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만나는데, 돈 몇백만원이 아까워요? 돈 모아서 뭐해요 이런데 쓰는거지”
수화기 너머의 결혼정보회사(이하 결정사) 상담실장이란 사람은 이미 내 누군가의 마음 속에 몇번이나 들어갔다 나온 사람 같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속에 들어가 마음을 조정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한껏 까칠하게 “괜찮은 사람이 진짜 있기나 한거냐”고 꼬치꼬치 묻던 희서씨는 점차 말꼬리가 흐려졌다.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눈치챘는지, 실장은 한층 공격의 수위를 높인다.
“또래들이 해주는 소개팅으로는 사람 절대로 못 만나요. 이왕이면 원하는 조건을 맞춰서 만나보는 게 더 성사 확률이 높지 않겠어요? 우리 회사는 남성 회원들 풀이 좋으니까 한번만 나 믿고 가입해봐요. 내가 특별히 가입비도 싸게 해주고 횟수도 늘려줄게”
해가 거듭될수록 세월은 사람의 만남이 절대로 인위적으로 되지 않는다는 보편적인 명제를 알려줬건만, 그럴수록 희서씨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나이는 한살한살 먹어가는데, 남자를 만날 기회는 줄어들고 앉아서 나이만 먹고 있어야 된다니. 직접 내가 원하는 사람을 찾아나서야지’
하지만 회사는 희서씨를 비롯한 그런 여성들의 조급한 심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한국 사회처럼 결혼과 출산이 여자들이 완수해야 하는 임무이고, 게다가 시집을 잘 가는 것이 성공으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혼기가 꽉 차거나 넘어선 여성들이 갖고 있는 무의식적인 불안감을 제대로 저격한 것이다.
"혹시 좋은 사람을 못만나면 어쩌냐"는 마지막 질문에도 상담실장은 “그래서 희서씨는 결혼 안 하실거에요? 안할거면 안해도 되요. 우린 상관없어요.” 이젠 훈계를 너머 으름장까지 놓는다. 분명히 내가 쓰는 돈인데 어느개 주객 전도가 되버렸다. “네.. 가긴 가아죠.”
그래서 시작된 결혼정보회사의 만남. 처음에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하던 커플매니저는 몇백만원의 가입비를 내고 나니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나이를 생각해서 눈을 좀 낮춰라’, ‘너무 조건이 까다롭다’는 류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우여곡절끝에 증권회사 직원과 만남을 가진 희서씨. 2차로 맥주집에 가서 술이 몇잔 돌고나니 그 남자는 속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키 크고 얼굴이 멀끔했던 그는 결혼정보회사로부터 회당 60만원을 받고 소개팅 알바를 하러나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몇백만원의 비용을 지불했는데, 상대는 알바로 나왔다니’ 소개팅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사람과 잘될 일도 만무하고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기분이 나빠 매니저에게 항의를 하고, 환불을 요구했지만 업체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희서씨는 낸 돈의 절반밖에 돌려받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년 뒤, 우연히 지인을 통해 알게된 결정사 직원 A씨를 알게된 희서씨는 처음엔 가입 권유를 받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불신감이 커질 대로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A씨는 과거 그녀가 겪은 일은 아주 이례적인 경우라며 안심을 시켰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해보라고.
‘진짜 그 때는 운이 안좋았던 걸가. 이번엔 지인 소개니 다르겠지.'
’혹시나‘하는 마음에 다른 결정사에 가입하게된 희서씨.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만남의 기회가 있다는 말에 한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전화가 온 커플 매니저는 내 편에서 이야기해 주는 척 했지만, 실제로 주선 자리에 나가보면 그녀가 말한 이상형과는 전혀 딴 판인 남성들이 주로 앉아있었다.
