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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Apr 15. 2023

무뚝뚝한 수줍음

내향과 외향 그 사이 어디쯤






   수줍음이 독이 된 듯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글을 읽었다. 작가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인데, 이런 성향 때문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움을 받곤 한다는 것이다.

수줍음이라는 단어로 떠올리는 이미지는 보통 해맑은 어린아이가 배시시 웃는 모양새, 아가씨가 다소곳이 앉아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모양새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작가는 ‘무뚝뚝하게’ 수줍다. 사람들과 대면하는 시간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선호하다 보니 모임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고, 직장에서도 곧잘 웃어 보이는 일이 거의 없다.

이쯤 하면 사람들은 수줍다는 성격을 도도하다고 정의한다는 것이다. 이는 ‘네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우리를 무시해?’까지도 가곤 한다.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미용실에서 나는 말수가 별로 없다. 내가 도도해서도 아니고, 내가 대단해서도 아니다. 미용실에서는 수줍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반추해 냈다.

미용실에서 나는 잡담을 잘하지 않는다.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꺼내 블로그를 한다. 가끔 상대가 말을 걸어오면 웃으며 대답한다. 가끔은 내가 먼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아, 그래서.. 저번에 그건 잘하셨어요?” 같은. 기억하고 있다는 뜻도 포함한다. 같이 웃기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영수증 리뷰를 남겨주면 도움이 될 테니까. 사진을 찍는다는 건 이번에도 리뷰를 남기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실제로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감겨주는 분과도 잘 대화하지 않는다. 간혹 “더 헹구고 싶은 부분 있으세요?” 같은 질문에만 대답한다. 그런데 가령 이런 질문, “물 온도 괜찮으세요?” 에는 곧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물 온도가 사실은 차갑거나 뜨겁거나 하면 특히 그렇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온도 조절을 한다고 해도 옆에 있는 수도와 연결되어 일어난 현상이라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곤 하는데, 그럴 때 상대는 무시받았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한 번은 갑자기 약해진 샤워기 물줄기가 귓불 뒤로 흐르는 바람에 살짝 간지러워서 피식하고 웃은 적이 있는데, 그때 머리 감겨주는 분이 “왜 웃으세요?” 했고, 혹시라도 내 웃음소리가 비웃는 듯해서 물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뒤늦게 한 적 있다. 나는 그저 수줍어서 대답을 못했을 뿐인데. (이런 생각을 그냥 하게 된 것 아니고, 머리를 다 감은 후에 어떤 대화가 이어졌고,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의 모습은 어쩌면 나를 잘 아는 타인에게는 지극히 낯선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미용실 직원들에게는 지극히 익숙한 모습이기도 하다. 수줍어하는 단면을 가지고 있다는 건 조금 피곤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지독히 수줍은 스스로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 걸 보면.) 한편, 나라는 사람이 특정 상황이나 공간에서는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건 재미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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