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결혼을 못한 경우가 많지만, 여자는 결혼을 안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남자 A)
“그래요? 왜요?”(여자 A)
“남자는 사랑에 상처를 겪었다거나 실패해 시기를 놓친 사람이 많지만 요즘 여자들은 굳이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남자 A)
“그렇죠. 예전에는 여성에게 경제권이 없어서 혼기가 차면 무조건 등 떠밀리 듯 시집을 가는 경우가 있었지만 여자들의 사회 생활이 늘어난 요즘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여자 B)
우연한 자리에서 만난 ‘만혼남녀’들의 대화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한 남성의 제법 흥미로운 분석에 한쪽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동의하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짓는 남자들도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맞짱구를 치며 동감을 표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물론 이들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결혼을 못한 여자, 결혼을 안한 남자도 있을 수 있고 무엇보다 요즘 시대에 결혼은 선택이지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고녀’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왜 아직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것일 것이다. 이에 대한 여성들의 답은 대부분 비슷하다. 독신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억지로 떠밀리 듯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고고녀’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통념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의 경제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지만 그만큼 평등한 인권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이유로 3포 세대, 5포 세대 등 분석을 쏟아내고 정부에서는 보육 시설 부족 등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그녀들의 진짜 속내와는 거리가 멀다.
일단 사회가 일방적으로 정해 높은 ‘결혼적령기’부터 현실과 괴리가 있다. 과거 여성들이 대부분 전업 주부이던 시절 출산이 가장 큰 임무이던 시절을 고려하면 서른 이전에는 반드시 결혼을 햐야했지만 여성들도 적극적인 사회 생활을 하는 요즘은 상황은 달라졌다.
대학원 등 석사를 취득하거나 사회 경험을 하고 한두번 이직해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회사에서 자리를 잡는 연한이 최대 서른살 안팎이다. 여성들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평생 다닐만한 안정된 직장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3~5년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과거 여성의 출산만을 미덕으로 여겼던 시기에 적용되던 ‘20대 결혼 적령기’ 설은 이미 효력을 잃었다. 그녀들에게 결혼은 사회에서 부과한 의무가 아닌 선택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시대가 변해도 요지부동이누불평등한 시댁 문화를 꼽는다. 최근 방영중인 JTBC 드라마 ‘미스티’에서 방송사에서 국장에게도 맞짱을 뜨면서 누구에게도 단 한번도 물러선 적이 없었던 앵커 고혜란(김남주)은 아기를 갖지 않는다며 이혼을 종용하는 시어머니 앞에서는 바로 무릎을 꿇는다. 재력을 갖춘 시댁에서는 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시아버지 조차 그가 앵커가 되고 나서야 겨우 그녀의 얼굴을 한번 봐줬을 뿐이다. 일은 그녀에게 최소한의 자존심이었고 고혜란에게 일은 인생의 큰 부분이었지만 아기를 갖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녀는 시어머니 앞에서 죄인이 된 것이다. 극중에서 30대 후반인 그녀가 만일 결혼하지 않은 싱글이었다면 과연 상황은 어땠을까.
물론 드라마상의 극단적인 장면일 수 있다. 하지만 우연한 자리에서 만난 한 친구의 이야기는 이런 드라마가 사실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갖게 했다. 발랄하고 밝은 성격의 친구는 집안일은 물론 시누이들까지 잘 챙기는 똑순이였다. 하지만 최근 가족들과 해외 여행을 떠난 자리에서 시어머니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들었다. 관광지를 다니면서 영어로 통역을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우리 아들보다 잘난게 없는데 잘난 척을 한다”고 꼬투리를 잡았고 욕설을 퍼부은 것이다. 수십년전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2018년에 일어난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지만 여전히 시댁 식구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그 친구는 중간에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남편때문에 더욱 힘들어했다.
시대는 4차 산업 혁명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변하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있다면 바로 이 시댁 문화다. 시집살이는 과거 농경 사회에서 딸을 시집 보내면서 식구들의 입 하나도 덜려고 하는 풍습에서 비롯됐지만 수백년이 지나도록 불평등한 관행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아무리 ‘알파걸’로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여성이라도 결혼을 하는 순간 시댁에서는 지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굳이 '아가씨', '도련님'이라는 용어를 언급하지 않아도 말이다.
과거에야 남편 덕에 먹고 산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하지만 남자들과 똑같이 교육받고 당당하게 경쟁해 경제 생활을 하는 여성 조차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 수많은 ‘고고녀’들은 결혼 앞에서 망설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인생에서 사랑이 중요하지만 과연 결혼이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모든 것을 감내할 정도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또하나 결혼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는 가부장적이 사고다. 요즘따라 더욱 '한국에서 결혼하면 100% 여성이 손해’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 것은 아마도 아직도 집안일과 육아, 시댁 챙기기기 등은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남성은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던 역할을 아내가 이어 받아하기 때문에 별로 손해볼 일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엔 집안일은 남녀가 평등하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도 많이 퍼져있지만 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과중한 의무에 놓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결론적으로 그녀들이 아직 결혼을 망설이고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아직 과거에 머물러있는 여성에 대한 인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는 편가르기나 페미니즘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다.
최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번지는 '미투'(me too) 열풍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여성들에게 있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지금은 여성을 가사와 출산의 프레임이 아닌 행복 추구권을 지닌 한 명의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각 교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유를 꿈꾸고 사람답게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권리이니까.
Q. 당신이 지금 결혼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