀의 결정 장애는 중국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러 가서도 메뉴판을 한참을 스캔하고 고민한다. 사실은 직장 또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폭풍같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기분을 바꿔줄 '기특한' 메뉴를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먹고 마실 때, 정확히는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때 생각보다 기분이 전환될 때가 많이 있으므로.

 

 안다. 누군가는 너무나 예민하고 혹은 특이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비단 음식 뿐만이 아니라 나이가 나이를 한살한살 먹을수록 인생에서 순간의 '선택'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보고, 인생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이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선택 앞에서 두려움은 커졌다. 차라리 뭔가를 모를 때가 편했다. 인생의 어려움을 알고 겪을수록, 그녀의 결정 장애는 더 심해졌다.

 

 사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책임감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채로 가만히 둔 적도 많다. 대학때 무슨 과를 가고,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어떤 직장에 들어가고, 누군가와 교제하고 결혼하는 것. 인생의 그 어느 순간에도 쉬운 선택이란 없었다.


 누군가의 조언을 참조할 수는 있지만, 결국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의 순간은 늘 외롭고 또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선택지 속에 놓이고, 또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지만, 기회 비용에 대한 아쉬움 또한 크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욕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가지 않은 길,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털어내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 유명한 타로마스터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재벌이나 연예인 등 부유층을 주로 상대하는 꽤 인지도가 높은 타로마스터였다. 어느 대기업 회장은 매달 1000만원을 그에게 주고 자신이 원할때마다 타로를 본다고 했다. 회장이 그에게 주로 묻는 것은 어떤 사업을 새로 시작할 것인지, 접을 것인지 기로에 섰을 때다.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연예인들이 그를 찾을 때도 동시에 두 작품 가운데 한개를 선택을 해야할 때나 어떤 역할을 맡을지 말지 선택을 해야할 때다. 돈이 많아 한번쯤 실패를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재벌도, 이미 인지도가 높아 스타의 반열에 올라선 배우도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과 판단력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책상머리에서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알고 자기의 길을 잘 찾아가는 판단력일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이해해야한다. 그리고 두렵더라도 선택을 하고 잘되든 못되든 '삶은 모험'이라는 생각으로 그 순간을 즐기고 결과를 덤덤하게 받아들여야한다. 너무 생각이 많거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 완벽주의자들이 결정 장애를 겪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대로 살려면 매 순간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수용하는 자세가 되야한다. 사실 미래는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에 선택의 결과는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때문에 당신의 선택은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신중하게 선택하고, 혹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다. 어떻게 보면 그녀가 선택에 겁을 내는 것도 혹시 실패했을 때 감당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인 인상, 매순간 완벽한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다.

 

 사랑과 결혼의 문제도 그렇다. '혹시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실제로 보이는 것과 전혀 다른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지?', '혹시 나에게 속이는 것은 없을까'라는 두려움에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물론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진짜 이 사람을 사랑하는가. 이 사람도 나를 진짜 사랑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때다. 그럴 때 우리는 주변의 친구나 지인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람과 나의 관계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자신이다. 그래서 당신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자존감을 확보했다는 가정하에, 외롭더라도 사랑의 선택도 본인 스스로 내려야한다. 때로는 당신이 아무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수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에 부딪힌다. 회사에 버스를 타고갈지, 택시를 타고갈지부터 어떤 옷을 입고 누구랑 점심을 먹을 것인지 등 소소한 것부터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지, 그렇다면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해야할지 같은 거시적인 일까지. 어쩌면 살면서 수많은 시행 착오 속에서 삶에 예행 연습은 없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았기에 매사 신중한 당신은 어느 순간 '결정장애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택을 통해 삶을 사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기 때문에 조금은 외롭고 힘들더라도 작은 선택부터 나에게 맞는 결정을 내리면서 사는 연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누구나 실패하기 싫고, 나이가 들면서 '모험'은 더욱더 하기가 싫을 때가 있다. 하지만, 때로는 담담하게 대범하게 나의 길을 스스로 닦아가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리고 순간 실패해보일지라도 스스로 격려하면서 걸어가는 것도 필요하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이상,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 보다도 어쩌면 그 이후에 따르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길이 남이 보기엔 화려하거나 곧고 멋진 길이 아니더라도, 때로는 실패로 점철된 길일지라도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내가 만들고 걸어 온 나만의 길이자 역사이기에. 혹시 지금 마음 속에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는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가고 싶은 길이라면 실패의 두려움을 먼저 떠올리지 말고 용기 있게 한번 '저질러' 보는 것은 어떨까. 때로는 선택의 두려움이 아닌 선택의 쾌감을 느껴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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