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프랑수와즈 사강의 첫 책
프랑수와즈 사강은 18세에 첫 소설인 <슬픔이여 안녕>을 썼다. 고심한 흔적도 없이, 어쩌면 내가 지금 이렇게 리뷰를 쓰는 태도로 조금은 무심한 듯, 그러나 잘 쓰고 싶은 마음으로. 아니, 잘 쓰고 싶은 마음 따위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타고난 감각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가락으로 흘러나왔을 테니.
힘을 빼고 쓴 것 같은 글인데, 읽는 내내 작가와 함께 감정 기복을 겪었다.
책 속의 주인공 17세 세실(Cecile)은 아빠와 아빠의 애인과 셋이 휴가를 떠났다. 몇 주간 세실이 할 일은 오로지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해변에 누워 스르륵 잠이 들었다가 뜨거운 햇살에 다시 눈을 뜨는 일 정도였다. 평화로웠다.
나는 모래 위에서 뒹굴기도 하고, 또 모래를 잔뜩 움켜쥐어 손가락 사이로 조금씩 뿌려 보기도 했다. 그것은 마치 부드러운 갈색의 한오라기 실처럼 보였다. 나는 그것이 세월처럼 흘러 지나가 버리는 것이라고 자신에게 속삭여 보았다. 그것은 매우 편리하고, 안이한 생각이었으며, 또 즐거운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여름인데 뭐....... 하면서.
여름인데 뭐......라고 나도 중얼거려보았다. 곧 다가오는 여름에는 바다의 모래를 맨발로 밟는 자유를 느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모래 위에 얇은 스카프 한 장 깔고 엎드려 책을 읽다가, 맥주를 마셨다가 하는 등의 아무것도 아닌 일에 행복해하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기도 하면서….
세실에게는 휴가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인연도 행운처럼 나타났다. 시릴이라는 이름의 그 아이는 가끔은 격렬하게, 그러나 다정하게 세실을 안아주었다. 정의할 수 없는 무형의 그 어떤 형태로, 휴가의 기쁨과 몽롱함과 사랑(이라고 부르자)을 이어나갔다.
세실의 자유분방함은 아빠에게 온 것이었다. 그들의 휴가지에 안느가 초대되었다. 이로써 아빠의 애인은 둘이 되었지만, 애인이라 부르기에 안느는 꼿꼿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무언가가 더 있었다.
그녀는 고상한 취미와 모범적인 규율을 원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동작, 상처받은 침묵, 엄숙한 표정 같은 것들 속에서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휴가는 매우 충격적이고 동시에 번거롭고 결국은 굴욕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논리가 결국은 옳다는 것은 우리 자신도 알고 있었으므로......
세실은 안느를 동경했지만, 동시에 싫어했다. 한없이 순한 양처럼 순응하고 싶다가도, 미워졌다.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버렸고, 후회와 공허의 눈물을 흘린 건 잠시. 상쾌한 눈물이 되었다고 표현한 건, 다시 세실이 추구하는 자유로운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세실에게 찾아온 건 슬픔이었다.
이제는 세실에게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슬픔이여, 안녕!?
언제부터인가 나는 울적하면서 한편으로는 노곤하고 달콤한 상태가 뒤섞인 묘한 감정 상태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몰라도 나는 이 어설픈 감정을 ‘슬픔’이라는 거창하고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러야 할 것인지를 놓고 주저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너무나도 완전하고 이기적인 감정이어서,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슬픔처럼 느껴지는 감정은 언제나 고상하게 느껴지곤 한다.
사강은 책 속의 17살 철부지 주인공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과 닮아있다. 18세 첫 소설이 불러일으킨 센세이션. 그 뒤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녀의 삶이 있었다. <슬픔이여 안녕>과는 다르지만 결이 비슷한 듯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역시 세밀한 감정 묘사에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사랑과 사랑, 사랑을 쓰는 사강. 사강의 다음 작품으로 <패배의 신호>를 읽어봐야겠다.
‘사랑을 한다’라는 말은 그 자체로서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제는 그 의미와 분리시켜 이해한다는 것이 힘들게 되었다. 이 ‘한다’라는 단어는 물질적이고 실증적인 것인데 반해, 또 한편으로는 시적이고 추상적인 ‘사랑’이란 말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만족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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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사랑은 가장 다정한, 가장 생생한, 그리고 가장 정당한 것이니까...
그러므로 그로 인해 빚어지는 대가는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