나중에 지인을 통해서 건너건너 들은 이유는 이랬다. 그녀가 말한 조건에 부합하는 남자는 거의 없기 때문에 상대방이 마음에 들만한 경우에 만남을 주선했다는 것이다. 희써씨는 “커플 매니저가 판단한 내 등급이란 게 이 정도였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몇달 뒤에 벌어졌다. 커플 매니저는 해당 결정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나이대가 비슷한 공무원의 만남을 주선했고 희서씨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수락했다. 남자가 자신이 거주하는 과천정부청사 인근으로 오라고 할때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순순히 응했다. 하지만,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온 것부터 뭔가 이상하긴 했다. 희서씨는 언제나 그랬듯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최선을 다해 꾸미고 나갔다.
2차로 간 칵테일바. 이번에도 가입하게 된 이유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게 두 사람의 유일한 공통점이니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주제였다.
“난 청사앞에서 나눠주는 찌라시를 주고 60만원에 가입했어요. 재연장하면 30만원, 나중에는 공짜로도 가입이 가능하던대요. 그냥 혼자 사는게 심심하고 외로워서 가입했죠.”
희서씨는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그 사이 이미 뉴스에서 결혼정보회사의 사기 행태가 숱하게 고발된 상태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희서씨가 연락을 끊자 그 남자는 집요하게 따라붙었고, 결국 그녀가 사는 곳 근처로 오겠다고 말했다. 일이 늦게 끝난다고 하니 주변의 숙박업소에서 기다릴테니 그곳에서 밤을 함께 지내자는 말까지 했다.
요즘은 온라인 만남 사이트에서 원나잇을 제의하는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신원이 보장된 사람에게 황당을 제안을 듣자 희서씨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느냐”고 따지니 그의 대답은 너무나도 쉬웠다.
“희서씨도 그럴려고 가입한거 아니에요? 본인도 좋으면서 왜그래요.”
이건 황당담을 너머 고소감이었다. 바로 커플매니저에게 항의 전화를 하니 몇배 황당한 답이 돌아왔다. “제가 담당하는 손님이 아니고, 우리가 성격까지 알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지금 무슨 일을 당하신 것도 아니잖아요.”
가입시킬때는 좋은 인연을 만나게 해준다고 수백, 수천만원의 돈에, 그 동안 살아온 인생을 자기네 업체 잆맛대로 등급을 매기더니. 한다는 소리치론 너무 무책임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결혼중개업이 그렇게 유독 성업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녀는 여성들이 갖고 있는 결혼의 조급함과 불안감을 이용해 돈벌이에 이용하는 것도 화가 났지만, 나중엔 그녀를 그렇게 불안함으로 내몬 사회 시스템, 그리고 거기에 끌려갈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나약함에 너무나 큰 화가 났다.
그리고 커플 매니저의 마지막 말 “우리가 (상대의) 성격까지 알 수는 없잖아요”라는 말이 머리를 멤돌았다.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까지 보증할 수는 없다는 그 말.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지불식간에 신데렐라를 꿈꾸고 조건 중심 결혼 문화에 자신도 모르게 동조한 것에 일말의 책임은 있다는 반성도 들었다.
물론 주변에 대놓고 밝히는 경우를 보지는 못했지만, 아주 가끔 결정사를 통해서 결혼을 했다는 이들도 있다. 수없이 많은 만남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 그 역시 만남의 한가지 방법일수도 있다. 물론 확률이 높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 방법을 통해 반쪽을 만난 사람들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만남의 기회에 절실한, 또는 결혼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의 마음에 두번 상처주는 일은 정말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이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결혼에 대한 혐오감까지 조장하는, 누군가의 인생에서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기도 한다. 마치 희서씨 처럼 말이다. 오늘따라 그녀는 할머니가 늘 강조하시던 말씀하시던 명언이 내내 맴돌았다.
“사람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랑, 다른 사람 마음은 절대로 갖고 장난 치는 것이 아니여. 다른 사람 눈에 눈물나게 하면 니 눈에는 반드시 피눈물 나는 것이니께. 반드시 명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