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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자 Apr 05. 2019

"제 나이가 왜 궁금하신데요?"

 "제 나이가 왜 궁금하신데요?"

 

 민영씨는 오늘도 이렇게 묻고 싶은 것을 속으로 꾹 참았다. 제발 요즘말로 나이에 대해 '안물, 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이라는 식의 반응을 하면 좋으련만, 그녀는 오늘도 나이에 대한 예의 없는 질문을 받았다.


 "여자는 '2말 3초'야. 대학교 2학년 말이나 3학년 초에 남자 친구가 안생기면 좀처럼 연애하기 어렵다고."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남자 선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때 민영씨는 속으로 코웃음쳤다. '뭔 소리야, 누가 연애에 나이 상한제라도 정해놓았을라구. 그럴리가 없어.'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렴풋하게나마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남자 선배들은 나이가 많건 복학생이건 만남에 크게 상관이 없었지만, 여학생들은 유독 저학년에게만 미팅이나 소개팅이 밀려들었다. 물론 4학년때는 취업이라는 관문이 있기에 누군가를 만날 심적 여유가 없다는 말로 위안을 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대학교 3학년 말부터 '나이가 많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스물 넷. '애기같은' 나이. 하지만 민영씨는 젊디 젊은 20대 중반부터 늘 '나이가 많아서'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그것이 얼마나 자신의 능력을 제한하는 말인 채도 모른 채. 스물 다섯이 되니 세상에서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운운하며 여자 나이가 스물 다섯이 넘으면 '가치가 없다'는 식의 말까지 나왔다. 여성의 나이에 대한 편견에 동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암묵적인 사회적 인식에 자신도 모르게 휘말리고 말았다.


 30대에 들어서자 '계란 한판’ 등 여자 나이에 섞인 자조적인 표현은 피해가기 어려울 정도로 도처에 지뢰밭처럼 깔려 있었다. 특히 재수를 하고, 대학원 졸업 후 뒤늦게 입사한 민영씨는 늘 나이에 대한 컴플렉스에 시달렸다. 아니 차라리 '죄의식'에 가까웠다. 회사 남자 상사는 어린 여자 직원에게 늘 호의적이었고, 가끔 술에 취하면 '넌 나이가 어린게 강점이야'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민영씨는 귀를 의심했다. 가부장적 문화가 낳은 이른바 '영계문화'를 목도하게 된 그녀는 속부터 부글부글 끓었다.

 

 '무슨 사람이 치킨집의 닭이야? 대체 여자는 왜 나이가 많은게 죄가 되어야 하는데!'


라고 되뇌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안좋은 점도 많다. 체력도 떨어지고 열정도 예전같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대한 이해력과 대처력, 경험은 더욱 쌓인다. 이를 무시하고 숫자로만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사회적 낭비이자 누군가에겐 '폭력’에 가까운 일이다. 

  

 연애와 결혼에도 늘 ‘나이'는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부상한다. 소개 받을 때도 그 사람 보다는 상대방 여성의 나이부터 먼저 묻는 이들이 있다. 물론 요즘에는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연상 연하 커플이 많이 등장하면서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지만, 여전히 명절때면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 결혼도 안하고 그러고 있느냐’라는 레퍼토리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가하면 띠동갑에 한참 나이 어린 여성과 결혼한 남자에게 '능력있다'는 표현을 거리낌 없이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외에 나가보면 유독 한국에서 이렇게 '나이'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이가 생각보다 적으면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이...'라며 나이를 위계 질서나 권위주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나잇값이나 좀 해라'면서 나이로 인한 책임과 족쇄를 채우기도 한다. 

 

 외국에 나가면 유독 20~30대 한국 젊은 여성들이 둘셋이 여행을 하는 것이 눈에 자주 띌 것이다. 요즘에는 여행을 갔다가 아예 취업이나 이민 등 외국 거주를 결심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그곳에서는 나이라는 잣대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주는 시선 속에서 ‘해방감’을 느낄 수 있고 자신감 있게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몇 살이냐'라고 묻지 않는다. 나이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보다 젊어보인다'거나 '동안'이라는 말도 찾기 어렵다. 한때 한국에서는 아이같은 동안 얼굴에 몸매는 글래머에 가까운 '베이글녀'라는 말이 유행했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그 프레임에 맞추기 위해 지금까지도 동안 관련 산업은 성업 중이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제 나이로 보여요'라는 말은 욕처럼 들리기도 한다.

 

 프랑스인 남편과 결혼해 파리에서 살고 있는 에세이스트 노구치 마사코가 쓴 '프랑스 여자들은 80세에도 사랑을 한다'에서는 나이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프랑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나이를 묻지도 않고, 자신의 나이를 말하지도 않으며 오래 사귄 사이에도 서로의 정확한 나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그녀의 프랑스인 남편은 어느 날 신문 인터뷰 기사에 늘 사람 이름 뒤에 늘 괄호안에 숫자로 나이를 적는 것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기 물었다. 프랑스인에게는 사람과 나이를 세트처럼 여기는 한국이나 일본의 문화가 의아했던 것이다.

 

 마사코는 50세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을 때 파티 내내 나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놀랐다고 했다. 다른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도 아무도 그녀의 나이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파티의 주인공은 그녀의 나이가 아니라 사람이므로.

 

 순간 이제 더이상 생일 파티를 하기 싫어졌다고 선언한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나이를 먹는게 서러워서, 생일 케잌에 초를 흐드러지게 꽃는게 민망해서가 이유였다. 어떻게 보면 다른 곳이라면 여자로서 겪지 않아도 될 수도 있었던 나이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을 그동안 겪으면서 산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라도 나이가 적든 많든, 나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람 자체를 바라볼 수는 없을까. 여자가, 나아가 인간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죄가 아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더욱 성숙하고 아름다워지는 과정이다. 그래서 오늘은 나이라는 숫자에 굴복하며 위축되기 보다는 나이에 맞서 당당해지자. 누군가 초면에 예의없이 다짜고짜 나이를 물어본다면 절대로 당황하지 말고 이렇게 똑같이 받아쳐보자. 

 

 "제 나이가 왜 궁금하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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