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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자 Apr 19. 2019

혼자서 아파본 적 있나요?

"간호원! 간호원! 나 수술이 잘못된 것 같애! 당신들 나한테 뭔가 잘못한거 아니야?"
 
 건너 침대의 아저씨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고, 저멀리 할머니는 신음소리를 내며 눈물을 흘렸다. 앳되 보이는 간호원이 수많은 사람들의 침상 사이를 분주히 다니면서 수술 뒤 마취를 막 깬 사람들의 말에 대꾸를 해주고 처치를 해줄 뿐이었다.


 생애 첫 수술 회복실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눈을 뜬 나는 주민등록번호, 병원 환자번호, 내 휴대폰 번호 등 일단 내가 아는 모든 번호를 머리에 떠올렸다. 마취로 인해 혹시 머리가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마취가 서서히 깨면서 너무 아픈 고통이 몰려왔다.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나오지 않았고 겨우 손을 들어 아프다는 표시를 했다. 간호원은 익숙한 듯 "아프세요? 조금 있으면 괜찮아 질 거예요."라고 말했다. 뭔기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평소 에너지가 넘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드라마에서나 봤던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맞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낯설었다. 수술 전날 엄마와 단둘이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 어디 놀러온 것 같지 않아?'라고 했던 여유는 수술 당일에 싹 사라졌다. 공복에 언제 수술할지도 모르는 공포를 12시간이 넘어 24시간 가까이 겪으니 신경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물혹인줄로만 알고 있던 갑상선 종양이 수술을 해서 암 여부를 판단해야한다고 했을 때 하늘은 노래졌다. 간단힌 결절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악성 종양으로 판단돼 갑상선을 전절제했을 때의 충격과 상실감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그동안 그런 큰 일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의 일이 되고 보니 오히려 담담하게 오롯이 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막상 수술이라는 큰 일을 앞두니 그 사실을 주변에게 알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전화번호의 수많은 연락처와, 페북과 인스타에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그런 중대 사실을 공개하고 싶은 사람은 생각보다 적었다. 내 삶의 위기의 순간에서 힘이 되었던 친구, 만나면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 나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의 번호에 손이 먼저 갔다.


 '내가 혹시 마취에서 깨어니지 않으면 말이야...'

 지인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타박을 했지만, 전화나 문자 보다 누군가를 직접 만나서 사람에게서 오는 위로와 격려는 생각보다 힘이 쎘다. 물론, 수술 사실을 알렸음에도 연락이 되지 않는 누군가도 있었다. 마음의 상처는 생각 보다 꽤 오래갔지만 관계 정리의 계기라고 생각했다.

 

  뜻하지 않은 삶의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인간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한달음에 달려와준 친구들도 있었고, 놀러 다닐 때는 친했지만 갑자기 연락이 뚝 끊긴 친구도 있었으며, 관심을 보이다가 수술 사실을 알고 연락 뚝 끊은 남자도 있었다.

 

 아프니 마음이 약해진 탓도 있지만, 인간 관계의 허무함이 물거품처럼 찾아들었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남동생도 마지못해 입원실에 들렸고, 물론 엄마의 지시가 있었다지만 올케는 아이들을 핑계로 끝내 문병을 오지 않았다. 끝까지 곁을 지킨 것은 늘 악다구니처럼 싸웠던 엄마였다. 문득 병실 침대 옆에서 쓰러져 자는 엄마의 손을 본 순간, 나와 닮았다는 생각에 눈에서 눈물 한방울이 똑 떨어졌다.


 병원에서 퇴원 서류를 작성하는데 간호원이 물어보지도 않고 보호자란에 '배우자'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동안 주변에서 귀에 딱지가 않게 들었던 결혼의 이유들이 머리를 스쳤다. '아플 때 약사다 줄 사람이라도 있어야지', '아프면 병원에 데려다 줄 보호자라도 필요하잖아'


 하지만, 엄마의 수술날. 예상치 못한 광경에 만감이 교차했다. 엄마는 수술 당일날 아침까지 아빠의 아침상을 차리고 나서야 병원에 갔다. 결혼한 남동생은 수술 전날까지 엄마의 수술 날짜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엄마는 남자들에게 기대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날 엄마의 보호자는 딸인 내가 되었다.

 

 결혼을 해도, 남편과 아들이 있어도, 엄마는 아플 때 혼자였다. 힘든 수술을 마치고 나온 침대 위에 엄마의 측은한 얼굴을 보고 눈물이 아른거렸다.


 '그래 아플때는 누구나 혼자야. 누구에게 기대기 보다는 할 수 있는 스스로 준비를 잘 해야지. 평소에 병원도 자주 가고 건강 관리 잘 하고.'

 

 그와 동시에 병원을 둘러보니 유독 '간호, 간병 통합서비스', '입원 환자를 위한 컨시어지 서비스' 같은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문병 온 절친과 함께 병원 복도를 거닐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는 혼자 사는 사람들 워낙 많아서 의료 서비스도 많아질거야. 우리 너무 걱정하지 말자. 나중에 서로 아플 때 보호자 해주면 되지."

 

 물론 남은 남일 뿐이라지만, 설사 가족이라고 해도 다 내 마음 같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생로병사의 길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위기의 순간을 대비하기 위해 보험처럼 누군가를 만난다면, 목적이 주가 된다면 그런 관계는 오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꼭 이성이나 가족이 아니라도 그 어렵고 험난한 길에 서로 힘이 되고 함께 이겨나갈 수 있는 진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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